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배구 개막특집 ① 대한항공 전력 분석

입력 2018-10-01 05: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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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항공 점보스는 지난 9월 29일 경기도 신갈 훈련숙소에 열성팬 100명을 초대해 ‘팬 투게더’ 행사를 펼쳤다. 이번 행사에서 선수들은 팬과 팀을 이뤄 다양한 레크레이션을 하는 등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사진제공|대한항공 점보스 배구단

대한항공 점보스는 9월 29일 경기도 신갈 훈련숙소의 문을 활짝 열었다.

열성팬 100명을 초대해 시즌을 앞두고 팬 투게더라는 이름의 즐거운 행사를 했다. 선수들은 팬과 팀을 이뤄 다양한 레크레이션을 하고 훈련장 주변도 함께 산책했고 사진도 같이 찍었다. 정점은 가든파티였다. 넓은 잔디밭 위에 마련된 식탁에서 선수들이 구워주는 고기를 서빙받은 팬들은 감동했다.

푸짐한 선물을 받은 팬들이 집으로 향하기 전에 깜짝 등장한 사람은 가스파리니였다. 세계선수권대회를 마치고 20시간의 비행 끝에 가족과 함께 행사장에 도착한 것이다. 팬들은 그의 등장에 감격의 비명을 질렀다. 박기원 감독과 코칭스태프 선수들은 세 시즌 째 팀과 함께하는 그와 하이파이브, 악수를 하며 귀환을 반겼다. 지난해 챔피언 대한항공의 여유가 느껴지는 하루였다.

지난 시즌 우승멤버로 완전체를 이룬 대한항공은 이제 새 시즌을 향한 이륙에 들어간다. 손발을 맞춘 뒤 4일 일본전지훈련을 떠나 사카이 블레이저스와 세 차례 연습경기를 한 뒤 8일 귀국한다. 박기원 감독은 “우승하고 가장 달라진 것이 선수들의 표정이다. 훈련장에 모두가 행복한 얼굴로 온다. 그게 우승의 맛이다. 이제 초심과 겸손으로 새 시즌을 준비해야 할 때”라고 했다.


● 팀 창단 이후 첫 우승의 비결은

예상 없이 찾아온 우승이었다. 3라운드까지 부진이 이어졌다. 꼴찌도 했다. 다행히 5라운드 전승을 하며 반전의 계기를 잡았다. 이후 거칠 것이 없었다. 봄배구에서 선수들은 평소 이상의 가량을 발휘하며 우승까지 내달렸다.

2016∼2017시즌 시즌 챔피언결정전에서 실패했던 선수들에게 2017∼2018챔프전 우승의 비결을 물었다. 그들은 “플레이오프, 챔피언결정전 모두 첫 경기를 졌지만 우리가 잘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길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선수들 모두에게 있었다”고 했다. 박기원 감독도 “당시 경기를 몇 번 되돌려봤는데 공격 수비 모두 평소 이상의 기량을 했다. 이번 시즌에는 우승팀의 자신감을 바탕으로 더 업그레이드된 기량을 보여줘야 한다. 올해는 모든 팀의 전력이 더 평준화됐다. 우승과 실패는 종이 한 장 차이”라고 했다.

구단은 사상 첫 우승을 차지한 선수단에게 승리의 맛을 확실히 느끼게 해줬다. 가족동반 하와이여행을 시켜줬다. 모든 선수와 가족들이 비즈니스 좌석을 타고 여행하는 호사를 누렸다. 이제 파티는 끝났고 다시 현실이다.

대한항공 박기원 감독. 사진제공|KOVO


● 박기원표 자율배구가 만든 소통과 신뢰

박기원 감독은 선수들을 다그치지 않는다. 선수들이 스스로 잘 알아서 하고 있는데 굳이 목소리를 높일 이유가 없다고 생각한다. 합숙도 없다. 기혼 선수들은 자유롭게 출퇴근이다. 모두에게 훈련 뒤에는 누구라도 언제든지 밖에 나가서 놀다가 오라고 한다. “그래봐야 커피나 마시고 오는 정도다. 스스로 알아서 준비하고 훈련 때 최선을 다해주는데 간섭할 이유가 없다”고 했다. 선수와 감독 사이에 이런 믿음이 있기에 훈련도 즐겁다. 마치 놀이를 하듯 진행된다. 책임과 자율을 주자 선수들은 스스로 생각하는 여유 속에서 창의적인 뭔가를 만들어 낸다. 그래서 훈련 분위기는 화기애애하고 웃음이 넘친다.

LIG손해보험에서 실패한 뒤 박기원 감독은 많은 복기를 했다. 자신이 왜 실패를 했는지를 차분히 다시 생각해봤다. “운동하는 사람은 자신의 실패를 인정하는 것을 가장 싫어한다. 하지만 발전하려면 꼭 해야 한다. 나도 고통스러웠지만 스스로에게 반복해서 질문하다보니 몇 가지 결론이 나왔다. 첫째 선수들에게 스트레스를 주지 말자. 둘째 선수들과 소통하자. 셋째 선수에게 신뢰를 주자였다”고 했다. 지금 대한항공에서 하는 선수단운영의 원칙이었다.

선수들도 화답했다. 목소리를 높이지 않아도 더 열심히 했다. 선수들 스스로 책임감을 가지기 시작했다. 상호신뢰는 경기 때 잘 드러났다. 지난 시즌 박 감독은 선수들에게 “너희들을 더 믿어도 되겠다”면서 감독이 할 수 있는 최고의 칭찬을 2∼3차례나 했다. 신뢰와 책임감을 서로 확인한 그 순간은 사상 첫 우승을 만든 중요한 모멘텀이었다.


● 부상방지와 체력보강

여유 속에서 시작해온 이번 시즌 준비과정이지만 감독이 가장 신경 쓰는 부분이 있다. 바로 부상방지다. 이미 선수들의 기량은 검증됐다. 몇 년째 호흡을 맞춰왔기에 훈련 하루 이틀로 달라질 것도 없는 팀이다. 문제는 예상 못한 부상이다. 그래서 매일 의무팀과 선수들의 몸 상태를 체크한다. 선수들의 훈련과 경기 출장은 전문가인 의무팀의 보고에 따른다. 선수가 감독에게 “아프다. 훈련을 쉬겠다”고 얘기하는 불편한 과정을 아예 없애버렸다.

지금 대한항공 선수 가운데 아픈 선수는 없다. 다만 오랜 기간 대표팀 차출의 후유증은 있다. KOVO컵에서 예선 탈락한 이유였다. 가스파리니도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진을 빼고 왔다. 지금부터 선수들의 체력을 잘 보충하고 시즌 중반까지 여유를 가지고 천천히 끌어올리는 일이 시즌의 성패를 가를 것이다.

시즌구상도 여기에 바탕을 두고 있다. 착실히 승수를 쌓아가면서 후반기 이후에 선수단 전체의 컨디션을 상승시켜 봄배구에서 정점을 찍는 그림을 그리고 있다. 다행히 지난 시즌 부진했던 김학민이 좋아졌다. 장점인 엄청난 체공능력이 KOVO컵에서 확인됐다. 속공능력이 좋은 김규민도 FA선수로 가세했다. 7개 구단 가운데 최고인 곽승석-정지석의 리시브라인에서 세터 한선수로 이어지는 연결은 대한항공이 가장 안정적인 전력을 자랑하는 바탕이다.

박 감독은 한선수가 대표팀에서의 속공과 소속팀에서의 작은 차이로 아직은 힘들어하는 것도 안다. 결국 시간이 해결할 일이고 한선수라면 그 차이를 극복해낼 것이라고 믿는다. 지난 시즌 챔피언결정전의 숨은 MVP 황승빈을 비롯해 곽승석 정지석 김학민은 이번 시즌 뒤 FA권리를 얻는다. 이들이 어떤 마음가짐으로 시즌을 헤쳐 나갈지는 쉽게 짐작이 가능하다.

“배구는 타임아웃과 멤버체인지로 이기는 것이 아니다. 코트 안에 들어간 6명 선수들의 기량으로 이긴다. 감독이 포인트 내는 배구는 없다. 점수는 선수들이 만든다. 감독은 분위기를 만드는 사람이다”고 베테랑 사령탑은 말했다.

대한항공을 맡은 이후 술과 담배마저 끊은 그는 매일 오전 6시30분에 훈련장에 출근한 뒤 야간훈련을 끝마칠 때까지 코트에서 선수들을 지켜보고만 있다. 결국은 성실하고 부지런하고 연구 노력하는 사람이 이기는 세상이다.

김종건 전문기자 marco@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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