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연휴를 겨냥해 19일 개봉하는 영화 ‘명당’. 벌써 세 번째 호흡을 맞추는 조승우(왼쪽)와 유재명의 호흡이 인상적이다. 사진제공|메가박스중앙(주)플러스엠
하루가 다르게 치솟는 서울 아파트 매매가, 이른바 ‘똘똘한 한 채’를 노린 투기성 투자에 관한 이슈가 연일 뉴스를 뜨겁게 장식하고 있다. 서울 주요 지역 아파트에 집중된 수요, 수십억원짜리 아파트를 현금으로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도 들린다. 전부 ‘좋은 자리’, 결국 명당을 차지하려는 욕망의 단면이다.
추석 연휴를 앞두고 19일 개봉하는 조승우 주연의 ‘명당’(감독 박희곤·제작 주피터필름)을 단순히 과거의 이야기를 담은 사극으로만 바라볼 수 없는 이유들이다.
역사적 사실을 큰 줄기로 삼으면서도 그 안을 채운 크고 작은 이야기에는 무한한 상상을 더한 ‘명당’은 지금,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을 그대로 반추하는 듯한 작품이다. 영화 자체로도 흥미롭지만, 보고나면 밀려오는 여러 잔상을 떨치기 어렵다. 이래저래 뒷이야기를 남긴다.
‘명당’의 서사는 익숙한 구성과 안정적인 뼈대 안에서 이뤄진다. 그만큼 명절 특성에 맞게 남녀노소 관객을 비교적 수월하게 공략할 수 있는 강점이 확실하다. 하지만 새로운 볼거리를 원하는 관객의 만족까지 높일 수 있을지는 미지수. 이번 추석 극장가가 여름이나 겨울 빅시즌만큼 흥행 대결이 치열한 탓에 결과 예측이 쉽지 않다.
영화 ‘명당’의 한 장면. 사진제공|메가박스중앙(주)플러스엠
● 좋은 땅, 복 받을 땅…호기심 자극하는 풍수지리
2013년 913만 관객을 모은 ‘관상’이 ‘왕이 될 얼굴’을 찾았다면, 이번 ‘명당’은 ‘왕을 배출할 땅’을 찾는 여정이다. 물론 그 여정에는 권력을 향한 욕망과 집착, 탐욕 그리고 간절한 바람과 절망이 뒤섞여 있다.
주인공은 땅의 기운을 점쳐 인간의 운명을 바꿀 수 있다고 믿는 지관 박재상(조승우). 효명세자가 묻힐 묏자리를 택하는 과정에서 세도가인 장동 김씨 가문의 뜻에 반하는 직언을 왕에게 한 죄로 가족이 몰살당한 아픔을 가진 인물이다.
영화는 박재상을 중심에 두고, 명당을 이용해 나라를 지배하려는 장동 김씨 부자(백윤식·김성균) 그리고 몰락한 왕족 흥선군(지성)의 이야기를 양 날개로 삼는다. 유약한 왕 헌종(이원근)을 막후에서 흔들면서 권력을 휘두르는 장동 김씨 가문은 두 명의 왕이 나올 천하명당의 존재를 알게 되자, 야욕을 감추지 않는다.
좋은 땅, 자손에 복을 줄 땅, 부와 명예를 안길 땅. ‘명당’은 그 소재 자체로 한국인의 DNA를 깊이 자극한다. 풍수지리를 토대로 권력을 쫓는 이들의 야심, 그 반대편에 서 있는 이들의 신념을 대비해 보여주면서 과연 땅을 향한 집착이 우리에겐 어떤 의미인지를 되짚게 한다.
‘명당’은 태생부터 앞선 히트작 ‘관상’과 비교가 불가피한 작품이다. 하지만 ‘관상’의 래퍼런스를 따르면서도 새로운 성취를 거둔 점은 눈여겨 볼 만하다. 무엇보다 명당에 빗대 지금 세상을 이야기하는 사실은 탁월하다.
연출을 맡은 박희곤 감독은 “땅보다 중요한 건 내 자신 그리고 가족”이라며 “하지만 우리는 오히려 땅에 쫓기고 집착하면서 살아간다. ‘명당’을 통해 과거와 현재까지, 주객이 전도된 가치관을 이야기하고자 했다”고 밝혔다.
영화 ‘명당’의 한 장면. 사진제공|메가박스중앙(주)플러스엠
● 최대 미덕…조승우부터 유재명까지 연기향연
‘명당’은 주연과 조연 할 것 없이 출연하는 배우들이 역할 비중에 상관없이 관객에 짙은 인상을 남긴다. 조승우는 더는 설명이 필요 없는 배우. 사극과 좀처럼 인연을 맺지 않았던 그는 2015년 주연한 ‘내부자들’의 성공 이후 숱한 제안을 뒤로하고 택한 이번 영화에서도 역시 대중의 기대에 적중한 모습을 보인다.
조승우는 “어떻게 사는 게 올바른 것인지 돌아보게 하는 영화”라는 말로 ‘명당’을 설명했다.
조승우와 벌써 세 편째 호흡을 맞추는 유재명은 어떤 장르, 어떤 이야기, 어떤 역할을 맡아도 새로운 모습을 보이는 실력자란 사실을 증명했다. ‘명당’을 기점으로 규모 있는 상업영화에서 더 활약할 가능성도 드러낸다.
자신만의 신념을 가진 지관 박재상과 대척점에 서서, 권력에 기생하는 지관 정만인을 연기한 배우 박충선의 섬뜩한 연기도 관객에 긴장감을 안기기 충분하다.
이해리 기자 gofl1024@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