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성폭력 눈감은 유바리 국제영화제

입력 2019-02-18 06:5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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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감독 김기덕. 동아닷컴DB

‘미투’ 장본인 김기덕 개막작 초청
해외서 메가폰 잡는 비양심도 문제


영화제란 무엇인가. 성추행 가해자로 지목된 김기덕 감독과 일부 국제영화제의 행태로 새삼스레 영화제의 가치를 되묻고 싶어진다.

그래서 영화제란 무엇일까. 창작의 자유를 보장하고 독립성을 담보한 다양한 예술활동을 지지하는 마당. 시대와 함께 호흡하며 더불어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무대. 저마다 주제는 달라도 영화제의 지향은 대개 비슷하다. 많은 이들이 영화제를 찾아 문화적 자유와 시대적 공감 그리고 문제의식을 ‘수혈’ 받으려는 이유도 이와 같다.

하지만 김기덕 감독과 일부 국제영화제의 행보는 이런 무대가 오랫동안 쌓아올린 고유한 기치를 허물어뜨리고 있다. 자신의 영화에 출연한 여성배우들에게 성폭력을 가한 혐의를 받는 감독의 영화를 그대로 초청했기 때문이다. 영화와 연출가의 세계를 떼어놓고 각기 달리 판단할 수 없다는 점에서 “영화제가 성폭력 가해자의 편에 서겠다는 뜻”이라고 지적한 여성단체들의 주장은 일면 타당해 보인다.

논란이 다시 촉발된 계기는 3월7일 일본에서 개막하는 유바리 국제판타스틱영화제가 김기덕 감독이 2017년 촬영한 ‘인간, 공간, 시간 그리고 인간’을 개막작으로 초청하면서다. 지난해 2월 베를린 국제영화제가 파노라마 스페셜 부문에서 영화를 소개한 뒤 꼭 1년 만이다.

그 사이 유럽 몇몇 영화제를 통해 작품을 공개해온 감독은 국내에서 제기되는 논란과 우려를 철저히 외면한 채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심지어 최근에는 카자흐스탄 알마티에서 새 영화 촬영까지 마쳤다. ‘딘’이라는 제목으로 알려진 영화는 러시아가 투자해 올해 현지 개봉을 준비하고 있다. 사실상 영화 작업이 불가능한 국내 상황을 피해 해외에서 작품을 이어가겠다는 ‘몰염치한 의지’로 비칠 가능성이 크다.

이에 동조하는 일부 영화제 역시 전 세계적으로 확산된 ‘미투 운동’의 참뜻을 저버린다는 시선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 아무리 표현의 자유와 독립성이 보장돼야 하는 무대라고 해도 피해 주장이 이어지는 상황에서 강행되는 이런 선택은 인권에 대한 외면이자 의혹을 받는 감독에게 먼저 면죄부를 주는 행위로밖에 읽히지 않는다.

이해리 기자 gofl1024@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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