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 인터뷰] 특별함을 거부한 특별한 지도자 박항서, “난 스페셜리스트 아냐, ‘노멀 원(평범한 사람)’으로 충분”

입력 2019-01-01 05: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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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항서 매직’과 정면으로 마주하다! 베트남 축구대표팀의 박항서 감독이 최근 베트남 하노이의 한 호텔에서 스포츠동아와 만났다. 박 감독은 2018년의 경쾌한 추억을 되돌아보는 한편, 2019년의 밝은 내일을 그렸다. 환한 미소로 포즈를 취하고 있는 박항서 감독. 하노이(베트남)|남장현 기자 yoshike3@donga.com

2% 아쉬움과 부족함, 절망 대신 ‘우리도 할 수 있다’는 희망이 가득하다. 23세 이하(U-23) 대표팀이 2018년 1월 중국에서 열린 아시아축구연맹(AFC) U-23 챔피언십 준우승을 차지한데 이어 인도네시아 자카르타-팔렘방에서 개최된 아시안게임(AG)에선 4강 신화를 썼다. A대표팀도 ‘동남아시아 월드컵’으로 불리는 스즈키컵에서 정상에 올랐다. 2008년 이후 10년 만에 찾아온 기적에 베트남은 온통 환희로 뒤덮였다.

이 모든 것이 ‘베트남의 국민영웅’으로 자리매김하며 ‘축구 한류’라는 새로운 지평을 연 박항서(60) 감독의 손으로 일군 기적이다.

스포츠동아는 2019년 새해를 맞아 베트남 축구의 돌풍을 진두지휘해온 박 감독을 만났다. 인터뷰는 베트남대표팀이 아랍에미리트(UAE)에서 개막(1월 6일)하는 2019 AFC 아시안컵을 앞두고 담금질을 시작한 지난 12월 24일 하노이에서 진행됐다. 박 감독은 이후 베트남 선수단을 이끌고 27일 전지훈련캠프가 마련된 카타르 도하로 이동했다.

2019년은 베트남축구협회(VFF)와 박 감독이 2017년 10월 맺은 2년 계약기간의 마지막 해다. 만년 약체, 잘해야 ‘다크호스’ 이상의 이미지를 심어주지 못한 베트남에서 그동안 대단한 결실을 맺은 박 감독과 베트남의 위대한 동행은 올해도 계속된다. 아시안컵에서 역대 최고 성적인 8강(2007년)을 뛰어넘을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충만하다.

인터뷰에서 박 감독이 남긴 인상적인 코멘트가 있었다. “난 스페셜리스트가 아니다. 그냥 ‘노멀 원(평범한 사람)’으로 남길 희망한다. 평범함 속에서 지극히 평온한 행복을 찾아가고 싶을 뿐이다. 언제까지 이곳에 남을지 모르겠으나 항상 열정을 쏟고 최선을 다한 축구 지도자로 기억되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물론 지금도 아주 행복하다.”

다음은 박 감독과의 일문일답.

베트남 현지에서 박항서호를 향한 열기와 관심은 상상을 초월한다. 태극기와 베트남 국기가 나란히 새겨진 자국 축구 홍보 팜플릿을 부착한 택시와 차량들을 하노이 시내 곳곳에서 쉽게 접할 수 있었다. 하노이(베트남)|남장현 기자 yoshike3@donga.com


-하노이에서 느낀 열기가 대단했다. 행복한가.

“물론이다. 아무래도 최근의 수확물이 만족스러워서 그럴 것이다. 한국도 아닌, 말도 통하지 않는 타국에서 결실을 냈으니 뿌듯함이 있다. 다만 혼자만의 성공은 아니다. 이곳에서 축구사랑을 보여준 모두가 함께 일군 것이다. 특히 쉽지 않은 과정을 거쳐 정상에 섰다는 성취감이 크다. 만약 결과가 좋지 않았다면 달랐겠으나 팀 수장으로 보람을 느낀다.”


-자신을 향한 스포트라이트가 두렵지 않나.


“왜 무섭지 않겠나. 갑자기 찾아온 엄청난 사랑에 당황스럽기도 하고 두려울 때도 있다. 언제든지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는 불투명한 미래도 걱정스럽다. 그래도 피할 이유가 없지 않나. 세상의 모든 지도자들처럼 열심히 준비하고 결과를 겸허히 받아들이며 책임을 지는 것이 내 역할이자 소명이다.”

베트남 박항서호의 돌풍이 스즈키컵 정상으로 정점을 찍자 일각에서는 ‘모두가 박수를 칠 때 떠나야 한다’는 의견을 개진하기도 했다. 부정적인 뜻이 아니다. 완전히 현장을 떠나라는 의미가 아닌, 새로운 도전을 찾으라는 의미다. 박 감독도 이를 모르지 않는다. 그런데 할 얘기가 있다고 했다. “내 손으로 2020년 1월로 임기만료일이 적힌 계약서에 서명했다. 해피엔딩, 내 안위만 생각했다면 (지금) 떠나는 게 맞다. 다만 내가 한 약속은 지켜야 한다. 단순히 VFF가 아닌, 베트남 국민들과의 약속이다. 약간 성과를 일궜다고 다른 길을 찾는 건 내 인생관과 철학에 부합되지 않는다.” 그는 스페셜리스트라는 평가에는 고개를 저으면서 ‘프로페셔널’이란 표현은 거부하지 않았다.


-지도자 인생에서 2018년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살다보면 수많은 감정을 경험한다. 일단 내 자신에게도 기적이다. 이렇게 결과가 나올지 상상조차 못했다. 베트남과 접촉을 하면서 과거의 자료를 봤다. 8할 이상의 감독이 계약기간을 채우지 못했다. 나도 같은 운명을 겪지 않느냐는 우려도 있었다. 난 특별하지 않다. 주어진 역할에 최선을 다했고, 중재자와 조정자가 됐을 뿐이다. 문제가 없을 순 없었지만 그럼에도 부족한 날 모두가 믿어줬다.”


-현역 시절, 성실함의 대명사였다.


“자화자찬일 수 있겠으나 거부하지 않겠다. 맞다. 성실했다. 노력파에 가까운 선수였다. 성격도 불같고 급하며 다정다감하지도 않았다. 대신 가식은 없었다. 솔직했다. 베트남에서 날 이런저런 ‘리더십’으로 포장하는데, 내가 할 수 있는 건 스킨십이 전부였다. 말이 안 통하니 마음을 전하려면 그 방법이 유일했다. 단점보다는 장점을 최대한 언급했다. 잠재력을 최대치로 끌어내려면 칭찬이 많아야 한다.”

베트남 축구대표팀 박항서 감독. 하노이(베트남)|남장현 기자 yoshike3@donga.com


-지도자로서 본인의 현재 위치는.

“과소평가하고 싶지도, 과대평가할 필요도 없으나 능력만 놓고 볼 때 난 뛰어나지 않다. 그럼에도 경험은 있다. 유명한 감독이라고 할 수 없으나 노하우가 있다. 월드컵대표팀과 K리그에 꽤 오래 몸담았다. 다만 계속 발전하려고 노력 중이다.”

박 감독은 베트남의 제자들에게 노하우를 전수하기 위해 지극히 단순하게 접근했다. 솔선수범하고 부지런한 모습을 보여주자는 생각이었다. 거스 히딩크(네덜란드) 감독과 함께 한 2002한일월드컵의 경험이 큰 도움이 됐다. 말이 안 통하고 문화적인 충돌이 일어났을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요령을 배웠다. 오래 전의 기억을 되살리는 작업이 쉽지 않았으나 결국 실천에 옮겼고 지금에 이르렀다.


-베트남에서 얻은 가장 큰 소득이 있다면.

“믿음이다. 부임 첫 상견례에서 ‘원 팀’을 강조했다. 모든 구성원들이 서로를 믿고 신뢰를 한다. 이영진(56) 수석코치도 그림자처럼 날 도와줬다. 외롭게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았는지 너무 고맙고 미안하다. 단 한 번도 힘든 걸 내색하지 않았다.”


-부임 첫 해의 목표는 무엇이었나.

“솔직히 8개월도 버틸 수 있을까 온통 의문이었다. 큰 계획은 세워뒀으나 전체를 여유롭게 조망할 수 없었다. 두 개의 팀을 이끌면서 하루하루에 충실해야 했다. 솔직히 뭔가 결과를 내고 즐길 틈이 없었다. 즐거움은 잠시 뿐, 곧바로 다음 대회를 준비해야 했다. 스즈키컵과 곧 다가올 아시안컵만 해도 대회 간격이 채 한 달도 되지 않는다. 그렇게 1년 2개월여를 보냈다.”


-베트남에서 궁극적으로 이루고 싶은 건 무엇인지.


“전혀 없다. 밖에선 영웅이라 하는데 난 아주 평범한 축구감독이다. 특별한 꿈도 없다. 환갑이 넘은 지금, 무엇을 더 찾아가겠나. 외모처럼 포근함을 느껴주면 된다. 주변의 모두가 행복하다면 충분하다.”

박 감독에게 ‘왜 베트남을 행선지로 택했느냐‘는 우문을 던졌다. 지극히 솔직한 답이 금세 돌아왔다. 마땅한 대안이 없었다고 했다. 특정국 대표팀이라는 점에 부담은 있으나 선택의 폭은 아예 없었다. 그는 “한국에선 컴백할 기회가 없었다. 프로 현장에서 불러줄 가능성은 거의 없었다”고 했다. 가슴 아픈 과거사이지만 중국 클럽에도 부지런히 노크를 했다. 물론 소득은 ’제로(0)‘였다. 주요 슈퍼리그 구단들이 관심을 갖고 있다는 지금의 중국발 보도를 보면 격세지감이다. 사실 베트남 여론의 처음 반응도 썩 좋지 않았다. 성공보다는 실패에 초점이 맞춰졌고, 환영보다는 따가운 시선이 많았다.

베트남 축구대표팀. 스포츠동아DB


-한 베트남 기자가 ‘박항서의 아이들은 늑대’라고 하더라.

“물고 늘어지는 축구를 해서 그런 듯 하다. 지금도 우리 선수들에게 가장 많이 전달하는 단어가 ‘집중’이다. 여기에 전투의지를 고취시킨다. 혹자는 축구를 즐겨야 한다고 하는데 내 생각은 다르다. 축구는 전투이고, 대회는 전쟁이다. 항상 승전고를 울릴 수 없어도 적과 싸우면 최대한 이겨야 한다. ‘함께 하면 두렵지 않다’는 말도 종종 한다. 다소 왜소한 체격에 콤플렉스를 느낄 필요도 없다. 오히려 체구가 작아 민첩하고 스피드가 좋다. 신체적인 아쉬움이 오히려 장점이 됐다.”


-환경도 많이 바뀌었다고 하는데.

“앞선 지도자들이 어떻게 지휘했는지는 관심이 없었다. 다만 한 가지 대원칙이 있다. 먹고 쉬는 건 확실해야 한다는 점, 풍족하지 않아도 최대한 불편함은 느끼지 않아야 한다. 중국 U-23 대회를 마치고 VFF의 방향이 달라졌다.”


-2019년의 첫 도전이 아시안컵이다.

“대회를 끝내면 다음 대회를 맞이한다. 그런데 너무 즐겁지 않나. 아직 올라갈 곳이 남아 있다. 아시아 정상권이 아니지 않나. 도전자는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우릴 ‘죽음의 조’라고 표현하는데 일단 부딪히고 죽어봐야 진짜 죽는 것이다(베트남은 아시안컵에서 이라크 이란 예멘과 함께 D조에 속해있다). 할 수 있다면 해야 한다. 조별리그 통과가 1차 목표다. 도전이 실패할 수 있는데, 후회는 없어야 한다.”

● 박항서?


▲ 생년월일=1959년 1월 4일 ▲ 출신교=경신고~한양대 ▲ 선수 경력=제일은행(1981년) 육군 충의(1981~1983년) 럭키금성 황소(1984~1988년) ▲ 코치 경력=LG 치타스(1989~1996년) 수원삼성 2군 코치(1997~1999년) 한일월드컵대표팀 수석코치(2000~2002년) 포항 스틸러스 수석코치(2003년) ▲감독 경력=부산아시안게임 감독(2002년) 경남FC 감독(2005~2007년) 전남 드래곤즈 감독(2008~2010년) 상주상무 감독(2012~2015년) 창원시청 감독(2016~2017년) 베트남대표팀 감독(2017~현재) ▲ 수상 경력=체육훈장 맹호장(2002년)

하노이(베트남)|남장현 기자 yoshike3@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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