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창용. 사진제공|스포츠코리아
임창용의 에이전트를 맡고 있는 스포츠인텔리전스그룹은 11일 “임창용이 24년간의 프로야구 선수 생활을 마치고 은퇴를 결정했다”고 밝혔다.
임창용은 “선수 생활을 마무리 한다고 생각하니 시원섭섭하다. 갑작스럽게 은퇴를 결심하게 돼 향후 계획은 조금 더 고민해볼 예정이다”며 “이제는 선수로서가 아닌 다른 방향으로 한국 야구 발전에 기여하고 싶다. 그동안 많은 관심과 응원을 보내주신 팬 여러분께 죄송하고 감사하다”는 소감을 전했다.
해태 시절 임창용.
● 1995년, 뱀직구의 등장
임창용은 광주진흥고를 졸업하고 1995년 해태 타이거즈(현 KIA 타이거즈)에 고졸우선지명으로 입단했다. 1년 차 아무것도 모르는 선수였지만, 역동적인 사이드암 폼에서 뿜어져 나오는 시속 150㎞ 안팎의 춤추는 공은 1군 데뷔를 곧바로 가능케 했다. 무브먼트가 심한 공에 곧바로 ‘뱀직구’라는 타이틀이 붙었다.
14경기에서 29.1이닝을 던지며 평균자책점 5.83을 기록했고, 이를 발판 삼아 2년 차인 1996년에는 당당히 팀의 구원투수 한 축을 맡았다.
주요보직은 셋업맨이었지만, 선발로도 마운드에 종종 오르며 전천후 자원으로 활약했다. 해태 왕조의 대업에 여러 퍼즐조각을 채운 선수 중 하나였다. 1996년(49경기), 1997년(64경기), 1998년(59경기)까지 혹사에 가까운 선택을 받으며 두 번에 걸친 한국시리즈 우승에 큰 공을 세웠다.
삼성 시절 임창용. 스포츠동아DB
● 1999년, 빅딜에 이은 ‘애니콜’ 탄생
해태는 구단 경영난으로 1998시즌 이후 삼성 라이온즈와 대형 트레이드를 단행했다. ‘양준혁·황두성·곽채진+현금 20억 원’을 받는 조건으로 임창용을 내줬다.
갑작스럽게 파란색 유니폼을 입게 됐지만 임창용은 흔들리지 않았다. 삼성 입단 첫해인 1999년에 무려 71경기에 나서 13승4패38세이브 평균자책점 2.14의 기록을 남겼다. 2000년에도 52경기를 소화하며 당시 ‘언제든 부르면 나간다’라는 의미를 담아 삼성의 휴대전화 브랜드인 ‘애니콜’이란 새로운 별명을 얻기도 했다.
2001년에는 선발로 보직을 전환, 그해 14승6패1세이브 평균자책점 3.90의 좋은 기록을 남겼다. 소화한 이닝도 무려 184.2이닝이나 됐다. 2002년에는 17승6패2세이브 평균자책점 3.08을 기록해 삼성의 창단 첫 한국시리즈 우승을 이끌기도 했다. 이 해에는 204.1이닝을 책임졌다.
야쿠르트 시절 임창용.
● 암흑기 뒤 부활, ‘창용불패’ 신화
임창용에게 2000년대 중반은 어둠의 시기였다. 만족스럽지 못한 프리에이전트(FA) 계약과 팔꿈치 부상 후유증으로 2007년까지 계속 부진한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2008년에 도모한 해외진출이 ‘대박’을 터트렸다. 일본프로야구 야쿠르트 스왈로즈에 입단해 5시즌간 128세이브 평균자책점 2.09를 기록하며 전설의 2막을 열었다. 30대를 넘어선 나이에도 시속 160㎞에 가까운 공을 던져 국내외 언론과 팬들을 모두 들썩이게 만들었다. 이를 바탕으로 2013시즌에는 메이저리그 시카고 컵스에 입단, 코리안빅리거로 활약하며 한·미·일 무대를 모두 경험한 투수가 됐다.
임창용. 스포츠동아DB
● ‘KBO리그 복귀’ 그리고 고향 팀에서의 우승
2014시즌을 앞두고 삼성으로 복귀하면서 다시 한번 베테랑의 투혼을 발휘했다. 2015년까지 두 시즌 동안 64세이브를 올려 노장의 살아 있는 구위를 힘껏 자랑했다.
그러나 시즌 말미 해외 원정도박 사건에 휘말리며 구단으로부터 방출 통보를 받았고, KBO로부터 72경기 출장정지 중징계도 받았다. 선수생활이 끝나는 듯했지만 2016시즌을 앞두고 고향 팀인 KIA가 임창용을 전격 영입해 선수생활을 계속 이어가게 됐다.
2017시즌에는 팀 최고참 선수로 다시 한번 타이거즈에 우승을 안겼다. 51경기에 나서 8승6패7세이브9홀드를 기록하며 평균자책점 3.78을 마크했다. 2018시즌에도 중간계투와 선발을 오고가며 전천후 활약을 펼쳤으나 시즌이 종료된 뒤 곧바로 전력 외 자원으로 분류돼 방출 통보를 받았다. 비시즌 기간에 타 팀 이적을 모색하며 현역 연장 의지를 드러냈으나 최종 불발되며 결국 11일 은퇴를 선언했다. 파란만장했던 24년의 프로생활이 마무리되는 순간이었다.
장은상 기자 award@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