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까지 영화생각뿐…‘맨발의 청춘’ 신성일, 별이 되다

입력 2018-11-05 06:5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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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 대한 열정을 불태우며 ‘천생 영화인’으로 살다간 고 신성일. 사진제공|비욘드필름에이트웍스

■ 영화처럼 살다 영화처럼 떠난 ‘천생 배우’ 신성일

폐암 3기에도 식지 않는 영화 열정
부산영화제선 영화 계획 내놓기도
1960년 데뷔해서 총 524편 출연
큰 족적 남기고 ‘별들의 고향’으로


폐암이 엄습했지만 영화를 향한 열망은 막지 못했다. 81세의 일기로 4일 오전 2시30분 별세한 배우 신성일은 눈 감는 그 순간까지 오직 영화만 생각한 영원한 ‘영화배우’였다. 갑작스러운 부음에 영화계는 물론 팬들도 슬픔에 잠겼지만 그는 끝까지 배우의 모습으로 우리 앞에 섰다.

고인이 마지막 모습을 보인 때는 불과 한 달 전이다. 10월4일 제23회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식 레드카펫에 오른 그는 지난해 6월 폐암 3기 판정을 받고 항암치료를 거듭해왔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만큼 흐트러짐 없이 정갈한 모습이었다. 꼭 1년 전인 작년 10월 부산서 만났을 때도 그는 “의사가 기적이라고 말한다”며 “같이 치료받는 이들이 쓰러지는데 나는 체력관리를 잘한 덕인지 잘 먹고 있다”고 웃어 보였다.

신성일은 지난해와 올해 부산국제영화제에 연이어 참석해 앞으로 만들 영화 구상을 구체적으로 밝혔다. 의욕 넘치는 모습으로 “따뜻한 영화를 만들고 싶다”고도 했다.

그의 말은 단순한 ‘바람’이 아니었다. 직접 구상한 3대 가족 이야기의 시나리오 작업도 마친 상태였다. 당시 그는 “올해는 폐암 때문에 어려워 내년에 시작한다. 헌팅까지 이미 다 마쳤다”고 말했다.

지난달 4일 열린 제23회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식 레드카펫 행사에 참석한 신성일. 스포츠동아DB


이 영화는 올해 이장호 감독과 만나 더욱 구체화됐다. 두 사람은 1970년대 ‘별들의 고향’ 등 대표작을 함께해온 영화 동지. 지난 10월 부산에서 만난 이장호 감독은 “신성일 배우가 오랫동안 준비한 작품의 시나리오를 얼마 전 내게 보여줬다”며 “이타심을 가진 이들의 이야기로 그리려 논의하고 있다”고 했다. 불과 한 달 전의 일이다.

이장호 감독은 신성일과 한창 영화 작업을 하던 시기를 떠올리며 “대단한 독서광”이라고 그를 추억했다. 자신이 조감독일 때 신성일은 이미 당대 최고 스타였지만 촬영현장에서 서로 읽은 책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가까워졌다고 돌이켰다.

신성일은 폐암 투병과 항암치료를 받는 과정에서도 매일 4개의 일간지를 구독했다. 신문을 받아보는 일로 하루를 시작한 이유는 “균형감각을 잃지 않기 위해서”라고 했다.

꾸준한 독서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8월 출간된 김홍신의 책 ‘바람으로 그린 그림’을 읽고는 “깨끗한 멜로 이야기”라는 생각에 작가에게 전화를 걸어 “영화화하고 싶다”고 피력하기도 했다. 1960년 ‘로맨스 빠빠’로 데뷔해 지금껏 524편(한국영상자료원)에 출연했지만 영화를 향한 열망은 여전했다.

4일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빈소. 사진|사진공동취재단


신성일은 경북 영천에 한옥을 짓고 생활해왔다. “집 주변 올레길을 내 행복한 쉼터로 만들고, 작은 음악회도 열겠다”고 바라왔다. 하지만 이를 이루지 못한 채 생전 자신이 “준비돼 있다”고 말한, “죽으면 들어갈 예쁜 땅”에서 ‘영원한 영화배우’는 영면한다.

빈소는 서울 풍납동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 30호실에 마련됐다. 유족은 아내이자 배우인 엄앵란(82)과 아들 강석현(51)씨, 딸 경아(53)·수화(48)씨가 있다. 발인은 6일이다.

이해리 기자 gofl1024@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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