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현길의 스포츠에세이] 수원 삼성은 ‘인재 경영’을 하고 있는가

입력 2018-10-23 05:30:00
카카오톡 공유하기
프린트
공유하기 닫기

‘인재 경영’이라는 모기업의 기본 철학 아래서 K리그를 선도했던 수원 삼성이 흔들리고 있다. 사람을 중시하는 풍토가 사라지면서 구단 안팎으로 혼란이 가중되는 모습이다. 중도 사퇴 이후 돌연 컴백했던 서정원 감독의 웃지 못 할 해프닝은 이러한 현실을 제대로 보여주고 있다. 스포츠동아DB

이병철 삼성 창업주의 인재사랑은 유명하다. “기업은 곧 사람”이라는 말에 많은 게 녹아 있다. 그는 인생의 80%를 인재를 모으고 육성하는데 썼다고 했다. 그런 삼성의 인재경영은 3대에 걸쳐 이어지고 있다. 지난 달 평양에서 열린 제3차 남북정상회담에 동행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꺼낸 대화의 주제도 인재였다. 그는 “평양역 건너편에 새로 지은 건물에 ‘과학중심 인재중심’이라고 써져 있었다”면서 “삼성의 기본경영 철학이 ‘기술중심 인재중심’이다”고 소개했다. 창업주처럼 그도 인재경영에 대한 철학이 확고하다.

기업문화가 그렇다면 그 기업이 운영하는 스포츠단의 분위기도 얼추 비슷해진다. 삼성은 한 때 국내 스포츠를 먹여 살렸다. ‘삼성이 하면 다르다’는 말은 통 큰 투자의 다른 표현이었다. 아울러 선수와 지도자의 자존심을 세워주는데도 신경을 많이 썼다.

1995년 12월 창단한 프로축구 수원 삼성도 축구인을 대우했다. 1994미국월드컵대표팀 감독 출신의 김호를 초대 사령탑으로 영입한 수원은 K리그 참가 첫 해(1996년)부터 챔피언결정전 및 FA컵 준우승을 차지하며 돌풍을 일으켰다. 창단 3년 만에 K리그 정상에 올랐다. 구단의 지원과 선수들의 열정, 그리고 팬들의 응원에 힘입어 단박에 명문구단의 반열에 오를 수 있었다. K리그 우승은 통산 4번이다.

구단의 4대 사령탑 서정원 감독은 2013시즌부터 지휘봉을 잡았다. 이듬해 큰 변화가 있었다. 제일기획이 축구단을 인수했다. 반신반의하는 여론을 향해 구단은 다양한 마케팅으로 명성을 이어가겠다고 약속했지만 말뿐이었다.

지난 5년간은 위축되는 투자에 애간장만 탔던 시기였다. 제대로 된 지원을 받지 못했지만 서 감독은 나름 성과를 냈다. K리그 준우승 2번(2014, 2015년)과 FA컵 우승(2016년)으로 체면치레는 했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수원은 그저 그런 팀이 되고 있다. 팀 분위기도 예전만 못하다. 독주하는 전북 현대를 견제할 힘을 잃은 지도 오래다.

올 시즌 전망도 밝지 않았다. 그보다 더 충격적인 일은 8월 말 서 감독의 돌연 사퇴였다. 한창 시즌 중에, 그것도 전북과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8강 1차전을 코앞에 둔 시점에 나온 갑작스런 일이어서 말들이 많았다. 성적에 대한 스트레스와 도 넘은 팬심, 그리고 구단과의 불편한 관계 등 소문은 꼬리를 물었다. 어쨌든 구단 내부에 문제가 많았던 건 사실이다. 구단의 소중한 자산인 감독이 버틸 힘이 없다는 건 팀도 끝장났다는 의미다.

지난 17일 경기를 앞두고 수원 서정원 감독이 관중석을 향해 고개 숙여 인사를 하고 있다. 스포츠동아DB


그 후 한 달 반이 흐른 이달 중순, 서 감독은 깜짝 복귀했다. K리그에서 유례를 찾기 힘든 쑥스러운 사퇴 번복이다. 전격적으로 그가 돌아온 데는 ‘책임감’이 컸다. 시즌 막바지에 벌어질 중요한 경기를 외면할 수 없었다. 감독이면서 선수시절 수원의 전성기를 이끈 레전드였기에 체면을 구겨가면서도 결단을 내릴 수 있었다. 구단의 복귀 요청이 있었다지만 이미 레전드의 자존심에 심한 상처가 난 뒤였다.

다행히 서 감독 복귀 이후 팀은 잘 나간다. 제주와 FA컵 8강전은 물론이고 포항과 K리그 33라운드에서도 이겼다. 선수들은 사력을 다했고, 팬들은 더 큰 소리로 응원했다. 서 감독의 어깨는 다시 무거워졌다. 수원은 상위 스플릿에 올라 내년 AFC 챔피언스리그 출전 티켓을 다툰다. 24일에는 올해 AFC 챔피언스리그 가시마 앤틀러스(일본)와 4강 2차전(1차전 2-3 패)을 치른다. FA컵에서는 울산과 4강전을 갖는다. 혼자 감당하기 버거울 정도로 중압감이 클 것이다. 남은 경기에서 최상의 성과를 올릴 수 있도록 구단이 분위기를 만들어줬으면 한다. 따뜻한 말 한마디라도 더 해주길 바란다.

시즌이 끝난 뒤 구단이 해야 할 일은 따로 있다. 서 감독의 사퇴 파동을 불러온 문제점이 무엇인지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한다. 유야무야 넘겨선 곤란하다. 그게 묻히면 수원의 미래도 함께 묻히는 것이다. 특히 신뢰의 문제를 점검했으면 한다. 구단은 선수단을, 선수단은 구단을 믿고 있는 지가 궁금하다. 이병철 창업주의 말을 빌리면 “구단은 곧 사람”이다. 수원 삼성이 인재를 중시하고 있는 지 묻고 싶다.

최현길 전문기자 choihg2@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체육학 박사



뉴스스탠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