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제공=CJ엔터테인먼트
[DA:인터뷰] ‘걸캅스’ 라미란 “1년 중 열흘만 일하던 내가 주연이라니”
배우 라미란을 만난 날은 제55회 백상예술대상이 마친 다음 날이었다. 드라마 ‘눈이 부시게’로 대상을 탄 김혜자는 그의 롤모델이었다. 오랜 세월 변함없이 ‘배우’로서 자신의 자리를 지키는 선배의 모습은 먼 훗날 자신이 되고픈 얼굴이기도 했다. 그런 의미에서 영화 ‘걸캅스’는 라미란에게 뜻 깊은 작품이 될 것 같다. 영화로 데뷔한지 20년 만에 첫 주연을 맡았기 때문. 아직까지 주연을 맡은 소감이나 느낌에 대해 정리가 되진 않았지만 부담감을 갖기 보다는 내려놓을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 그의 첫 배움이었다.
“20년간 연기를 하면서 1등으로 앞에 나오기 보다는 2~3등 정도만 하자는 생각이었어요. 가늘고 길게 연기를 하는 것이 제 목표였고 예전에는 제가 주연을 맡을 줄은 꿈에도 몰랐으니까요. 하지만 주연도 해야 하는 시기가 왔다면 해야죠. 굳이 가려서 할 필요도 없고 일단 부딪혀보자는 심정으로 도전했죠. 첫 주연이라 당연히 부담은 됐지만 조바심만 내봤자 해결되는 게 없더라고요. 촬영을 하다 보니 하나씩 내려놓게 되더라고요. 그게 제일 중요했던 것 같아요.”
영화 ‘걸캅스’는 과거 전설의 형사로 이름을 날렸지만 지금은 가정을 꾸리기 위해 민원실로 간 ‘미영’(라미란 분)과 열정이 너무 과도한 형사 ‘지혜’가 한 여성이 놓고 간 휴대폰에서 불법으로 촬영한 ‘성폭행 동영상’을 발견하고 사건을 일망타진하기 위해 비공개로 수사를 시작하는 이야기를 그렸다. 의도하지 않았지만 연예인들이 여성을 성폭행하는 장면을 불법으로 촬영한 사건이 터지고 이 영화가 세상에 공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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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미란이 ‘걸캅스’ 시나리오를 본 것은 3년 전이다. 이 때만 해도 이와 관련된 이슈가 세상 밖으로 나오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던 터. 그는 “작년 연말부터 이와 관련된 범죄 이슈들이 수면 위로 올라오더라. 이 시기에 영화가 개봉된다는 게 독이 될지 약이 될지 모르겠지만 많은 사람들이 이 범죄에 대해 인식하는 것은 좋은 현상이라고 생각했다”라고 말했다.
“너무 남의 이야기 같아서 시나리오를 받았을 때 크게 와 닿지는 않았거든요. 그런데 관련된 뉴스들을 접하고 보니 범죄의 심각성은 큰데 처벌은 약하다는 게 답답했어요. 피해자들은 자신이 겪은 일을 평생 마음에 안고 가야하는데 말이죠. 제 대사에도 있지만 ‘피해자들이 자기 잘못인 줄 알고 사는 게 화가 난다’는 게 가장 공감이 가요. 지난해 ‘미투 운동’으로 피해자들이 당당하게 자신의 목소리를 낸 것이 이번 사건의 원동력이 됐다고도 생각해요. 더 이상 피해자들이 움츠려들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이번 영화에서 가장 큰 관전포인트는 이성경과의 연기 호흡이었다. 극 중에서 시누이 사이인 이성경과 라미란은 디지털 성범죄 사건 수사를 아무도 모르게 진행을 한다. 호흡이 척척 맞진 않지만 그 안에서 마음을 졸이기도 하며 웃음을 짓기도 한다. ‘걸캅스’로 이성경을 처음 만난 라미란은 “자기 몫을 알아서 해내는 배우”라고 말하며 “나이답지 않게 건강을 무척 챙기는 사람”이라고도 말해 웃음을 자아냈다.
“저보다 더 건강관리를 더 잘하는 것 같아요. 어린이 영양제부터 비타민 등을 챙겨 먹더라고요. 하나씩 나눠주면서 같이 먹기도 하고. (웃음) 같이 냉각사우나도 했어요. 저희가 한 달 정도 액션스쿨에서 훈련을 받았는데 몸이 너무 아픈 날에 성경이가 냉각사우나를 추천하더라고요. 혈액순환이 잘 된다고. 3분 정도 하던데 죽진 않았습니다! 하하. 처음부터 친근해서 합이 잘 맞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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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 가까이 액션 스쿨을 다니며 훈련을 받기도 했다. 운동을 즐기지 않아 움직이는 것이 ‘노동’이라고 말했던 그는 “뮤지컬 이후에 이렇게 과격하게 움직여 보는 것은 오랜만이다. 몸을 푸는 느낌이 들었고 시원하기도 했다”라고 말했다. 이어 “내 체형이 ‘레슬러’ 같았나보더라. ‘미영’을 나를 두고 썼다는데, 곰과 같은 액션을 하게 하더라”고 말하며 “다음 작품에서 액션을 맡게 된다면 날렵하거나 더 강한 액션에 도전하고 싶기도 했다”라고 웃으며 말했다.
앞서 말했듯, ‘걸캅스’로 영화 데뷔 20년 만에 주연 자리를 꿰찬 라미란은 그동안 여러 캐릭터를 맡으며 감칠맛 나는 연기로 작품의 재미를 더했다. 지금이야 얼굴만 내밀면 “라미란이다!”라는 사람들이 더 많지만 그에게도 힘든 나날들이 있었다. 그는 “일이 없을 때가 가장 힘들었다”라며 “분량이 적으니까 1년에 열흘 정도만 촬영이 있었던 적도 있었다”라고 말했다.
“이곳은 늘 살얼음판이죠. 이전에는 역할 하나만 들어와도 너무 좋았는데 이제는 작품은 계속 들어오지만 언제나 새로운 모습을 보여드려야 한다는 마음에 생각은 많아지고 시간은 부족해요. 가끔은 갑갑하지만 감사한 마음으로 살고 있어요. 일이 없어서 많이 쉰 사람은 알아요. 그런 고민은 행복한 거라는 걸. 그래서 연기적으로 고민할 수 있다는 것이 전 감사할 따름이에요.”
동아닷컴 조유경 기자 polaris27@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