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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한화 이글스가 체감한 시간은 좀 다를지도 모른다. 이미 한 시즌을 다 치른 듯 크고 작은 사건의 소용돌이가 쉴 새 없이 휘몰아쳤기 때문이다. 벌써 주전 2명이 전열을 이탈했다.
좌익수 이용규는 유례없는 트레이드 파동으로 징계(무기한 참가활동 정지)를 자초했고, 유격수 하주석은 경기 도중 왼쪽 무릎 십자인대가 파열되는 큰 부상을 입었다.
이뿐만이 아니다. 딱 한 바퀴를 돌고는 선발로테이션이 붕괴됐다. 3~5선발을 맡기로 한 국내투수 3명 중 김재영은 부상(우측 허벅지 근좌상)으로 낙마했고, 프로 3년 차 김성훈은 지금 당장이 아니라 좀더 멀리 보고 다듬어야 할 원석임이 드러났다. 외국인 원투펀치 워윅 서폴드와 채드 벨, 프로 2년 차 좌완 박주홍의 부담이 더 커졌다.
상대팀과 원치 않는 마찰까지 빚었다. 개막 2연전에서 등판 기회를 잡지 못한 마무리 정우람에게 점검 기회를 주려던 한용덕 한화 감독의 의도에 상대 감독이 ‘투수 대타’ 기용으로 응수하면서 뜨악한 분위기가 조성됐다. ‘오해’로 여기고 순순히 물러섰지만, 이용규 사태로 인해 가뜩이나 여론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 한화로선 결코 유쾌하지 않은 상황전개였다.
상처에는 새 살이 돋는 법이다. 개막을 전후로 거듭해서 큰일을 겪고 있지만, ‘생각보다 강한 팀’이란 인상을 한화는 팬들에게 심어주고 있다. 김태균, 송광민, 이성열 등 팀을 이끄는 노장선수들의 활약이 눈부신 가운데 이용규를 대신해선 육성선수 입단과 방출이란 세파에 시달리면서도 좌절하지 않은 김민하, 하주석을 대신해선 10년 넘는 프로 경력에도 전성기를 꼽을 수 없는 오선진이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
한용덕 감독의 빠른 현실인정과 궤도수정도 인상적이다. 개막 4경기 만에 “자꾸 내가 거짓말쟁이가 되는 것 같지만, 선발진이 다 이렇게 흔들리면 야수들도 힘들다”며 선발로테이션 조정을 선언했다. “내 욕심이 컸던 것 같다”는 말에선 평범한 리더라면 좀처럼 내색하기 힘든 ‘반성’과 ‘성찰’의 의지까지 분명하게 읽힌다.
한화는 지난해 리빌딩의 첫 단추를 끼면서도 정규시즌 3위라는 기대이상의 성과를 거뒀다. 10년간 남의 가을잔치를 부럽게 쳐다만 봤던 팬들은 열광했고, 덩달아 올해의 기대치는 상승했다. 그러나 필연적으로 그 과정은 순탄치 않을뿐더러 고단한 여정일 수밖에 없음이 3월 한 달 여실히 나타났다. 더군다나 이제 막 ‘야구의 계절’이 돌아왔을 뿐이다. 앞으로도 6개월여가 남았다.
올 시즌 한화는 ‘Bring It!’이라는 슬로건을 내걸었다. ‘판을 흔들었던(Break The Frame)’ 지난해의 성취가 신기루가 아님을 스스로 입증하는 길 앞에 도사린 더 큰 도전을 직감한 듯 올해는 ‘어떤 상황에서든 흔들림 없이 끝까지 승부하겠다’는 결의를 새 슬로건에 담았다. 남은 6개월여 ‘Bring It!’의 의미를 되새기며 ‘끝까지 승승장구하는’ 한화를 기대해본다.
정재우 기자 jac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