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움 이정후. 스포츠동아DB
이정후(21·키움 히어로즈)의 ‘롤 모델’은 아버지 이종범(현 LG 트윈스 2군총괄)이 아니다. 어린 시절 국내 최정상급 야구선수였던 아버지를 가까이서 지켜봤지만 야구를 시작한 뒤 롤모델로 삼은 이는 스즈키 이치로(46)였다. 등번호를 입단 첫해 41번에서 2년차 때 51번으로 바꾼 것도 이치로 때문이었다. 이치로는 아마추어 시절부터 일본프로야구 오릭스, 메이저리그 시애틀 매리너스를 거치는 동안 51번을 떼지 않았다.
이치로는 지난 20~21일 일본 도쿄돔에서 열린 시애틀과 오클랜드 애슬레틱스의 메이저리그 개막 2연전을 마친 뒤 공식 은퇴를 선언했다. 1991년 오릭스에 입단한 뒤 29년 만에 유니폼을 벗은 것이다.
그의 은퇴는 태평양 건너 한국의 이정후에게도 찡한 울림을 줬다. 24일 사직 롯데 자이언츠전에 앞서 만난 이정후는 “다른 선수들의 은퇴 소식과는 확실히 다른 느낌이었다. 야구를 처음 시작했을 때부터 동경하던 선수였다. 롤모델의 은퇴는 뭔가 헛헛한 느낌이었다”고 밝혔다. 이정후는 자신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도 “Adieu 51”이라는 글귀와 함께 이치로의 사진을 게재했다.
이정후는 올시즌에 앞서 이치로를 한 차례 만났다. 키움의 미국 애리조나 1차 스프링캠프지인 피오리아 스포츠컴플렉스는 시애틀의 훈련장이다. 이정후는 캠프 기간 이치로를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만났다. 먼발치에서 지켜봤기에 별다른 대화조차 나누지 못했지만 “아우라가 느껴졌다”는 것이 그의 소감이었다.
롤 모델을 떠나보낸 만21세 이정후는 이제 누군가의 롤 모델이 되는 자신을 그리고 있다. 그는 “나 역시 이치로처럼 오랜 시간 프로에서 활약하고 싶다. 누군가의 롤 모델이 되는 순간이 왔으면 좋겠다”는 진심을 드러냈다. 이를 위해서는 지금보다 더 날카로운 감각을 유지한 채 수년 더 활약해야 한다는 이정후다.
세 번째 시즌에 대한 준비는 끝났다. 개막 엔트리 합류 자체가 절반의 성공이다. 이정후는 지난해 한화 이글스와 준플레이오프에서 수비 도중 왼 어깨 부상을 입었다. 수술 후 5~6월 복귀가 예상됐지만 겨우내 재활에 매진했고, 개막 엔트리 합류에도 성공했다. 23일 롯데와 개막전에서 대타로 출장한 그는 안타와 타점 하나씩 기록하며 첫 단추를 잘 꿰었다. 이정후는 “부상 직후에만 해도 개막전 출장은 생각지 못했다. 하지만 트레이너 팀에서 정말 신경을 많이 써줬다”며 “따뜻한 미국에서 재활할 수 있도록 도와주신 감독님, 훈련량을 조정해주신 코치님들 모두 감사드린다. 앞선 2년보다 조금 더 뜻깊은 개막전이었다”고 강조했다.
사직|최익래 기자 ing17@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