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스볼 피플] ‘제로맨’ LG 정우영, 스물다움과 스물답지 않음 사이

입력 2019-04-09 12: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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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 트윈스 신인 정우영은 올 시즌 7경기에 등판해 11.1이닝을 소화하며 1홀드, 평균자책점 ‘0’을 기록하고 있다. 시즌 초반이지만 빼어난 구위로 팀의 필승조 한 축을 맡고 있다. 스포츠동아DB

누구나 그렇지만 정우영(20·LG 트윈스)은 유독 입체적이다. 대화를 나눌 때면 만 스물이라는 나이가 믿기지 않을 만큼 깊은 철학이 느껴지는 대답을 내놓을 때가 있다. 그런가 하면 자신의 취미를 해맑게 웃으며 말할 때는 영락없는 스무 살 소년이다. 개막에 맞춰 LG 구단이 준비한 정우영의 유니폼 마킹지는 벌써 한 차례 매진됐다. LG 팬들은 ‘순수한’ 정우영과 ‘능구렁이’ 정우영 모두 사랑할 준비를 끝냈다.


● ‘근심 가득’ 고교생이 자신감을 찾기까지

정우영은 7일까지 7경기에 등판해 11.1이닝을 소화하며 1홀드, 평균자책점 ‘제로’를 기록 중이다. WHIP(이닝당 출루허용률)은 0.88로 수준급이다. 올해 LG의 2차 2라운드 지명을 받은 신인이 1군 마운드에 꾸준히 오르는 것만으로도 ‘사건’인데, 성적까지 빼어나다. 다른 누구보다 본인이 놀라고 있다. 정우영은 “솔직히 이렇게 결과가 좋을 줄은 몰랐다. 내가 가진 걸 아낌없이 보여주면서 결과까지 좋으니 만족스럽긴 하다”고 자평했다.

강남중 2학년 시절 무릎을 다친 정우영은 1년 유급을 했다. 타자로 나서 주루 플레이 도중 상대의 스파이크에 왼 무릎을 찍혔다. 부상이 심각한 건 아니었지만 김정길 강남중 감독의 제안으로 유급을 했고, 7개월간 쉬면서 키가 10㎝ 가까이 훌쩍 자랐다.

서울고 2학년 때까지만 해도 ‘전국구 에이스’ 수준의 투수는 아니었다. 하지만 3학년부터 차츰 기회를 잡았고, LG의 2라운더가 됐다. 정우영은 “고등학교 내내 자신감이 없었다. 한 경기 부진하면 지명을 못 받을 것 같았다. 감독님이 당초 마무리 투수로 기용하려던 것도 자신감이 없으니 선발로 가게 된 것”이라고 회상했다. 변화의 계기는 LG의 지명이었다. 예상보다 높은 순위의 지명을 받았고 부담을 떨쳤다. 그러자 마운드에서 공이 달라졌고 지난해 9월 협회장기 대회에서 4경기 18.2이닝 2실점 역투를 해냈다. 정우영은 “이때 자신감을 얻고 상승세를 탄 게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편하게 던지는 게 결과가 좋다는 걸 처음 깨달은 순간”이라고 회상했다.


● 스무 살답지 않은, 능수능란한 정우영

투수의 로망은 선발이다. 젊은 선수들일수록 이런 경향이 강하다. 아마추어 시절 대부분 팀의 ‘에이스’ 역할을 맡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우영의 생각은 다르다. “보직은 팀의 필요가 결정한다”는 평범한 답변 속에 자신의 생각을 전했다.

“솔직히 지금 평균자책점 0의 활약이 얼마나 길게 이어지겠나. 언젠가는 깨질 것이다. 아무래도 불펜으로 나가 짧은 이닝만 던지기 때문에 타자들의 생소함이 아직은 남아있을 것이다. 눈에 익으면 안타를 맞는 빈도가 늘어날 것이다. 오히려 불펜으로 나가는 게 다행이다. 노출이 되면 나 역시 진화해야 한다. 여러 변화를 준비 중인데, 지금 자신감을 얻은 건 불펜이라는 보직 덕분이다.”

스무 살답지 않은 건 그라운드 밖에서도 마찬가지다. 정우영의 취미는 모교 방문이다. 서울고 근처만 가도 고교 시절이 생각나 행복하다는 정우영이다. 경기가 없는 날이면 서울고를 찾아 후배들에게 밥을 사주거나, 유정민 감독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게 그의 낙이 됐다. 자칫 유흥에 빠지기 쉬운 20대 초반의 선수들과 다른 면모다.

정우영의 프라이드는 서울고는 물론 트윈스에게도 닿아있다. 정우영은 아마추어 시절부터 잠실구장을 즐겨 찾았다. 지난해 지명 후인 10월 3일 구단 행사를 위해 잠실구장을 찾았을 때 느낀 벅참은 남들의 몇 배 이상이었다. LG가 가을야구에 탈락했던 10월 13일 인천 SK 와이번스전도 후배와 함께 찾아 응원을 했다는 정우영이다. 이러한 프라이드는 ‘꾸준한 LG맨’이라는 목표와 이어진다. “차우찬·박용택 선배처럼 꾸준한 선수가 되고 싶다. 특히 요즘은 (차)우찬 선배를 보고 많은 걸 느낀다. 팀을 위해 헌신하는 선배다. 배울 게 참 많다.”

LG 정우영. 스포츠동아DB


● 스무 살다운, 해맑은 정우영

마냥 성숙한 것 같으면서도 스무 살 특유의 해맑음도 묻어난다. 정우영이라는 이름은 스포츠계에 유독 흔하다. 축구계에만 국가대표 정우영(알 사드)과 ‘최대 유망주’ 정우영(바이에른 뮌헨)이 있다. 또한 SBS스포츠 정우영 캐스터도 있다. 유명세를 탄 건 LG의 정우영이 가장 늦지만 포털사이트 검색에서는 그가 가장 먼저 뜬다. 검색 빈도에 따라 순위가 바뀐다. 그만큼 많은 야구팬들이 정우영의 이름을 검색했다는 의미다. 정우영은 “동명이인이 많다. 검색을 해보면 내 이름이 뒤에 나오는데, 솔직히 먼저 나오는 게 좋긴 하다”라며 쑥스럽게 웃었다.

지금의 성과에 만족할 리는 없다. 시작이 반이라는 말이 있지만, 나머지 반을 채우기 위해서는 이보다 훨씬 더 노력을 해야 한다고 정우영은 확신한다. 신인에게 신인왕은 당연한 목표이지만, 정우영은 그보다 더 먼 미래를 그리고 있다. “처음에 반짝하고 사라진 신인들이 많지 않나. 그렇게 되고 싶지는 않다. 지금보다 훨씬 힘든 시기가 분명 찾아오겠지만 어떻게든 이겨낼 생각이다.”

어린 시절부터 잠실 마운드의 주인공을 꿈꿨던 정우영인만큼 팬들에게 전하는 메시지도 확고했다. 정우영은 “내 마킹지가 품절됐다는 얘기를 부모님께 들었다. 솔직히 기분이 너무 좋았다. 아직 개막한지 얼마 안 됐는데 많이 찾아와줘 기분이 좋다. 첫 잠실 등판에서 느낀 설렘은 평생 잊지 못할 것 같다. 그 환호가 익숙해지도록, 오랫동안 좋은 선수로 남겠다”는 말로 인터뷰를 마쳤다.

최익래 기자 ing17@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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