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 정찬헌(왼쪽)과 임찬규. 스포츠동아DB

LG 정찬헌(왼쪽)과 임찬규. 스포츠동아DB


LG 트윈스는 지난 주말 SK 와이번스에 2연승을 거두며 연패에서 벗어났다. 우승을 위해서라면 어차피 포스트시즌에서 꼭 넘어야 할 두산 베어스~키움 히어로즈와 6연전을 모두 내주는 등 7연패에 빠졌을 때는 앞이 잘 보이지 않았지만 간신히 고비는 넘겼다.

최근 팀 사정이 좋지 않은 SK를 만난 것이 LG로선 행운이었다. 그 행운을 기회로 바꾼 것은 2명의 선발투수였다. 27일 SK를 상대로 9회 1사까지 노히트노런을 기록한 정찬헌(30)은 1군 10시즌 333경기 만에 가장 빼어난 피칭을 했다. 더욱이 팀이 가장 절실할 때여서 가치가 더 높아졌다. SK 타자들을 압도한 그는 최근 힘겨워하던 불펜투수들에게 귀중한 휴식을 주는 완투승까지 내달렸다.

다음날에는 임찬규(28)가 7이닝을 3안타 무실점으로 막고 2연속 완봉승의 다리를 이었다. 로베르토 라모스가 정상 컨디션으로 되돌아오기까지는 어떻게든 마운드에서 버텨줘야 할 때였다. 부담이 큰 상황에서 깔끔한 피칭을 한 덕분에 야수들도 한숨을 돌렸다.

올 시즌 이들의 피칭이 인상적이었던 것은 스피드를 버리고 다른 중요한 것을 얻어서다. 부상으로 선수생활 내내 고생해온 정찬헌은 지금도 완전한 몸은 아니다. 회복속도가 다른 선수들보다 떨어져 한 번 등판하면 9일의 여유를 주면서 류중일 감독이 관리해주고 있다. 이제 만 서른 살. 한창때의 싱싱한 공도 차츰 사라질 때다.

보통의 투수들이라면 자신의 강점이 사라지면 용기마저 잃기 마련이지만, 정찬헌은 위기에서 새로운 길을 찾았다. 강약조절로 타자의 타이밍을 빼앗아도 충분히 통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27일에는 모든 공의 컨트롤까지 좋았다. 원하는 곳으로 공이 가면서 유리한 볼카운트를 만들었고, SK 타자들은 볼에 배트가 끌려나왔다. ‘내가 타자를 압도하지 못해도 상대 타자들의 배트가 먼저 나오도록 만들어내면 된다’는 생각의 전환과 용기가 만든 마술이었다.

임찬규도 마찬가지였다. 본인의 표현처럼 죽도록 세게 던지는 공을 버리고 정확하게 던지려고 하자 뜻밖에 삼진이 늘었다. 이전까지는 삼진을 노리며 전력으로 던졌지만, 정작 욕심을 버리자 삼진이 더 쌓여가는 아이러니를 실감한 것이다. 지난해까지 임찬규는 589이닝을 던져 486개의 삼진을 잡았다. 이닝당 0.83개였다. 반면 4구와 몸에 맞는 공은 327개로 이닝당 0.55개였다. 올 시즌에는 삼진은 이닝당 1.01개(47.1이닝·50개)로 늘었고, 4사구는 이닝당 0.32개(15개)로 눈에 띄게 줄었다. 투수는 스피드가 아닌 타자와의 싸움과 타이밍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스스로 받아들이기까지는 시간과 경험, 느린 공을 던질 용기가 필요한데 임찬규는 이를 체감한 듯한 모습이다.

아직 타일러 윌슨-케이시 켈리의 외국인 원투펀치가 신뢰감을 주지 못해 시즌 항해가 쉽지는 않지만, LG는 생각이 바뀐 4·5번 토종투수들의 추진력으로 목적지인 한국시리즈까지 가보려고 한다.

김종건 기자 marc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