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의 손자’ 이정후(키움 히어로즈)는 2년간 맹활약하며 자신 앞에 붙어있는 아버지 이종범의 그림자를 지워가고 있다. 지난해 포스트시즌 도중 왼 어깨 부상을 당한 그는 정규시즌 개막전 합류를 목표로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스포츠동아DB
● DNA+노력+자기관리의 삼박자가 만든 결과
“아버지 피를 잘 물려받았다”, “유전자의 힘이 크다”는 이야기를 듣는 당사자는 어떨까. 이정후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다”고 답했다. 결코 동의하지 않기 때문이다. “아무리 좋은 유전자를 갖고 태어나도 노력하지 않으면 그 DNA는 빛을 발하지 못한다. 내 DNA가 남들보다 나은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을 만큼 노력했다고는 자부하고 싶다. 내 자신에게 떳떳하고 싶어서 열심히 한다.”
그의 노력을 엿볼 수 있는 에피소드 하나. 이정후가 졸업한 휘문고는 훈련량이 상대적으로 적은 편이다. 이정후는 고교 시절 매일 아파트 주차장에서 스윙 연습을 했다. 한여름에도 땀을 뻘뻘 흘리며 배트를 돌렸고, 겨울에도 ‘스윙하다 보면 따뜻해질 것’이라는 생각으로 훈련을 계속했다. 어느 순간부터는 이웃들이 “(이)정후야, 오늘도 훈련 중이구나”라고 인사하며 음료수를 건넸을 정도다. ‘이웃사촌’들이 그의 노력을 증명하는 셈이다.
이정후는 “천재라고 불리는 사람이 얼마나 많나. 그러나 재능에 비해 성적이 나오지 않는 사람이 더 많다. 노력 없이는 재능 유지가 안 된다”며 “나 역시 마찬가지다. 열심히 안 하면 당장 올해 추락해도 이상하지 않다”고 강조했다.
재능과 노력에 철저한 자기관리까지 더해진다. 이정후는 시즌 홈경기일 기준, 매일 새벽 1시30분에 잠들고 오전 11시에 기상한다. 잠이 안 와도 1시20분에는 이를 닦고 잘 준비를 한다. 휴대전화를 방에 두면 수면에 방해될까 거실에 내놓는다.
이러한 루틴에는 팀 선배 박병호도 한몫했다. 이정후는 매일 정오 즈음 야구장에 도착한다. ‘오늘은 내가 1등인가’ 싶은 날에도 어김없이 박병호가 먼저 와있다. 이정후는 국내 최고 타자인 박병호와 지난해 처음 한솥밥을 먹었다. 그가 정의한 박병호는 ‘박병호라는 이름이 어울리는 선배’다. “아무도 감히 해내지 못하는 걸 이루는 선배다. 2013년 두산 베어스와 준플레이오프 5차전 9회 동점 3점포를 휘문중 동기들과 본 기억이 선명하다. 그 장면을 지난해 플레이오프 때 다시 만들어내셨다. 그런 선배와 라인업에 이름을 올리는 건 아직도 신기하다.”
키움 이정후. 스포츠동아DB
● ‘스캐 열풍’에 빠진 평범한 20대 청년
그라운드 위에서는 최고의 타자 중 한 명으로 손꼽히지만, 밖에서는 20대 초반의 평범한 청년이다. 이정후는 휘문고 시절 야구부 동료들 외 일반 학생들과도 친분이 있었다. 워낙 서글서글한 성격이라 그를 따르는 친구들이 많은 것도 당연했다. 오전부터 야구장에 출근하지만 다소 여유가 있는 오후 시간에는 친구들과 영화를 보고 카페에서 수다를 떠는 것이 취미다. 최근에는 드라마 ‘SKY 캐슬’을 보는 낙에 빠졌다. 학창 시절 친구들이 겪던 고충이 드라마로 나오는 것이 신기하다고.
신인왕, 골든글러브, 아시안게임 금메달까지…. 이정후는 2년차까지 이룰 수 있는 것은 다 이뤘다. 그의 목표는 ‘또래 중 최고 유지’다. 1998년생 동기들보다는 잘하고 싶다는 것이 그의 바람이다. 동갑내기 박치국(두산 베어스), 고우석(LG 트윈스)과 프로에서 맞붙었지만 결과는 신통치 않았다. 박치국에게 2타수 무안타, 고우석에게 1타수 무안타로 묶인 것을 똑똑히 기억하며 “반드시 다음 타석에서 되갚겠다”고 각오하는 이정후다. 이밖에도 윤성빈, 나종덕(이상 롯데 자이언츠), 유승철(KIA 타이거즈), 김혜성(키움) 등 ‘베이징 키즈’들이 즐비하기 때문에 이들 중 최고를 유지한다면 곧 한국야구의 미래로 우뚝 설 수밖에 없다.
이정후는 한화 이글스와 준플레이오프 도중 왼 어깨 관절와순 부상을 입었다. 당초 개막 엔트리 합류가 불투명했지만 재활 속도가 워낙 좋다. 이정후의 목표도 개막전 출장이다. 미국 애리조나 스프링캠프 명단에도 이름을 올렸다. 지난해 스프링캠프 합류 불발로 느낀 아쉬움을 달래겠다는 각오다. 이정후는 “올해는 최대한 많은 경기에 나가 팀에 도움이 되고 싶다. 1군에 꾸준히 머물러 활약한다면 시즌 후 프리미어12 대표팀에도 뽑힐 수 있을 것”이라며 “시즌 때 좋은 모습을 보이고 태극마크를 달아 그 활약을 이어가는 것이 2019년 목표”라고 당차게 밝혔다.
고척|최익래 기자 ing17@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