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프로농구 삼성생명 김한별(왼쪽)은 한국인 어머니 김성자 씨와 흑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다문화가정 태생이다. 출중한 기량을 앞세워 프로무대 입성 이후 태극마크까지 단 배경에는 모친의 든든한 사랑과 믿음이 있었다. 어머니 김성자 씨와 포즈를 취하고 있는 김한별. 용인|김민성 기자 marineboy@donga.com
다문화가족이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우리나라 신생아 20명 중 1명은 다문화가정에서 태어나고 있으며 다문화가족 수도 100만명에 이른다. 이제 더불어 사는 우리 사회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모습이다.
스포츠 분야도 마찬가지다. 다문화가정에서 태어난 선수들이 무대를 주름잡는 시대다. 특히 농구는 일찌감치 혼혈 선수들의 유입을 받아들였다. 여자프로농구 삼성생명의 김한별(32)은 대표적인 다문화가족 선수다.
김한별은 여자프로농구 무대에서 파워 넘치는 플레이를 즐기는 선수다. 신장은 178㎝로 크지 않은 편이지만, 힘과 투지는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다. 이처럼 코트 위에서는 강한 위력을 발휘하는 그녀지만, 모친 김성자(63) 씨 앞에서는 애교 많고 사랑스러운 큰 딸의 모습뿐이다. 누구보다 끈끈한 애정으로 똘똘 뭉쳐 있는 김한별-김성자 모녀를 가을이 무르익은 용인 삼성트레이닝센터에서 만났다.
삼성생명 김한별(오른쪽)과 그의 어머니. 용인|김민성 기자 marineboy@donga.com
● 모친의 사랑으로 키운 농구 선수의 꿈
김한별은 한국인 어머니와 흑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났다. 여동생(김한빛)도 있다. 7살 때 부모의 이혼으로 어머니의 손에서 자랐다. 3년 뒤 김성자 씨가 토니 패스워터(64) 씨와 재혼하면서 현재에 이르고 있다. 김한별의 친 아버지는 2011년 세상을 떠났다.
김성자 씨는 “피닉스에서 살다가 (김)한별이가 7살 때 인디애나로 이사를 갔다. 엄마가 아시안이니까 학교에서 ‘차이니즈’라며 놀림을 당했다고 나중에 커서 말해주더라. 그 당시에는 그런 말을 전혀 안했다”고 돌아봤다. “어릴 때부터 속이 깊고 점잖은 편이었다. 운동도 잘하고 공부도 늘 1등이었다”며 어린시절을 회상했다.
김한별은 어렸을 때부터 운동신경이 남달랐다. 또래보다 체격도 크고 운동도 잘하는 편이었다. 김한별은 “같은 나이 대 애들 중에서는 내가 체격이 큰 편이었고 달리기도 제일 빨랐다. 그래서 애들이 날 건들지 못했다”며 “그 와중에도 엄마가 아시안이라고 놀리는 애들이 있기는 했는데, 내가 참는 것 말고는 할 수 없지 않나. 크게 신경 쓰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현재 부친은 친아버지는 아니었지만, 김한별을 누구보다 아꼈다. 특히 딸의 교육에 공을 들였다. 인디애나 지역에서 가장 좋은 사립 중·고등학교로 진학을 시킬 정도였다. 김성자 씨는 “남편이 나보다 딸을 더 아끼는 것 같다”며 웃었다.
농구는 우연한 기회에 시작하게 됐다. 김한별은 “운동을 간 동생을 기다리다가 옆 체육관에서 농구하는 걸 구경하다가 흥미를 가지게 됐다”고 말했다. 어머니 김 씨는 “얘가 하루는 수영을 안 하고 체육관 가서 농구를 보겠다고 하더라. 그 후로는 자주 체육관을 갔다. 하루는 뒤따라가서 보니까 큰 남자들 사이에서 공을 튕기면서 놀고 있더라. 그 때 ‘아, 얘가 농구가 좋구나’하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삼성생명 김한별. 스포츠동아DB
● 2년만 하겠다던 농구, 국가대표가 될 줄이야
어머니는 딸을 운동선수로 키우고 싶지 않았다. 공부도 잘했기 때문에 의사가 되길 바랐다. 그러나 농구선수로의 재능이 워낙 뛰어났다. 농구 명문 인디애나 대학교에 진학해 프로농구 선수의 길로 접어들었다. 김한별은 “대학 다닐 때 하루는 에이전트를 통해 한국의 삼성생명에서 나에게 입단 제의를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너무 기분 좋았다”며 “쉬운 결정은 아니었지만, 엄마의 나라에서 가족들을 만나고 한국 생활을 경험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김성자 씨는 “처음에는 나한테 ‘엄마, 딱 2년만 프로로 뛸게’라고 말하더라. 한별이가 농구를 너무 좋아해서 그러라고 했는데 그 때는 지금까지 뛰고 있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며 웃었다.
김한별은 지난해 국가대표가 돼 태극마트도 달았다. 말 그대로 ‘가문의 영광’이었다. 올해에는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 출전했고, 남북 통일농구대회에 출전하기 위해 북한 평양을 다녀오는 특별한 경험도 했다.
김한별은 “솔직히 국가대표가 될 줄 몰랐다. 국적을 획득했지만, 앰버 해리스(28)의 귀화를 추진하기도 했고 첼시 리(27) 사건도 맞물려서 내게는 기회가 안 올 줄 알았다”고 말했다.
특히 평양 방문은 가족들에게 자랑할만한 이야기였다. 김한별은 “엄마도 좋아했지만 삼촌, 이모들이 더 좋아하더라. ‘미국에서 자란 조카가 농구해서 국가대표가 되고 북한까지 다녀왔다’며 반겼다. 북한은 미국 켄터키 같은 분위기였다”고 돌아봤다. “평양에 미국 국무장관(마이크 폼페이오)이 방문을 해서 에어포스 원을 볼 수 있었다. 가까이서 본 건 처음이었는데 엄청나게 크더라”며 평양에서의 기억을 되새겼다.
에피소드도 있었다. 당시 방북단은 옥류관에서 평양냉면을 먹었는데, 이 때 카메라가 김한별을 향하자 이에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기도 했다. 사실 김한별은 냉면을 잘 먹지 않는다.
여자농구대표팀은 이번 AG에서 남북 단일팀을 이뤄 나갔다. 이 역시 김한별에게는 잊을 수 없는 추억이었다. 북한 선수 중 로숙영은 ‘한별이 언니를 가방에 담아서 북한에 데려갔으면 좋겠다’는 농담을 할 정도로 유독 자신을 따랐다고 전했다.
김성자 씨는 국가대표 이야기를 하는 딸의 모습을 보며 마냥 흐뭇해했다. “한별이가 자랑스럽다. 나는 근처에도 못 간 북한을 우리 딸이 다녀오고 북한 선수들과 생활도 하지 않았나”라며 딸을 바라봤다.
이에 김한별은 “엄마 세대 분들은 언젠가 북한 방문 길이 열리면 가보고 싶다고들 하시더라. 통일이 되면 엄마랑 같이 백두산에 다녀오고 싶다”면서 모친의 손을 꼭 잡았다.
용인|정지욱 기자 stop@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