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 발리볼] 최태웅 감독과 울지 않던 두견새 이승원

입력 2019-03-27 09:3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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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일 천안 유관순체육관에서 ‘2018-2019 도드람 V리그’ 천안 현대캐피탈과 인천 대한항공의 챔피언결정전 3차전 경기가 열렸다. 현대캐피탈 최태웅 감독이 선수들에게 작전을 보내고 있다. 천안|김민성 기자 marineboy@donga.com

26일 현대캐피탈의 우승으로 막을 내린 V리그 남자부 챔피언결정전에서 가장 눈길을 모은 장면은 승장 최태웅 감독의 눈물 인터뷰였다. 다 큰 남자가 그렇게 펑펑 울 줄은 누구도 예상 못 했다. 그만큼 감정이 복받쳤던 모양이다.

그에게는 아픈 손가락이었던 이승원 얘기를 꺼내는 순간 주체하지 못한 눈물이 흘러내렸다. 감동적이면서도 멋진 인터뷰를 이끌어냈던 오효주 KBSN 아나운서는 “사실 ‘이승원으로는 우승 못 한다는 얘기가 많았는데 어떻게 생각했느냐’라고 질문하려고 했지만 너무 돌직구 같아서 에둘러 말했다”고 털어놓았다. 그렇게 했더라도 최 감독의 눈물은 터졌을 것으로 본다. 그만큼 이번 시즌 내내 이승원을 둘러싸고 많은 말들이 오갔다.

● 가장 욕을 많이 먹은 선수

노재욱이 보상선수로 빠져나가면서 시작된 일이었다. 최 감독은 이승원에 많은 공을 들였다. 비시즌 때 “우리 승원이 어떻게 하면 되겠냐”라고 주위에 묻기도 했다. 새가 알에서 깨어나기까지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다. 이승원도 그랬다. 잘하다가 못하다가를 반복했다. 어느 순간 이제 됐다 싶으면 부상이 찾아왔다. 우여곡절을 겪으면서도 감독은 주전으로 출장시켰다. 팬들의 시선은 좋지 못했다. 떠나간 노재욱을 향한 아쉬움이 이승원에게는 비난의 칼날로 변해서 날아들었다. 조금이라도 결과가 좋지 못하면 그를 탓했다.

시즌 초반 감독은 항변했다. “지금 승원이가 우리 팀에서 주전세터를 하면서 한 번 밖에 지지 않았다. 노재욱이 뛸 때보다 더 성적이 좋다”면서 이전시즌 기록까지 찾아내며 이승원을 위해 보호막을 쳤다. 팬들은 냉담했다. 이승원은 이번 시즌 현대건설 이다영과 함께 시즌 내내 가장 많은 욕을 먹은 선수였을 것이다. 댓글에는 인신공격도 많았다. 팀을 떠나라 배구를 그만두라는 글도 있었다. 지금 그들은 이 결과를 어떻게 보고 있을지 궁금하다.

그래도 감독은 시간만 나면 이승원을 칭찬했고 기대감을 드러냈다. “그렇게 비난을 받으면서도 버티는 것을 보면 멘탈은 정말 강한 선수”라는 말도 했다. 이런 감독까지 싸잡아서 팬들은 비난했다. 그의 판단을 욕했다. 내 믿음을 누구도 알아주지 않고 모두가 반대로 말할 때 그는 외로워진다. ‘과연 내가 맞는 것인지’라며 심지가 약한 사람이라면 흔들렸을 것이다.

● 이런 선수를 감싸고 용기를 준 감독

그는 시즌 마지막까지 이승원을 두둔했다. “이제 곧 터질 것 같다”고 했다. 기자는 지금도 궁금한 것이 그 발언의 속내다. 명 세터출신답게 감독이 어떤 계기를 본 것인지 아니면 이승원을 위한 립서비스였는지 궁금하다. 나중에 기회가 되면 꼭 물어볼 생각이다. 최태웅 감독은 세터출신으로서 그 자리의 무게와 결과를 책임지는 숙명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이승원을 혼도 내면서도 속으로는 계속 마음아파 했다. “승원이가 힘들어하는 것이 싫었다. 힘들었을 때 도와주지 못한 것이 마음 아팠다”는 말은 진심이었을 것이다.

그렇게 감독에게 많은 감정을 안겼던 이승원은 마침내 플레이오프~챔피언결정전을 거치면서 기대치를 넘는 대활약을 했다. 승리를 향한 그의 열망은 3차전 수비 도중 광고판 사이로 다이빙하는 장면에서 잘 드러났다. 그 모습이 더욱 감독의 마음을 짠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그리고 찾아온 기적 같은 우승.

이제 이승원은 모두가 안 된다고 했던 우승을 만들어낸 세터가 됐다.

이승원과 최태웅 감독이 만든 아름다운 결말을 보면서 문득 일본 전국시대를 대표하는 무사 3명과 울지 않는 두견새 얘기가 생각났다. 오다 노부나가는 “울지 않는 새는 필요 없으니 죽여야 한다”고 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새가 울지 않으면 울도록 만든다”고 했다. 도쿠가와 이에야쓰는 “새가 울 때까지 기다린다”고 했다. 결국 일본의 천하통일은 기다리고 기다렸던 도쿠가와가 차지했다. 최태웅 감독은 울지 않는 두견새에게 울 수 있다고 용기를 주면서 기다렸고 마지막에는 함께 울기까지 했다. 그런 면에서 이승원은 정말로 감독 복이 많은 선수 같다.

김종건 전문기자 marco@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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