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리의 듀얼인터뷰] 김가희 “알바하느라 오디션 놓칠 때도 있지만…난 슈퍼루키!”

입력 2018-07-19 06:5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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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환 감독(왼쪽)과 배우 김가희는 19일 개봉한 영화 ‘박화영’을 통해 짜릿한 경험을 하게 된다. 이환 감독에겐 첫 장편 연출작이고, 신인배우 김가희로서는 처음 맡는 타이틀 롤이다. 강렬한 기운을 내뿜는 두 사람의 만남은 이미 극장가에 신선한 바람을 예고하고 있다. 김종원 기자 won@donga.com

■ 작지만 강렬한 영화 ‘박화영’ 감독·주연 이환 & 김가희

김가희
서빙하고 치킨도 튀기고…
그래도 난 당당한 배우
연기 위해 체중 20kg 증량
뮌헨영화제 초청 최고였다

이환 감독
연출자로 첫 장편…멍하다
알바하는 배우 김가희
영화 속 ‘박화영’ 그 자체
20대 성장 영화도 구상 중


꿈을 향해 뚜벅뚜벅 자신의 길을 걸어가는 이들의 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어떤 평가와 결과가 따를지 알 수 없는 그 길을 오직 확신과 열정으로 밀고 나아가는 감독과 배우는 누구보다 아름다웠다. 19일 개봉한 영화 ‘박화영’의 이환(39) 감독과 주연배우 김가희(26)가 그들이다. 영화 ‘박화영’은 어떻게 표현해야할지 모를 만큼, 보고나면 머리 속에 얼얼해진다. 엄청난 에너지를 내뿜으면서도 우리 사회의 한 면에 현미경을 들이댄 것 같은 작품이다. 시나리오를 쓰고 연출을 맡은 감독과 주연배우는 어디서 나타나 이토록 강렬한 기운을 내뿜는지도 궁금해진다. 수백억 원의 제작비가 투입되고, 톱스타가 주연으로 나선 화려한 작품들이 여름 극장가 흥행 대결 마운드에 올랐지만 그 틈을 비집고 나선 ‘박화영’에도 시선을 거두기 어렵다. 누구보다 치열하게 영화와 연기를 향해 나아가는 이들의 어마어마한 에너지가 응집된 영화이기에 그렇다.

영화 ‘박화영’의 이환 감독(왼쪽)과 배우 김가희. 김종원 기자 won@donga.com


● ‘배우이자 감독’ 이환, ‘무명에 가까운 신인’ 김가희

이환 감독은 영화 ‘암살’과 ‘밀정’에 출연한 배우로 먼저 알려졌지만 연출에도 뜻을 두고 꾸준한 작업 끝에 첫 장편을 완성했다. 배우로 현장을 누빈 그가 자신만의 눈으로 발굴한 신인 연기자가 김가희다. 영화 개봉을 며칠 앞두고 서울 을지로에서 만난 두 사람은 긴장의 빛보다 현재의 순간을 즐기는 듯 했다.

이환 감독은 장편 연출 데뷔작 공개를 앞두고 “멍한 상태가 며칠 째 계속되고 있다”고 했다. 김가희의 마음은 더 하다. ‘배우’라는 타이틀이 아직 낯선 신인이기 때문이다. 소속사도 없이 직접 영화 오디션을 찾는 무명 연기자인 그는 스무 살부터 여러 단편영화를 거치면서 경력을 쌓았고 그 과정 끝에 ‘박화영’의 타이틀롤을 맡았다. 개봉일이 다가오면서 다양한 시선이 자신에 쏟아지는 상황은 그녀를 어리둥절하게 만든다.

“이러다 정말 유명해지면 어쩌나 싶다가도(웃음), 나를 모르는 사람들까지 악성 댓글을 쓰고 욕하는 걸 보면, 제발 나한테 욕하지 말아달라고 말하고 싶다.”

‘박화영’은 10대 ‘가출팸’(가출청소년 주거지) 이야기다. 영화 제목은 김가희가 연기한 18세 여고생 이름. 가족은 있지만 없는 거나 다름없는 그가 혼자 사는 집에는 가출한 친구들이 드나든다. 10여명이 북적대지만 집주인 박화영에게 ‘진짜 친구’는 없다. 영화는 박화영을 ‘엄마’라고 부르는 연예인 친구 미정(강민아), 미정의 남자친구이자 무리의 대장인 영재(이재균)까지 세 인물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이환 감독은 연출에서 퇴로를 두지 않았다. 김가희 역시 역할을 위해 몸무게를 20kg 가까이 찌웠다. 외형 변화가 전부는 아니다. 영화 속 박화영과 실제 김가희가 같은 사람인지 쉽게 알아볼 수 없을 만큼 다르다.

“촬영할 때 거의 매일 가위에 눌렸다. 하하! 자고 있는데 어디선가 감독님 목소리가 들렸다. ‘지금 잠이 오냐’는 소리에 깜짝 놀라서 깼더니 헛 걸 들은 거지.” (김가희)

“김가희만 그런 게 아니다. 촬영 동안 영재를 연기한 재균이와 같은 방을 썼는데 재균이도 늘 담이 결린다더라. 잠들기 전에 힘들어하고. 다들 쉽지 않은 시간이었다.” (이환)

두 사람의 인연은 2013년 단편영화 ‘집’으로 시작됐다. 이번 ‘박화영’은 25분 분량의 ‘집’을 장편으로 확대한 작품. 김가희는 두 영화에서 같은 캐릭터를 맡았다.

“감독님을 처음 만난 오디션이 생각난다. 연기 몰입하다 나도 모르게 바닥에 침을 뱉어 버렸다. 경험이 별로 없다보니 대본 지문에 ‘침을 뱉는다’라고 적힌 걸 보고 그대로 해 버린 거지. 아, 나는 정말 멍청이야! 그러면서 죄송하다고, 바닥 침을 막 닦았다.” (김가희)

“하하! 그런 배우가 없었다. 침을 뱉었으면 연기인척 뻔뻔하게 밀고 나가면 될 걸. 자꾸만 죄송하다니까, 그 모습이 흥미로웠다.” (이환)

이환 감독은 배우로 한창 활동하던 중 ‘박화영’ 시나리오를 완성했다. 이를 매력적으로 본 영화사 명필름은 이환 감독에게 명필름아카데미의 과정을 밟으면서 작품을 완성하자고 제안했다. 감독과 배우들은 촬영을 앞두고 작품 분위기와 각 캐릭터의 감정을 체득하는 워크숍 기간을 가졌고, 이후 촬영을 마치기까지 7개월을 동고동락했다.

“요즘도 왜 김가희를 선택했는지 질문을 받는다. 물론 다른 배우가 연기했다면 또 다른 박화영이 탄생했겠지. 하지만 다시 돌아가도 똑같은 선택을 할 거다. 김가희가 가진 매력과 개성이 영화와 잘 맞았다.” (이환)

자신을 향한 칭찬에 겸연쩍어 하던 김가희는 “그래도 저는 ‘박화영’ 2편은 못 찍는다”고 했다. 이유를 물었더니 “몸무게 늘리는 일이 정말 힘들다”며 “만약 2편을 찍으면 이번엔 복근 있는 캐릭터로 해 달라”고 주문했다.

영화 ‘박화영’의 한 장면. 사진제공|리틀빅픽스


● “본업이 배우인지, 아르바이트생인지…”

이환 감독과 김가희는 이달 초 독일에서 열린 제36회 뮌헨국제영화제에 다녀왔다. ‘박화영’이 국제인디펜던트 부문에 초청되면서다. 김가희는 처음 해외영화제를 경험했다. 특유의 친화력은 장소를 가리지 않았다. “현장에서 티켓을 다섯 장이나 팔았다”는 그는 영화를 본 독일배우와 미국의 감독들이 자신을 궁금해 하자, 직접 “슈퍼 루키!”라고 소개한 일화도 꺼냈다. “영화 상영하고 현지 반응이 좋아서 뮌헨에서 살까 싶어, 한국 돌아가는 티켓을 찢을 뻔 했다”고도 했다.

어떻게 박화영이란 인물을 그려냈는지 짐작하기 어려울 만큼 ‘무한 긍정’의 에너지와 매력이 넘치는 김가희는 스스로를 “아르바이트 인생”이라고 소개했다. 연기자의 꿈을 포기할 수 없고, 생활은 해야 하니, 당연한 수순이다.

“누가 묻는다면 ‘내 본업은 배우야’라고 말하고 싶지만 사실 할 수 없다. 작품이 꾸준하지도 않고 정작 아르바이트를 본업처럼 하고 있으니까. 서빙도 하고 치킨도 튀긴다. 뮌헨영화제 가기 전에는 공무원준비생이라고 말하고 초밥 뷔페에서 초밥 만들었다. 하하!”

초등학생 때부터 남 앞에서 연기하는 걸 좋아했다는 김가희는 그 때부터 누가 꿈을 물으면 늘 ‘배우’라고 답했다. 고3 때는 경쟁률이 가장 높은 대학 두 곳의 연극영화과에 지원했다 낙방한 뒤 그의 부모는 ‘현실적으로 진로를 다시 고민하자’고 딸을 설득했다. 다른 공부를 하려 했지만 마음이 잡히지 않았다. 다시 연기로 향했다. 그 때부터 무료 연극에 참여했고, 단편영화 오디션도 찾아다녔다. 영화 ‘수상한 그녀’와 ‘꿈의 제인’ 등에 참여하면서도 경력을 쌓았다.

“간혹 아르바이트 때문에 오디션을 보지 못하는 경우가 생긴다. 기회도 많지 않다. 나처럼 통통한 연기자가 할 수 있는 역할도 적으니까. 그런데 신기하게도 마음을 비우고 아르바이트하다보면 꼭 기회가 오더라. 그러니 믿고 나아갈 수밖에.”

영화 ‘박화영’의 이환 감독(오른쪽)과 배우 김가희. 김종원 기자 won@donga.com


● “연출하는 배우, 연기하는 감독”

이환 감독이 ‘배우’로 먼저 관객에 각인된 영화는 양익준 감독의 ‘똥파리’다. 연기자로 자리매김하던 그가 영화 연출에 눈을 돌린 건 뜻밖의 도전이 아닌, 자연스러운 과정이었다.

‘박화영’에서 10대 주인공들이 내뱉는 실감나는 ‘10대 언어’는 이환 감독이 집 근처 카페에 죽치고 앉아 귀동냥한 고교생들의 현실 언어를 차곡차곡 수집한 결과다. 그의 집요한 성격은 대사 한 마디, 한 마디에 그대로 드러난다.

‘박화영’에 출연한 배우들이 저마다 폭발적인 연기로 에너지를 표출할 수 있던 ‘마당’도 이환 감독이 마련했다. 선배 감독들은 이환 감독을 향해 ‘연기를 해서인지 배우 연기를 끌어내는 실력이 상당하다’는 칭찬도 건넨다.

“촬영을 앞두고 진행한 워크숍 과정이 중요했다. 우리는 연기와 동선을 견고하게 짜는 연습을 하지 않았다. 서로의 정서를 느끼고, 많이 대화했다. 그런 과정에서 배우 각자 자신의 캐릭터로, 두려움 없이 다가섰다.”

‘박화영’에 대한 관객 평가와 별개로 이환 감독은 “이 작품은 성장 이야기”라고 했다. ‘성장’은 그에게 중요한 화두다. “성장은 내가 살아가는 원동력”이라는 그는 “사람을 들여다보는 걸 좋아하고 그렇게 사람을 보는 일이 성장의 핵심 아니겠느냐”고 되물었다. 10대를 다룬 ‘박화영’을 넘어 20대의 성장을 담은 영화도 구상하고 있다.

그런 이환 감독은 배우로서 박정범 감독이 연출하는 ‘이 세상에 없는’ 촬영에 분주하다. 머리카락이 초록색이 된 이유도, 몸무게를 5kg이나 뺀 이유도, 영화 캐릭터를 위해 준비하라는 박정범 감독의 주문 때문이다.

김가희에게 살을 찌우라고 요청했던 이환 감독 역시 배우 입장으로 돌아가니 비슷한 주문을 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 할 만 하느냐 물었더니 “힘들다”는 짧은 대답이 돌아왔다. 이 틈을 놓치지 않은 김가희는 “배우는 자판기처럼, 주문하면 바로 바로 해내야 한다”며 또 한 번 웃음을 보탰다.

‘박화영’은 개봉일부터 한 달간 서울 대한극장에서 매일 관객과의 대화를 진행한다. 이환 감독이 ‘붙박이’로 참여하고, 김가희도 대부분 함께한다. 상영관 확보가 ‘전쟁’에 가까운 여름 극장가에서 자신들의 작품을 꾸준히 보이는 기회를 확보한 것이다. 이제 시작이다.

이해리 기자 gofl1024@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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