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준호 감독 “장르영화 감독에게 황금종려상…판타지 같다”

입력 2019-05-27 06:5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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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금종려상’ 품은 봉준호 감독의 수상 소감

40분 시상식 마치 ‘허들 넘는 느낌’
만장일치 수상은 더더욱 놀라운 일
한국영화 100주년에 받아 더 뜻깊다

“12살 때 감독이 되겠다고 마음먹은, 소심하고 어리숙한 영화광”이 한국영화의 역사를 바꿔 놓았다. 한국영화계가 오랫동안 기다린 자리, 꾸준히 도전하면서도 번번이 달성하지 못한 정상의 무대에 봉준호 감독이 마침내 올라섰다. 그는 이번 수상을 자신이 일군 성취가 아닌 “올해 100주년을 맞은 한국영화”가 쌓은 저력으로 돌렸다. 그러면서 “아시아 거장들을 능가하는 한국의 마스터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지금 이 자리를 통해 더 많이 알려지길 바란다”고 담담히 말했다. 이어 “올해가 한국영화 100주년인데 칸이 한국영화에 아주 큰 선물을 줬다”며 감사를 표했다.


● “장르영화 감독인 내게…초현실적”

26일 오전(이하 한국시간) 수상 직후 포토콜을 마치자마자 양손을 번쩍 들어 흔들며 프레스센터로 들어선 봉준호 감독은 상기된 표정으로 “약간 쑥스러우면서도 너무 기쁘다”며 입을 열었다. 그의 옆에는 긴장감과 흥분이 교차하는 듯한 얼떨떨한 표정의 송강호가 섰다. 황금종려상 트로피를 앞에 두고 선 감독은 “기쁨의 순간을 17년 동안 함께 작업해온 송강호 선배와 함께 할 수 있어 더 기쁘다”면서 깊은 신뢰의 눈빛을 보냈다.

“솔직히 지금은 마음 수습과 정리가 안 되고 초현실적으로 머리가 멍한 상태이다. 판타지 영화 비슷한 느낌이다. 평소 사실적인 영화를 찍으려 하지만 지금은 판타지영화 같다. 하하!”

폐막식에 참석해 달라는 연락을 받고 “고국에 돌아가 돌팔매는 맞지 않겠다는 안도감이 들었다”면서 크게 웃은 봉 감독은 그래도 “이런 상황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고 했다. 40여 분간 진행된 시상식에서 차례로 각 부문 수상자가 호명돼 무대에 오르는 걸 지켜보며 “마치 허들을 넘는 느낌이었다”는 그는 “(호명 순서가)뒤로 갈수록 마음이 흥분되면서도 현실감이 점점 사라졌다”면서 “옆자리의 송강호 선배와 “뭐야, 우리만 남은 거야? 그렇게 아주 이상한 기분을 나눴다”며 긴장의 순간을 돌이켰다.

심사위원단의 “만장일치”로 수상한 것은 ‘기생충’이 거둔 또 하나의 기록이기도 하다. 이어 장르적 색채가 분명한 ‘기생충’에 황금종려상을 선사한 심사위원들의 선택에 대해 “장르를 이상하게 뒤섞고 또 여러 유희를 섞는 장르영화 감독인 내게 황금종려상을 준 게 놀랍고, 만장일치였다니 더더욱 놀랍다”며 “장르영화를 만드는 사람이자, 장르영화의 팬으로 매우 기쁘다”며 인사했다.

‘기생충’은 22일 경쟁부문 공식 상영 직후 외신으로부터 찬사에 가까운 호평을 얻었다. 외신은 앞다퉈 “봉준호 감독의 정점”(스크린 인터내셔널) “‘살인의 추억’ 이후 가장 성숙한, 한국사회 현실에 대한 발언”(할리우드 리포트) 등 극찬을 쏟아냈다. 봉 감독은 이 가운데 “봉준호 자체가 장르가 됐다”(인디와이어)는 평가를 첫 손에 꼽았다. “가장 듣고 싶던 말”이라는 이유다.


● “가족의 이야기, 보편성 가질 거라 생각”

봉 감독은 수상 직후 공식 기자회견에서 다양한 질문을 받았다. 한 일본기자가 ‘한국적인 이야기라고 예고하더니 전혀 아니다’고 평하자 “칸에 오기 전 한국에서 치른 기자회견에서 꺼낸 말인데 제가 엄살을 좀 떨었다”며 입을 열었다. “나중에 해외에서도 개봉하겠지만 굳이 ‘한국적’이라고 표현한 것은 우리끼리(한국관객) 킥킥거리면서 즐길 요소를 강조하고 싶어서였다”며 “부자와 가난한 자의 이야기, 가족의 이야기라서 보편성이 있으리라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이번 수상이 한국영화 창작자나 한국영화의 새로운 흐름에 어떤 영향을 줄지 묻는 질문에 그는 2006년 프랑스 파리 시네마테크프랑세즈에서 열린 ‘김기영 감독 회고전’ 이야기를 꺼냈다. 봉 감독은 김 감독으로부터 큰 영향을 받았고, ‘기생충’과 관련해 다야한 영감을 얻었다고 앞서 밝힌 바 있다.

그러면서 “제가 상을 받았지만 이건 어느 날 혼자 영화를 만들어서 된 게 아니다”며 “우리 역사에는 위대한 감독들이 있다. 김기영 감독 회고전처럼 한국영화의 역사를 돌이킬 수 있는 이벤트가 많아지길 바란다”는 바람도 내비쳤다.

칸(프랑스)|이해리 기자 gofl1024@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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