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 발리볼] V리그 외국인선수들은 무엇에 감동하나?

입력 2020-11-02 18: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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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과가 모든 것을 말하는 스포츠의 세계에서 선수의 능력을 최대치로 끌어올리는 것은 중요하다. 특히 V리그에선 외국인선수가 어떤 마음가짐으로 뛰느냐에 따라 시즌의 성패가 좌우되는 경우가 많다. 살아온 환경과 사고방식이 다른 외국인선수다. 우리의 정서를 앞세워 무턱대고 강요하면 좋은 결과가 나오지 않는다. 자발적으로 움직이게 만들어야 한다. 무엇보다 감동이 필요하다. 그래서 V리그 구단들은 다양한 방법으로 외국인선수를 감동시킨다.

정확한 시간에 입금되는 돈


직업선수들에게 가장 큰 동기부여는 역시 돈이다. 지금 V리그의 외국인선수들은 다른 리그에서보다 몇 배 많은 연봉을 받는다. 한국전력 장병철 감독은 V리그 적응에 힘들어하는 러셀에게 “통장에 입금되는 돈을 생각하면서 끝까지 버텨라. 여기서 몇 년 고생하면 선수생활 후 평생 가족과 함께 편히 지낼 돈을 벌 수 있다”며 열심히 설득하고 있다.

외국인선수들은 특히 우리의 급여지급 시스템에 감탄한다. 해외 구단에선 월급이 제때 들어오지 않는 경우가 많다. 계약서대로 주지 않는 경우도 허다하다. 이런 일을 경험한 선수에게 우리의 정확한 지급방식은 감동 그 자체다. 한 외국인선수는 “정해진 날짜는 물론이고 통장에 월급이 입금된 시간과 분까지 같은 것을 보고 놀랐다”고 털어놓았다. V리그의 모든 구단은 회사의 자원관리시스템(ERP)을 이용해 정해진 날짜와 시간에 월급을 통장에 입금시킨다.

물론 돈이 모든 문제를 해결해주진 않는다. 지난 시즌 어느 구단의 외국인선수는 입국하자마자 혹독한 체력훈련을 받았다. 태어나 그렇게 많은 훈련을 경험한 적이 없던 그는 포기하려고 했다. 다른 리그에서 연봉으로 몇 천만 원밖에 벌지 못했던 그의 통장에는 그보다 많은 돈이 첫 월급으로 입금됐다. 그 선수는 마음을 바꿔 힘든 훈련을 따라하려고 노력했지만 몸이 따라주지 않았다. 결국 중도 퇴출됐다.

돈보다는 마음 씀씀이


GS칼텍스 러츠는 지난 시즌 경기도 가평 숙소를 처음 방문하던 날 자기 방에 놓인 침대를 보고 감동했다. 미국 휴스턴의 집은 물론이고 그동안 어디서도 마음 편히 다리를 뻗을 크기의 침대를 가져보지 못했던 러츠를 위해 세상에서 하나뿐인 침대가 기다리고 있었다. 키 206㎝의 러츠를 위해 구단에서 따로 특대사이즈를 설치해줬다. 러츠는 연신 “고맙다”며 감탄했다. 김용희 사무국장은 “어느 가구점에 물어봐도 러츠의 신장에 맞는 침대가 없어서 따로 주문제작을 했다”고 털어놓았다.



흥국생명은 지구 반대편 아르헨티나에서 우리나라로 이동하는 루시아를 위해 비행기 좌석으로 감동을 줬다. 195㎝의 장신선수가 30시간 넘게 이동하는 동안 불편을 겪지 않도록 비즈니스 좌석을 선물했다. 루시아는 “비행기 타는 것을 계속 걱정했는데, 덕분에 편하게 왔다”며 구단의 배려를 고마워했다.

루시아는 지난 시즌을 마치고 천신만고 끝에 고향으로 돌아갔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아르헨티나의 모든 공항이 폐쇄되자 중간 기착지인 브라질에 내려 장거리 버스를 타고 국경 부근까지 이동한 다음 군용기를 갈아타고서야 아르헨티나로 돌아갈 수 있었다. 이번에 한국에 다시 올 때도 힘든 여정을 반복했지만, 구단에서 끊어준 왕복 비즈니스 좌석이 큰 위안이 됐다.



KB손해보험은 말리 출신 케이타를 위해 인터넷에서 말리의 유행가를 찾아내 경기 때 틀어준다. 친숙한 음악을 들으면서 더 힘을 내라는 배려다. 치어리더들도 응원 때 말리의 국기를 흔들어준다.

외국인선수들은 구단 스태프의 세심한 몸 관리와 훈련 시스템에도 감동한다. 한 장소에서 훈련과 식사 및 휴식이 가능한 최첨단 훈련장을 갖춘 리그는 그리 많지 않다. 이들은 훈련과 경기 후 많은 전문가들이 몸을 세심하게 관리해주는 것에 크게 감동받는다. 어떤 리그에서도 받아보지 못한 호사 덕분에 뭔가 특별한 존재로 대접받는다고 느낀다.

외국인선수들에게 ‘존중’은 중요한 요소다. 2015~2016시즌 ‘봄 배구’를 앞두고 OK금융그룹은 시몬의 자존감을 최대한 높여줬다. 그를 명예 안산시민으로 만들어주려고 했다. 그 얘기를 들은 시몬은 V리그 마지막 무대를 챔피언 결정전 우승으로 장식한 뒤 여한 없이 떠났다.

가족들이 더 좋아하는 한국생활
밤에 혼자 안심하고 다닐 수 있는 나라는 많지 않다. 많은 외국인선수들은 우리의 안전한 치안상황에 감탄한다. 어느 외국인선수는 “밤에 마음대로 편의점에 갈 수 있고, 그때마다 무장을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 좋다”고 털어놓았다.



삼성화재 바르텍 부부는 경기도 용인 훈련장 부근의 숙소생활에 누구보다 만족한다. 숙소부근의 탄천을 언제든지 산책하고, 가끔은 인근 백화점을 찾는 데다, 카페도 많아서 여유로운 한국생활을 즐기고 있다. 지금의 생활에 아내가 더 만족한다는 후문이다.

지난 시즌 어느 팀 외국인선수 아내는 새 숙소에 데리고 갔을 때 표정이 좋지 못했다. 여자의 시선으로 봤을 때 세간이 별로였던 모양이다. 하지만 반전이 있었다. 구단은 다음날 아내를 대형 쇼핑몰로 데려갔다. “우리가 당신의 취향을 몰라 제대로 꾸미지 않았다. 여기서 당신 스타일대로 집을 꾸미는 데 필요한 것을 마음껏 사라”며 카드를 건넸다. 다음날 외국인선수는 싱글벙글하며 훈련장에 나와 “아내가 아주 좋아한다”고 구단에 귀띔했다.

삼성화재에서 전설을 만든 레오의 어머니는 용인 숙소 인근의 헬스클럽을 자주 이용했다. 구단이 헬스클럽 회원권을 선물로 줬다. 쿠바에선 누려보지 못한 호사에 어머니는 한국에서 오래 지내고 싶어 했다. 2시즌 전 우리카드는 아가메즈의 자녀들에서 추석을 맞아 한복을 선물했다. 이들이 다니는 숙소 인근의 어린이집을 찾아가 모든 아이들에게 학용품 선물도 안겼다. 자식들을 위한 구단의 배려에 아가메즈는 순한 양이 돼 헌신했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내가 베푼 만큼, 감동을 받은 만큼 보답은 온다.

김종건 기자 marco@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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