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로트 가수 석훈 “트로트 알리는 민간외교관, 꿈만 같아요”

입력 2019-12-17 06:57:00
카카오톡 공유하기
프린트
공유하기 닫기

베트남에서 활발히 활동 중인 트로트 가수 석훈은 “현지에서 ‘케이트로트’로 인정받아 자부심을 느낀다”고 웃었다. 사진제공|석훈

■ ‘베트남 케이트로트 스타’ 석훈의 국경 넘은 트로트 사랑

사기 당한 후 취미로 노래부르기 시작
사업차 자주 찾았던 베트남에서 데뷔
입소문 타면서 방송·라디오까지 진출


한국 트로트 특유의 주체할 수 없는 ‘흥’이 국경을 넘나든다. 트로트 열풍이 베트남으로까지 이어지면서 17만 한국 교민(외교부·2019년 11월 기준) 뿐만 아니라 현지인들까지 사로잡고 있다.

그 신바람의 중심에 가수 석훈(류석훈·47)이 있다. 국내에서는 활동 경력이 짧아 이름이 잘 알려지지 않은 ‘신인’이지만 베트남에서는 이미 ‘케이트로트 스타’로 통한다.

석훈은 베트남에서 활동하는 유일한 트로트 가수이면서 현지 라디오를 비롯한 방송프로그램에 출연하며 한국 트로트를 알리는 데 앞장서고 있다. 이런 공로를 인정받아 최근 ‘2019 코리아스포츠진흥대상’의 스포츠·엔터테인먼트 부문 대상을 받았다.

동남아 지역에서는 한국 아이돌 가수와 케이팝에 대한 관심이 뜨겁지만, 대중가요의 또 다른 주요 장르인 트로트에 대해서는 아직 잘 알지 못한다. 하지만 석훈의 남다른 현지화 전략 덕분에 베트남 사람들은 너도나도 흥겨운 한국 트로트 멜로디를 흥얼거린다.

석훈이 처음부터 베트남을 목표로 한 건 아니었다. 2015년 지인으로부터 배신을 당한 뒤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이 싫었던 그는 충격에서 벗어나기 위해 취미로 노래를 시작했다. 당시 공장 자동화 부품을 만드는 회사를 운영하며 혼자 노래하는 재미에 푹 빠진 뒤 앨범까지 발표하게 됐다. 이어 사업 영역이 베트남에까지 가 닿으면서 트로트 가수로서 현지 발판도 굳혔다.

“2015년 9월 ‘콩자야’라는 곡으로 데뷔해 ‘뭐해’라는 노래까지 발표했어요. 그 전까지는 TV에 나오는 (트로트)가수가 전부인 줄 알았죠. 막상 트로트에 도전하고 보니 그게 아니었던 거예요. 무대에 서지 못하는 가수들이 너무나도 많다는 걸 알게 됐죠. 이렇게 하면 안 되겠다 싶었어요. 한국에서 살아남기보다는 ‘다른 곳으로 가자’는 판단을 했고, 사업차 자주 드나들었던 베트남으로 향하게 된 거예요.”

‘신의 한 수’였다. 여전히 많은 무명 트로트 가수들은 대중의 시선을 제대로 한번 받기도 어려울뿐더러 지방에서 서울에 진출하기는 진입장벽이 더욱 높다. 그는 생각을 바꿔 베트남으로 무대를 옮겼다. 2018년 사업차 들른 베트남에서 택시기사들에게 자비로 만든 앨범을 무작정 나눠주기 시작했다.

“베트남어로 ‘뭐해’를 번안해 불러 1000장 정도 만들었다. 지금은 박항서 베트남 축구 국가대표 감독이 영웅으로 통하고 있지만, 당시엔 이름도 알려지지 않은 상태였다. 2018년부터 1년 동안 꾸준히 현지인들에게 다가갔다. 우연찮게 알고 지낸 택시기사에게서 연락이 왔다. 하노이에서 떨어진 곳인데 공연을 해줄 수 없냐고, 한국 사람이 단 한 분도 없는 곳이었다. 1000명 정도 모인 무대에서 처음 노래를 불렀고, 이 모습이 입소문을 타면서 찾는 이들이 늘어났다.”

작은 무대라 해도 마다치 않고 불러주는 곳이라면 어디든 달려갔다. 크고 작은 일도 도맡아 했다. 덕분에 주한 베트남 교민회 상임고문이라는 자리까지 얻게 됐고, 민간 외교관 역할도 톡톡히 하고 있다.

“꿈이요? 원하던 트로트를 부르게 됐고, 베트남에까지 트로트를 알리게 됐는데 더 바랄 게 없죠. 케이트로트 가수로 불러주는 것도 꿈만 같아요. 최초로 현지에서 한국 트로트 가수로 인정받았잖아요. 그 자부심 하나로 열심히 뛰고 있습니다.”

이정연 기자 annjoy@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오늘의 핫이슈

뉴스스탠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