말 잘 듣고 거침없는 번즈, “슬로스타터” 발언은 진짜였다

입력 2018-06-20 22:02:00
카카오톡 공유하기
프린트
공유하기 닫기

롯데 번즈. 사진제공|롯데 자이언츠

“참 말을 잘 들어요.”


20일 수원 롯데-KT전에 앞서 롯데 박진환 매니저는 외국인타자 앤디 번즈(28)를 가리키며 이같이 말했다. “타석에 들어가기 전에 ‘홈런 치고 오라’고 농담조로 말하는데, 꼭 그렇게 하더라.” ‘6월 번즈’의 위상을 설명한 한마디였다.


번즈는 5월까지 44경기에서 타율 0.239(155타수 37안타)의 부진에 허덕이며 비난에 시달렸다. 그러나 지금은 그때와 180도 다른 모습이다. 6월 16게임에서 거둔 성적만 떼보면 타율 0.421(57타수24안타), 10홈런, 24타점의 엄청난 활약이다. 공·수 양면에서 슬럼프를 겪던 시즌 초반을 떠올리면 그야말로 놀라운 변화다.


번즈의 변화를 설명하는 가장 확실한 지표는 6연속 경기 홈런이다. 지난 14일 사직 삼성전부터 20일 수원 KT전까지 매 경기 최소 하나씩의 아치를 그렸다. 1999년 삼성 찰스 스미스의 외국인타자 최다 연속경기 홈런과 타이기록이자 2010년 롯데 이대호(9경기), 올 시즌 두산 김재환(7경기)에 이은 역대 3위 기록이다. 세 차례 연타석포를 포함해 이 기간에 쳐낸 홈런만 무려 9개에 달한다. 60경기만에 2017시즌 116게임에서 쳐낸 홈런 수(15개)를 모두 채웠다.


롯데 번즈. 사진제공|롯데 자이언츠


애물단지로 전락했던 그의 홈런쇼는 열정적이기로 소문난 롯데 팬들의 가슴에 불을 지폈다. “강하게 스윙하기 위해 꾸준히 노력했다”는 그의 말대로, 시원하게 뻗는 타구는 번즈의 홈런을 지켜보는 또 다른 재미다. 20일에도 2-0으로 앞선 2회 무사 2루에서 KT 선발투수 박세진의 2구째 커브(시속 105㎞)를 잡아당겨 좌측 담장을 넘기는 2점홈런(14호)으로 연결했다. 연속경기 홈런 기록을 ‘6’으로 늘린 일타였다. 4회에는 선두타자로 등장해 박세진의 시속 134㎞ 직구를 걷어올려 좌중간 펜스를 넘겼다. 연속경기 홈런 기록 보유자인 동료 이대호도 번즈의 타구가 넘어가는 것을 확인한 뒤 엄지를 치켜세웠다.


경기에 앞서 번즈는 “나는 슬로스타터다. 미국에서도 타격감이 늦게 올라오는 편이었다”고 밝혔다. 이 말은 때때로 타격 부진에서 허덕이는 외국인선수들의 면피용 발언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번즈는 스스로 이 말이 허언이 아님을 입증했다. 이미 한 시즌을 경험하며 KBO리그의 스타일을 파악한 것이 부진 탈출에 한몫했다. 그는 “첫해와 견줘 노하우가 확실히 쌓였다”는 말로 경험의 중요성을 인정했다. 롯데 김승관 타격코치는 번즈가 귀찮아할 정도로 따라다니며 자신감을 불어넣었다.


연속경기 홈런 기간에 타순 변동이 없었다는 점도 눈에 띈다. 그의 타순은 8번이다. 이는 롯데 타선이 상~하위 구분없이 상대 배터리를 압박했다는 의미다. 롯데가 11-4로 승리하며 5연승(33승 36패)에 성공한 데는 타선의 힘이 절대적이었다. 조원우 감독도 “타선 조합이 좋다. 굳이 바꿀 이유가 없다”고 강조했다.


수원 | 강산 기자 posterboy@donga.com



뉴스스탠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