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준희 해설위원의 발언, 어떻게 봐야 하나

입력 2018-07-04 05: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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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준희 해설위원. 사진제공|KBS

누구는 후련했다고 했고, 누구는 창피했다고 했다.


3일 새벽에 끝난 2018러시아월드컵 일본-벨기에 16강전 때 KBS 한준희 해설위원의 발언을 놓고 여러 시선이 존재한다. 동시간대 최고 청취율이라는 TBS교통방송 ‘김어준의 뉴스공장’은 전화로 한준희 해설위원과 현지 인터뷰를 했다. 후반 중반까지 2-0으로 유리했던 경기가 뒤집힌 것이 고소하다는 뉘앙스가 풍기는 “감사합니다” 발언을 놓고 대화가 이어졌다.


한준희 해설위원은 “경기가 연장전에 가지 않아서 감사하다는 뜻이었다”면서 자신의 발언이 불러일으킬 파장을 차단했다.


축구는 그 나라의 국민성을 가장 잘 보여준다. 세상의 어떤 스포츠보다 원초적이고 감성을 자극한다. 우리가 조별리그에서 독일을 2-0으로 이겨 멕시코의 16강행을 확정해주자 멕시코 사람들이 우리에게 보여준 해외토픽에 나올법한 수많은 행동을 생각해보면 된다. 그게 월드컵의 위력이다.


우리는 아시아 5개 참가국 가운데 유일하게 16강 토너먼트에 진출한 일본을 보면서 복잡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솔직히 부러웠다. 비록 독일을 격파하고 명예를 얻었지만 우리는 실리가 없었다. 반대로 일본은 16강행 실리를 위해 불명예도 감수했다. 그런 일본이기에 더 좋은 성적을 올리지 않기를 바라는 사람도 많았다. 축구계에 종사하는 많은 이들의 공통된 생각이었다.


오랜 역사관계 속에서 많은 피해를 당했지만 제대로 된 사과를 받아본 기억이 없기에 우리보다 앞서가는 일본을 진정으로 축하해줄 여유가 아직은 없다.


‘일본이라면 가위바위보라도 무조건 이겨야 한다’는 말이 대다수 국민들의 감정을 가장 솔직하게 표현하는 것이라고 본다. 일본은 우리와 함께 치른 2002년 한일월드컵 때 우리보다 먼저 이런 경험을 했다. 함께 월드컵을 개최했고 함께 16강까지 올랐지만 일본은 거기서 멈췄다. 대한민국은 무려 4강까지 갔다. 게다가 거리응원을 통해 전 국민의 뜨거운 응원열기를 분출하면서 수많은 해외 매스미디어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그 덕분에 지구상의 대다수 축구팬들은 2002년 월드컵을 대한민국의 월드컵으로 생각한다.


당시 일본 아사히TV 뉴스프로그램(뉴스 스테이션)의 앵커 구메 히로시는 한반도의 뜨거운 열기를 소개하면서 “부럽다”고 했다. “아시아를 대표하는 대한민국의 선전을 축하한다”는 덕담도 했다. 속내는 알 수 없지만 최소한 겉으로 드러난 일본은 어느 누구도 KBS처럼 방송하지 않았다.


한준희 해설위원. 사진제공|KBS


한준희 해설위원의 발언은 술자리에서 친구끼리 할 내용이었지 공중파를 통해 국민에게 전달할 수준은 아니었다. 소수 특정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인터넷 방송이라면 편파방송을 해도 정당성을 어느 정도 인정받겠지만 공영방송은 다르다. 국내에 거주하는 수많은 일본인들도 분명 그 경기를 지켜봤을 것이다.


KBS의 “감사합니다” 영상은 지금 인터넷의 바다를 건너 이미 일본에서 널리 퍼지고 있을 지도 모른다. 우리는 일본에서 벌어지는 혐한 현상(행동, 책자, 방송)을 다룬 뉴스를 보면 분노한다. 3일의 편파해설이 일본인들에게 어떤 식으로 비쳐질지 걱정스럽다.


급변하는 미디어 환경에서 예전에는 상상도 못할 수많은 매체가 탄생하고 있다. 이들은 생존을 위해 보다 자극적인 것을 찾아내고 보도한다. 그러다보니 수준이 떨어지는 뉴스, 남의 기사를 제목만 자극적으로 바꿔서 내놓는 어뷰징 뉴스도 많다. 쓰레기 뉴스가 많을수록 게이트 키핑의 중요성은 커진다.


방송도 마찬가지다. 보다 자극적인 발언으로 순간의 시청률을 높일 수는 있지만 그 피해는 고스란히 방송이 뒤집어쓴다. 해설위원이 속으로 어떤 생각을 하느냐는 개인의 자유다. 다만 표현하기 전까지는 생각이 필요하다.


최소한 공중파 방송이라면 어느 수준까지는 해줄 것이라는 믿음이 아직까지는 우리에게 있다. 그 기대를 깨버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마지막으로 우리 국민의 천성이겠지만 우리는 너무 자주 흥분한다. 흥분하면 나중에 후회할만한 행동이 나온다. 조금 냉정해졌으면 좋겠다. 옆이나 뒤도 가끔은 생각했으면 좋겠다.


김종건 전문기자 marc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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