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 베이스볼] ‘화수분 야구’는 그냥 생기지 않는다!

입력 2020-07-16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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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동아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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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많은 야구 유망주들이 메이저리그를 꿈꾸고 미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저마다 ‘제2의 박찬호, 김병현’이 될 것이라고 자신했지만 기대했던 문은 생각 외로 좁았다. 대부분 녹록하지 않은 마이너리그 생활에 심신이 지쳤다.

특히 우리 선수들은 야구가 아니라 스스로 이겨내야 하는 그곳의 생활을 힘들어했다. 어릴 때부터 독립심을 키우고 성인이 되면 자신의 행동과 인생을 책임져야 한다고 배워온 그 곳 선수들은 새로운 환경에서도 잡초처럼 잘 버티지만 우리 선수들은 달랐다. 그동안 부모님과 감독, 코치의 보살핌 속에 야구만 해왔기에 온실속의 꽃과 다름없었다. 결국 많은 선수들은 야구를 못해서가 아니라 힘든 환경에 좌절한 채 조용히 귀국했다.

지금 2군에 있는 많은 선수들도 마찬가지다. 특히 이제 막 학교를 졸업하고 프로팀에 입단한 선수들은 절제와 자율을 잘 모른다. 지도자와 부모의 강요로 수동적인 운동만 해왔기에 그들은 자신을 이끌어줄 누군가를 찾는다. 사회생활 경험도 없다보니 외로워지면 주변의 꼬드김에 쉽게 빠져 유흥을 찾고 일탈의 길로 들어선다. 최근 SK 와이번스 2군에서 벌어진 사건도 그 연장선에 있다고 본다. 기술훈련은 2군의 감독과 코치들이 시키겠지만 진짜 선수들에게 필요한 것은 숙소 안에서의 올바른 생활이다. 이곳에서 좋은 습관을 배워야 성공한다.

LG 트윈스가 한창 잘 나가던 때인 1990년대에는 2군 관리 시스템이 좋았다. 경기도 구리 챔피언스파크의 최정기 전 소장은 2군 훈련장 숙소관리의 전설적 인물이었다. 단기사병으로 근무하는 많은 2군 선수들의 출퇴근을 책임지면서 혹시라도 소속 부대에서 문제를 일으키지는 않는지 항상 귀를 열고 다녔다. 간혹 어느 선수가 심야에 구리에서 사고라도 일으키면 가장 먼저 현장으로 뛰어가 무마한 뒤 선수를 달래고 혼내서 올바른 길을 가도록 정성을 다했다.

그 때의 고마움을 잊지 않은 선수들은 지금도 최 전 소장과 연락한다. LG 베테랑 포수 이성우도 그 중 한 명이다. 그는 가끔 자신이 쓰던 미트를 현재 과천시 유소년야구단 감독인 최 전 소장에게 보낸다. TV에서 보던 프로선수가 쓰던 미트는 야구를 막 시작하는 꿈나무들에게는 대단한 선물이자, 나도 잘하면 저렇게 될 수 있다는 희망의 상징이다. 최 전 소장은 이성우가 가장 힘든 시절 따뜻한 말로 계속 격려해줬고, 어머니가 교통사고로 입원했을 때는 가장 먼저 문병도 갔다. 군 입대를 앞두고 걱정할 때는 자기 일처럼 나서서 상무에 입단할 수 있도록 도왔다. 신고선수가 상무에 입대한 유일한 케이스였다.

LG의 성공적 2군 선수관리 노하우는 두산 베어스로 옮겨져 ‘화수분 야구’로 탄생했다. 오래전 경기도 이천에서 두산 2군 선수들을 지도했던 레전드 타자 김우열은 이런 말을 했다. “여기에 온 선수들은 모두 마음이 아프다. 이들에게는 기술보다 먼저 마음을 치료하고 스스로 야구를 열심히 하도록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어떤 팀이든 2군의 성공을 바란다면 이 말을 기억했으면 한다. 결국 정성과 주변의 보살핌이 좋은 선수를 만들어낸다. 화려하고 좋은 시설보다는 그 인프라를 관리하는 사람이 만드는 소프트웨어가 더 중요하다.

김종건 기자 marc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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