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 발리볼] 솔로몬보다 더 많은 지혜가 필요한 V리그 일정 짜기

입력 2019-02-07 10: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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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도로공사 김종민 감독(왼쪽)-흥국생명 박미희 감독. 스포츠동아DB

6일 김천에서 벌어진 도로공사-흥국생명의 V리그 5라운드는 이번 시즌의 순위를 결정하는 변곡점이었다. 단순히 1위와 4위가 승점3을 놓고 다투는 경기가 아니었다. 최근 4연승으로 선두를 굳혀가던 흥국생명이 도로공사마저 넘어선다면 리그우승을 차지할 가능성이 높았다. IBK기업은행을 4일 풀세트 혈투 끝에 누르고 두 팀의 차이를 승점5로 벌렸던 흥국생명이기에 승점43의 IBK기업은행으로서는 남은 7경기에서 리그우승을 포기하고 플레이오프 티켓을 확정하는 쪽으로 시즌 운행방향을 바꿀 수도 있었다.


● 6일 도로공사-흥국생명 경기가 흥미로운 이유

도로공사에게도 중요하긴 마찬가지였다. 현대건설에 연패를 당하며 승점을 추가하지 못했지만 GS칼텍스가 5일 현대건설에 덜미를 잡히면서 한 때 사라질 뻔했던 플레이오프 티켓이 추격 가능한 범위 안으로 들어왔다.

그래서 더욱 흥국생명을 상대로 승점3이 필요했는데 결국 해냈다. 도로공사와 GS칼텍스는 나란히 14승9패(승점40)를 기록해 3,4위다. 이제 두 팀의 6라운드 맞대결은 물론이고 남은 7경기에서 3위 자리를 결정내야 한다.

승패의 세계는 참으로 잔인하다. 두 팀의 감독은 중고교를 함께 나온 죽마고우다. 울산에서 함께 배구선수 생활을 시작해 마산 중앙고로 진학해 3년간 미운정 고운정이 다 들었다. 틈나면 함께 술잔도 기울이고 속내도 털어놓는 막역한 관계지만 공교롭게도 친구의 눈에서 눈물이 나와야 봄 배구에 나갈 수 있는 잔인한 운명의 장난에 빠져들고 말았다.

● 피로에는 장사가 없었던 선수들

도로공사-흥국생명의 5라운드는 경기일정이라는 관점에서 흥미를 모았다.

흥국생명은 4일 인천에서 IBK기업은행과 혈투를 끝낸 뒤 6일 김천에서 경기를 했다. 체력이 변수였던 경기는 예상대로 도로공사의 일방적인 리드였다. 2세트 한때 흥국생명이 앞서갔지만 박미희 감독의 표현처럼 흥국생명 선수들의 발이 무거웠다. 풀세트 경기로 가뜩이나 몸이 천근만근이었던 흥국생명 선수들은 고비를 넘기지 못하자 모래성처럼 무너졌다. 부상 없이 경기를 마친 것에 감사해야 할 정도로 선수들은 많이 지쳐 있었다.

도로공사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12월23일 GS칼텍스와의 홈경기에서 3-1로 이긴 뒤 크리스마스에 화성에서 IBK기업은행와 원정경기를 펼쳤다. 가뜩이나 베테랑이 많은 도로공사 선수들의 몸도 무거웠다. 제대로 해보지도 못하고 완패 당했다. 그만큼 하루만 쉬고 경기를 하는 것은 팀과 선수들에게 무리라는 것을 확인시켰다.

● 극한의 경기 일정이 나온 이유는

이런 경기일정을 놓고 네티즌들은 한국배구연맹(KOVO)을 욕한다. 이번 시즌 여자부에서 하루 걸러서 경기를 벌인 것은 모두 10차례다. 도로공사가 3차례로 가장 많다. 흥국생명과 현대건설은 각각 2차례다. GS칼텍스, IBK기업은행, KGC인삼공사도 각각 1차례 하루 걸러서 경기를 하는 일정을 소화했다. 하루 걸러서 벌어진 승패는 3승7패다. 그만큼 휴식이 적은 팀은 불리하다는 것이 확인됐다. 도로공사는 올스타브레이크 전후로 18일을 쉬기도 했다. 오랜 실전공백 뒤의 첫 경기도 져서 변칙 일정에 가장 많은 피해를 봤다.

팬들은 결과만 놓고 경기일정을 비난하겠지만 이렇게 될 수밖에 없었던 속사정도 있다. 지난해 도쿄 세계선수권대회에 대표선수들이 차출되면서 여자부는 시즌개막을 늦췄다. 당초 일정은 10월13일에 시작해 11월5일에 1라운드를 마치는 것이었지만 여자부만 시즌개막을 10월22일로 늦추면서 1라운드 일정이 왜곡됐다. 이 바람에 하루만 쉬고 하는 경기가 많이 생겼다.

이는 여자부 각 구단이 대표선수들의 출전을 위해서 감수하겠다고 했던 것이다.

또 크리스마스, 새해 첫날, 설날연휴 등에 경기를 열다보니 당초 모든 팀에게 단 한차례씩만 돌아가려던 하루 걸러서 하는 경기가 더 늘어나고 말았다.

● 하루 걸러서 하는 경기를 막으려면

하루 걸러서 하는 경기일정이면 선수들은 쉴 틈이 없다. 경기를 마치면 원정버스를 타고 이동해 다음날 새 경기장에서 코트 적응훈련을 하고 그 다음날 경기를 벌여야 하기 때문이다. 선수들에게 휴식을 주려고 코트 적응훈련을 생략하는 사령탑은 없다. 그만큼 배구가 예민한 감각의 운동이기 때문이다.

선수들이 더 완벽한 컨디션에서 경기를 하기 원한다면 때로는 휴일경기를 포기해야 하지만 KOVO는 아직 선수들의 체력보다는 관중의 편의를 먼저 생각한다. 프로스포츠라면 선수와 팬 가운데 후자를 선택할 수밖에 없다. 이번에도 설 연휴에 쉬지 않고 경기를 치른 덕분에 시청률과 관중동원에서는 성공적인 수치가 나왔다. 프로스포츠는 어느 정도 선수들의 희생을 요구한다.

다만 다음 시즌부터는 선수들의 희생을 최소화하는 방안도 고려해야 한다.

축구처럼 한 경기를 마치면 최소한 48시간은 휴식을 보장하는 로컬룰을 만든다면 선수혹사 우려는 사라질 수도 있다. 변수는 2020도쿄올림픽 예선전이다. 현재의 일정이라면 시즌 개막은 11월 9일이 유력하다. 봄 배구의 끝은 4월 1일인데 이 경우 이번 시즌보다 더 빡빡한 일정도 예상된다. 그 것이 싫다면 대표선수들 없이 10월에 개막해야 한다. 물론 이는 구단들이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서 솔로몬의 지혜로도 모자란 다음시즌 V리그 일정 짜기다.

김종건 전문기자 marco@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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