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 퍼스트 히스토리⑨] 12년 만에 열린 월드컵 伊 슈페르가 참사 눈물

입력 2018-07-05 05:30:00
카카오톡 공유하기
프린트
공유하기 닫기

1950년 제4회 브라질월드컵 잉글랜드와 미국과의 경기모습.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제3회 월드컵 결승전이 끝나고 14개월 뒤 독일은 폴란드를 무력 침공했다.


FIFA 부회장 오토리노 바라시는 전쟁 기간 동안 줄 리메 트로피를 신발상자에 넣어 자신의 침대 밑에 보관했다. 제2차 세계대전으로 1942년, 1946년 대회는 연기됐다. 전쟁의 상처가 깊었던 유럽은 아직 축구잔치를 치를 환경이 아니었다. 1942년 독일과 함께 유치신청을 했던 나라는 브라질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1950년 6월 24일부터 7월 16일까지 브라질에서 제4회 월드컵의 막이 올랐다. 1938년 제3회 프랑스대회 이후 12년만이었다. 제4회 대회를 앞두고 FIFA는 한 가지 결정을 내렸다. 우승트로피의 이름을 줄 리메 컵이라고 부르기로 했다. 25년간 FIFA를 이끌어온 줄 리메 회장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서였다. 브라질은 월드컵을 위해 리우데자네이루에 관중 20만명을 수용하는 새 경기장을 건설했다. 하지만 말라카낭은 대회 개막 때까지도 완공되지 않았다. 1965년에서야 완공됐다.


브라질은 대회방식을 바꾸고자 했다. FIFA는 싫어했지만 여차하면 개최를 포기하겠다는 브라질의 고집을 막지 못했다. 16개국이 본선에 참가해 각조 1위가 결승리그를 치르는 형식이었다. 결승전 없이 결승 라운드 1위가 우승 트로피를 차지하는 방식은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출범 초부터 줄 리메 회장과 찰떡궁합을 이뤄온 프랑스축구협회장 앙리 들러네는 대회방식 채택에 불만을 품고 FIFA에서 스스로 물러나버렸다.


12년의 공백이 있었지만 디펜딩 챔피언은 제2, 3회 대회를 연속으로 제패한 이탈리아였다. 1950년 대회를 앞두고 이탈리아는 엄청난 비극을 겪었다. 1943년부터 1949년까지 홈에서 무려 93연승을 거두며 이탈리아리그 5연패를 차지한 토리노의 선수들이 포르투갈 원정 도중 비행기 사고를 당했다. 팀 전원이 사망하는 참사로 골키퍼 발레리오 바시갈루포, 미드필더 로메오 멘티, 공격수 발렌티노 마졸라 등을 잃었다. 특히 공격수 마졸라의 공백이 뼈아팠다.


이탈리아대표팀의 주전자리 대부분을 차지했던 토리노 선수들은 1949년 5월 4일 리스본에서 벌어진 벤피카와의 친선경기를 마치고 돌아오던 중이었다. 토리노 인근에서 비행기가 슈페르가 성당과 충돌했다. 이탈리아는 새로운 선수단을 꾸려 월드컵에 참가했다. 물론 원정 비행기 대신 배를 선택했다. <계속>


김종건 전문기자 marco@donga.com



뉴스스탠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