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현길의 스포츠에세이] 기성용과 이니에스타, 그리고 스타 마케팅

입력 2020-02-23 18:00:00
카카오톡 공유하기
프린트
공유하기 닫기

기성용.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기성용(31)이 입을 열면서 사태는 악화됐다. 새로운 도전을 하겠다며 스페인으로 떠나던 날(21일), 기성용은 K리그 복귀 추진과 관련된 논란의 전말을 공개했다. 결론은 하나였다. “서울 구단이 자신을 원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팬들은 기가 막혔고, FC서울은 궁지에 몰렸다.

이번 논란을 요약하면 이렇다. 11년 만에 K리그 복귀를 추진한 기성용이 먼저 서울 구단을 찾았지만 협상이 이뤄지지 않았다. 이후 자금 여력이 있는 전북 구단과 접촉하는 과정에서 위약금 문제가 불거졌다. 결국 전북 이적도 막혔다. 일이 꼬이면 으레 그렇듯 뒷말이 무성했다. 협상 시점이나 연봉 규모, 위약금 감액 여부, 코칭스태프 입장 등이 명쾌하지 않았다. 또 한 가지 궁금증이 남았다. 기성용이 SNS 계정을 통해 “거짓말로 나를 다치게 하면 나는 진실로 너를 다치게 할 수 있다. 나를 가지고 장난을 치지 마라”고 한 구체적인 대상이 누구냐는 것이다. 이런 궁금증들이 그냥 묻히는 듯 했지만 기성용이 어느 정도 정리하고 떠났다.

기성용의 주장에 따르면, 서울 구단과의 협상 시점은 지난해 12월이다. 이 때라면 선수 구성이 완성된 시기라는 얘기와는 거리가 멀다. 또 서울 구단으로부터 최종적으로 코칭스태프와 상의 후에 계약하지 않겠다는 통보를 받았다는 게 기성용의 주장이다. 이는 코칭스태프의 의사가 반영된 결정이라는 의미다. 위약금과 관련해서도 “떼쓰지 않고 서울과 해결하려고 노력했다”는 입장이다. 위약금이 삽입된 계약서 내용을 받아들였다는 뜻이다. 가장 눈에 띄었던 건 “지난 3~4개월 동안 뉴캐슬에서 뛰지 못한 부분에 서울은 의구심이 있는 것 같았다”고 말한 점이다. 결국 기성용의 몸 상태가 못 미더워 계약이 불발됐다는 뉘앙스다.

기성용의 결론은 서울 구단의 진정성을 느끼지 못했고, 거짓 정보에 마음이 상했다는 것이다.

이젠 서울 구단이 답할 차례다. 협상이 정확히 언제부터 시작됐고, 그 과정에서 어떤 얘기가 오갔으며, 제시한 연봉과 위약금 규모가 얼마인지도 공개했으면 한다. 더 이상 선수와 구단 간에 진실게임이 되어선 곤란하다.

며칠 사이에 우리 모두는 많은 상처를 입었다. 많은 축구인들은 “안타깝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팬들의 실망감도 컸다. 시즌 개막을 코앞에 둔 구단의 낭패감도 마찬가지다. 모든 게 K리그의 아픔이자 손실이다.

특히 안타까운 건 스타 마케팅의 기회를 놓쳤다는 점이다. 기성용의 등장으로 하루아침에 엄청난 일이 벌어지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세계 최고의 무대인 잉글리시프리미어리그(EPL)에서 존재감을 드러낼 정도의 탄탄한 기량과 국가대표팀 주장을 지낸 이름값 높은 스타가 K리그에 복귀하면 분위기 자체가 달라질 수 있었다. 팬들과 함께 미디어와 기업들의 관심으로 판을 키울 수도 있었다. 소속팀은 물론이고 상대팀도 이익을 보면서 K리그 흥행에 적지 않은 호재가 될 수 있었다. 이런 기회가 한 순간에 날아간 것이다.

기성용 사태는 시기적으로 안드레스 이니에스타(36·비셀 고베)의 수원 방문과 겹쳤다. 2020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ACL) 조별리그 G조 1차전 고베와 홈경기를 갖는 수원 삼성은 이니에스타 마케팅에 열을 올렸다. 연봉 300억원이 넘는 그는 스페인 프리메라리가 9회 우승,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4회 우승, 2010년 국제축구연맹(FIFA) 월드컵 우승 등을 차지한 세계적인 미드필더다. 그의 등장만으로도 수원월드컵경기장은 흥분의 도가니였다. 비록 상대팀 선수이지만 팬들은 그의 현란한 드리블과 창의적인 패스를 보고 싶어 했다. 주중 경기와 추위, 그리고 코로나19의 불안감에도 1만7000여명이 마스크를 착용한 채 빅버드(수원월드컵경기장 애칭)를 찾은 가장 큰 이유다. 한명의 스타가 가지는 힘이 얼마나 큰 지를 여실히 보여준 장면이었다.

스타 마케팅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프로 무대에서 스타는 중요한 흥행요소다. 걸어 다니는 스포츠 산업이기도 하다. 그래서 우리는 스타를 키운다. 기성용처럼 유럽에서 뛰면서 명성을 얻은 스타가 국내에 돌아오기 위해선 큰 용기가 필요할 것이다. 기대에 부응하는 기량을 보여야한다는 부담감이 클 수밖에 없다. 잘못하면 공든 탑이 무너질 수도 있다는 불안감도 공존한다. 그런 상황에서 K리그에 오겠다는 해외파가 있다면 애정 어린 마음으로 받아줬으면 한다. 그게 K리그가 살 길이기도 하다. K리그에는 더 많은 스타가 필요하다.

최현길 전문기자·체육학 박사 choihg2@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오늘의 핫이슈

뉴스스탠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