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유소연이 말하는 ‘기부, 세계1위, 그리고 남친’

입력 2020-06-25 08: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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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소연. 스포츠동아DB

21일 인천 베어즈베스트 청라GC에서 끝난 기아자동차 제34회 한국여자오픈 최종라운드. 2017년 세계랭킹 1위 유소연(30·메디힐·현 18위)의 ‘화려한 귀환’은 여러모로 화제를 뿌렸다.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에서 함께 뛰는 김효주(25·롯데)와의 숨 막히는 명품 승부 끝 1타 차 우승. 중국~미국~캐나다~일본여자오픈을 제패한 ‘내셔널 타이틀 수집가’가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 신인이던 12년 전 연장 패배의 아픔을 씻어내고 그토록 갈망하던 순회배를 들어올리는 장면은 극적이기까지 했다. 여기에 우승 상금 2억5000만 원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관련 단체에 기부하겠다고 발표하면서 많은 팬들의 박수도 받았다.

“시상식 직전 어머니께 ‘상금 전액을 기부할테니, 놀라지 마시라’고 전화드렸다”는 말에 많은 이들은 ‘역시 유소연답다’고 했다.

돌이켜보면 지난해 유독 힘든 시간을 보냈던 터. 2012년 LPGA에 진출해 신인왕을 차지하고 세계랭킹 1위에 오르는 등 승승장구했지만 2019년 우승 한 번 못하고 상금랭킹 23위(81만 달러·9억8000만 원)로 밀렸다. 상금랭킹 톱 10에 오르지 못한 것도, 시즌 상금 100만 달러 이하에 머문 것도 지난해가 처음이었다. 짓궂게도 그에게 지난해 아쉬웠던 순간을 떠올리자, 평소 시원시원하고 달변인 유소연이 잠시 숨을 고른 것도 그 때문일지 모른다. 그래서 더 감격적이었던 우승, 그 여운이 채 가시지 않은 24일 유소연과 전화 인터뷰를 가졌다.


- 통 큰 기부가 큰 화제가 됐다. LPGA 홈페이지는 장문의 기사를 통해 ‘그를 안다면 놀랍지 않은 일’이라며 찬사를 보내기도 했다.

“난 그냥 3라운드 끝나고 (우승할 수 있는) 좋은 동기 부여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고, 실제 실천 할 수 있게 돼 기뻤을 뿐이다. 사실은 프로가 되고 난 뒤 모교에도 그렇고, 여러 곳에 조금씩 꾸준히 기부를 해왔다. ‘좋은 일은 남모르게 하는 게 정말 좋은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기부를 알리는 게 내가 좋은 일을 한다는 것을 자랑하는 게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 좋은 영향을 끼칠 수도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 2월) 호주 산불 기부도 그렇고, 언론에 이야기해도 괜찮겠다고 생각했다(유소연은 올해 2월 호주에서 열린 LPGA 투어 ISPS 한다 빅 오픈과 ISPS 한다 호주여자오픈의 상금 일부를 산불 및 야생동물 구호 활동에 내놓았다. 가장 최근 우승이었던 2018년 6월 LPGA 투어 마이어 클래식 때도 상금을 ‘마이어 푸드 뱅크’에 전달했다).”


- 만약 준우승을 했더라도 기부했을까.


“(잠시 뜸을 들이다) 글쎄, 우승만 생각하고 기도했기 때문에 그건 잘 모르겠다. 근데 (웃으며) 만약 준우승했으면 상금 전액을 기부해야겠다는 생각을 못 했을 수도 있을 것 같다.”


- 한국여자오픈으로 오랜 우승 갈증을 풀어냈다. 지난해 성적이 좋지 않아 특히 마음고생이 컸다고 들었다.

“성적이 나지 않아 고민도 많았고, 실제로 주변 사람과 많은 이야기도 해 봤다. 결정적으로 내린 답은, ‘나는 골프랑 일상생활의 밸런스 흔히 요즘 말하는 ‘워라밸’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고, 되짚어보니 그동안 잘 맞춰왔는데 어느 순간 그게 깨졌다는 것’이었다. 세계랭킹 1위도 해 보고, 이루고 싶은 욕심도 많아 골프에 치우치면서 원래 기존에 해 왔던 루틴이 아닌 다른 루틴이 생겼던 것이다. 골프에 집착한다는 느낌도 들었다. 내가 열심이 안 해서, 실력이 부족해서 골프가 안 되는 게 아니라 골프에 대한 마음가짐이 달라진 게 아닌가 싶었다. 골프에서 좀 떨어져 있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일부러 쉬는 시간을 계획표에 넣었다. 난 욕심이 많은 사람이라 시간이 나면 나를 위해 써야하는데, 오히려 아무것도 안 하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기술적으로 열심히 한 것보다, 결국 열심히 쉰 게 내 페이스를 찾을 수 있었던 좋은 연결고리가 된 것 같다. 하나 더 신경 쓴 것은, 원래 체력에 자신이 있는 편이었는데 작년에 연습량이 많아지고 골프가 힘들어져서인지 체력이 부족하다는 느낌이 들어 체력 훈련을 많이 했다.”


- 유독 내셔널 타이틀에 강하다. 이제 브리티시 오픈에서 우승하고 싶다고 했는데.

“LPGA 사무국에서 (투어 재개를 위한) 최상의 시나리오를 만들기 위해 노력을 하고 있다. 올해 브리티시 오픈 우승이라는 새로운 목표가 생겼으니 대회가 열리고 출전할 수 있으면 좋겠다. 개최 여부야 내가 컨트롤 할 수 있는 게 아니니, 난 내가 할 수 있는 일에만 집중하면서 기다리겠다.”


- 대회 출전 등 앞으로 일정은 잡혔는지.

“한국여자오픈 결과는 좋게 나왔지만, 후반부에 가서 체력이 떨어지면서 티샷이 많이 흔들렸다. (4라운드 10번 홀 티샷 때 드라이버를 놓친 것도 체력 때문이었냐고 묻자) 좋은 습관은 아니고, 좋게 보이지도 않지만 드라이버가 잘 안 맞을 때 차라리 마지막에 손을 놓는 게 오히려 덜 비뚤게 가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봤을 때 기술적인 것보다 체력적인 문제가 컸다. 많은 분들이 KLPGA 대회 참가 여부를 궁금해 하시는데, 당분간은 체력 훈련에 집중할 예정이다. LPGA 투어가 재개되면 12월까지 경기를 해야 하고, 새 시즌을 따로 준비할 시간이 없이 내년 1월부터 다시 시즌이 시작될 예정이기 때문에 앞으로 3주 정도는 특별한 대회 출전 없이 체력훈련을 집중적으로 할 예정이다.”


- 세계 1위를 했던 경험이 있어 다시 해 보고 싶은 욕심이 더 클 것 같다.

“물론이다. 난 세계랭킹 1위였을 때 단 한번도 우승해 본 적이 없다. 정상에 다시 설 수 있는 영광이 온다면, 그 때 꼭 우승해 보고 싶다는 욕심을 늘 갖고 있다. 그런데 사실 1위보다 골프 선수로서 많은 걸 이룬 후라서 그럴 수도 있고, 작년에 힘든 시간도 보내고 해서인지 이제는 우승이나 세계랭킹 1위 같은 목표보다 내 눈 앞에 당장 있는 게 제일 더 중요해 보인다. 세계 1위라는 목표는 가지고 있지만, 그것보다 더 큰 목표가 그 때 그 때 내가 할 일, 제일 열심히 하는 게 가장 큰 일이고 중요한 일인 것 같다.”


- 우승 뒤 인터뷰에서 남자 친구가 아직 없다고 했는데 인연을 만들기 위한 노력은 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박)인비 언니가 결혼해서 잘 살고, 결혼하고 나서 성적이 더 좋아지는 언니들도 많고 해서 주변에서 ‘너도 결혼해야 하지 않니, 연애해야 하지 않니’하는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 그럴 때마다 ‘소개시켜 준다면 마다하지 않겠다’, 그렇게만 이야기하고 있다. 그게 노력이라면 노력인 것 같다. (만약 결혼하면 선수 생활을 계속 할 것인지 묻자) ‘그 때 그 때 하고 싶은 걸 하자’가 내 인생의 모토다. 결혼하고 나서 집에 있는 게 좋으면 그렇게 할 것이고, 투어를 함께 다닐 수 있는 사람을 만난다면 함께 다닐 수도 있고…. 그 때 가봐야 알 것 같다(웃음).”

김도헌 기자 dohoney@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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