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균 “야구 인생 막바지…마지막 과제는 한화 우승”

입력 2018-07-20 05: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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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리어 마지막 목표는 우승!” 부상에서 돌아온 한화 김태균이 팀의 고공행진에 힘을 보태기 위해 이를 악물었다. 산전수전 다 겪은 그에게 이제 필요한 것은 오직 팀 우승뿐이다. 황혼기에 접어든 그의 프로인생은 미완성의 퍼즐조각을 완성시킬 수 있을까. 스포츠동아DB

‘한국 최고의 우타자.’ 다소 거창한 표현이지만 김태균(36·한화) 옆에 붙으면 어색함이 없다. 2001년 데뷔 후 16년간(일본프로야구 진출 2년 제외) 타자가 세울 수 있는 각종 이정표를 만들고 있다.

김태균은 지난 8일 인천 SK전에서 2안타를 뽑아내며 통산 2000안타 고지에 올랐다. KBO리그 우타자 최초 300홈런-2000안타의 위업을 세운 순간이었다. 좌타자를 포함해도 양준혁, 이승엽(이상 은퇴)에 이어 세 번째 대기록이다. 올해는 부상 탓에 중심에서 다소 비켜서 있지만 그는 여전히 이글스의 상징이다. 한화의 가을야구를 위해 온 힘을 기울이고 있는 김태균을 수원에서 만났다.


● 가물가물한 한화의 가을, 김태균의 자책


-자신의 전반기를 돌아본다면? (김태균은 전반기 46경기에서 타율 0.326, 8홈런, 24타점을 기록했다. 팀이 치른 89경기 중 절반 가까이인 43경기에 결장했다)

“이렇게 결장이 길었던 적이 없었다. 후배들에게 너무 미안했다. 내가 빠져있는 동안 팀이 어떻게든 성적을 내서 정말 다행이다. 그 덕에 회복에만 매진할 수 있었다. 전반기에는 뭔가 해낸 기억이 거의 없다. 아직 해야 할 일이 많다. 전반기에 못했던 것을 후반기에 더 하겠다는 생각뿐이다.”


-동료들이 공백을 잘 메우며 전반기 2위에 올랐다. 한화의 마지막 가을야구가 기억나는지?

“2007년이다. 그땐 막 신인 티를 벗은 선수였다. 내가 입단했을 때 한화는 강한 팀이었다. 팀 성적이 좋은 것을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때다. 일본프로야구(2010~2011) 무대에 다녀오고 점점 고참이 될수록 팀 성적은 떨어졌다. ‘그때가 참 소중하고 행복했구나’라고 후회하며 반성했다.”


-말한 것처럼 고참이 되면서 책임감도 함께 쌓였을 것 같다.

“내가 젊은 선수일 때 난 정말 내 야구만 했다. 당시 고참 선배들이 환경을 잘 만들어주신 덕분이다. 반면 내가 고참일 때 한화는 포스트시즌 진출에 매번 실패했다. 고참인 내가 당시의 선배들만큼 역할을 못했기 때문이다. 자책을 많이 했다.”


-올해 한화는 다르다. 1992년 이후 26년 만에 전반기를 2위로 마쳤다. 신구 조화가 잘 되고 있다는 얘기도 많다.


“감독님이 새로 오시며 분위기가 좋아졌고 팀 성적으로 이어졌다. 한참 동안 못 느꼈던 ‘승리의 기분’을 자주 느끼니 좋다(웃음). 신구 조화 얘기는 젊은 선수들 덕분이다. 그들이 잘해주고 있으니 고참들이 혜택을 받는 것이다. 우리가 아무리 잘 챙기려 해도 후배들이 못하면 고참이 못한 것이다. 후배들에게 고맙다.”

한화 김태균. 스포츠동아DB


● 역대 최고의 우타자

19일 경기 전까지 김태균이 쌓아올린 대체선수대비승리기여도(WAR)는 67.90이다. KBO리그를 거쳤던 모든 선수 가운데 양준혁(87.22)과 이승엽(72.04) 다음 3위다. 그 뒤를 이종범(67.74), 박경완(67.63), 김동주(66.35)가 잇는다. 우타자 중에서는 김태균이 가장 높다. 우타자 최초로 300홈런-2000안타 고지에 오른 것도 그다.

3000타석 이상 들어선 타자 중 OPS(출루율+장타율)는 그가 1위다. 세계 최고기록인 86연속경기 출루 기록도 그의 몫이다. ‘역대 최고의 우타자’로 보기에 부족함이 없다. 하지만 그가 쌓아가는 업적에 비해 그를 향한 주목도나 인정은 덜하다. 김태균은 “누구에게 평가받기 위해 야구하는 것은 아니다. 내 성적에 비해 인정을 덜 받는다고 해서 아쉽지는 않다. 그저 내가 꿈꾸고 그리던 모습과 닮아가고 있는 지금의 내가 뿌듯할 뿐”이라고 단호히 말했다.


-홈런 1위도 해봤고, 4할 타율에도 도전했다. 주루를 제외한 모든 부분에 능하니 딱히 스타일을 정의하기 애매하다. 김태균이 정의하는 ‘타자 김태균’은 어떤 스타일인가?

“그렇게 분류해본 적이 없다. 내가 타석에 들어서는 상황에 맞는 타격을 하려고 했을 뿐이다. 굳이 꼽자면 안타, 홈런, 타점 생산 두루 잘하는 타자가 되고 싶었다. 누구나 다 그렇지 않을까(웃음)?”


-우타자 최초로 300홈런-2000안타를 달성했다.

“그 기록은 뿌듯하다. 지난해 세운 86연속경기 출루 기록만큼 내 자신을 칭찬하고 싶다. 장타와 중장거리타를 꾸준히 생산해야 달성할 수 있는 기록이다. 어릴 때부터 목표하던 ‘두루 잘하는 타자’의 상징처럼 느껴진다. 내가 목표하던 모습에 잘 다가가고 있는 것 같다.”


-다시 생각해도 86연속경기 출루는 대단하다. 최근 추신수(텍사스)의 출루 행진으로 당시 기록이 재조명되고 있다(메이저리그 연속경기 최고기록은 테드 윌리엄스의 84경기, 일본 프로야구 기록은 스즈키 이치로의 69경기다).

“후배들도 출루 비결을 종종 묻는다. 딱히 답은 없다. ‘출루하고 싶다’고 1루에 나갈 수 있다면 내 기록이 86연속경기에서 멈추지 않았을 것이다(웃음). 그저 타석에서 집중하는 것이다. 얼마나 높은 집중력으로 투수와 싸우는지가 중요하다.”

한화 김태균. 스포츠동아DB


● 야구인생 마지막 페이지는 우승으로


-‘국가대표 황금세대’로 불리던 1982년생들이 이번 2018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엔트리에서 모두 빠졌다. 이렇게 대표팀 은퇴를 하게 됐다.

“젊고 실력 있는 선수들이 주축으로 대표팀을 꾸려야 한다. 긍정적 현상이다. 그동안 국가가 부르면 언제든 나갔다. 아무래도 김태균이라는 사람이 국가에 보탬이 되고 헌신할 기회가 사라진 점이 아쉽다.”


-야구인생을 돌아봤을 때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딱 하나 고를 수 없다. 2006년 한국시리즈도 기억이 나고, 2009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준우승도 떠오른다. 야구인생 막바지에 회상해보니 나름 빛나는 순간이 좀 있었던 것 같다.”


-막바지라고 하기에는 성적도, 플레이도 한창 때와 다르지 않다.

“확실히 마무리의 시기가 오고 있는 것 같다. 기억에 남는 순간이 많지만 ‘이글스의 김태균’으로 우승한 적이 없다는 게 아쉽다. 이대로 은퇴하면 안 된다. 우승 한 번 하고 그만둬야 하지 않겠나?”

우스꽝스러운 별명이 많지만 그에게 가장 적합한 수식어는 ‘최고’다. 숱하게 적어간 그의 야구인생 마지막 페이지에는 우승이란 방점이 찍힐 수 있을까. 이룰 것을 다 이룬 김태균의 마지막 목표다.

수원|최익래 기자 ing17@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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