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정무가 떠올린 마라도나, “태양 같은 존재, 자기관리 중요성 새삼 일깨워”

입력 2020-11-27 06: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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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하나시티즌 허정무 이사장은 디에고 마라도나와 인연이 깊다. 1986년 멕시코월드컵 때는 선수로 맞붙었고, 2010년 남아공월드컵 때는 자국 대표팀 사령탑으로 지략대결을 펼쳤다.스포츠동아DB

아르헨티나의 축구 영웅 디에고 마라도나가 불과 60세에 심장마비로 세상과 영원히 이별했다는 소식을 접한 K리그2(2부) 대전하나시티즌 허정무 이사장(65)은 26일 스포츠동아와 전화통화를 하며 오래 전의 추억들을 하나하나 떠올렸다.

그렇게 34년 전으로 시계바늘을 되돌렸다. 아르헨티나가 우승트로피를 번쩍 들어올린 1986년 멕시코월드컵 조별리그에서 태극전사들과 마라도나가 마주쳤다. 마라도나를 맨마킹하라는 벤치의 지시를 허 이사장은 충실히 수행했다. 당시 한국은 1-3으로 패했지만, 일방적 열세는 아니었다.

이 과정에서 찍힌 사진 한 장이 세계적 화제가 됐다. 허 이사장이 마라도나를 걷어찬 듯한 장면이다. 주요 외신들은 “축구 대신 태권도를 한 허정무”란 표현과 함께 한국축구를 ‘태권축구’로 부르기 시작했다.

1986년 멕시코 월드컵 조별리그에서 허정무(왼쪽)이사장과 디에고 마라도나. 동아일보DB



하지만 이는 파울이 아니었다. 주심도 공을 겨냥한 정확한 접촉으로 판단해 경기를 그대로 진행시켰다. 허 이사장은 하나만큼은 인정했다. “우리도 작심하고 거칠게 했다. 강하게 하지 않으면 멈춰 세울 수 없었다.” 그래서일까. 허 이사장의 공세에 움츠러든 마라도나는 득점에는 실패했다.

그래도 허 이사장은 “실력과 능력을 보면 마라도나는 범접할 수 없는 존재였다. 전 세계 축구선수들 가운데 태양처럼 빛이 났다. 천부적 재능이 있었다. 그에 비하면 난 작은 반딧불에 불과했다”며 마라도나를 추억하며 치켜세웠다.

시간이 흘러 신분이 바뀌었다. 2010년 남아공월드컵 조별리그에서 둘은 양국 대표팀 사령탑으로 만났다. “뭔가 뚜렷한 전략이나 위협이 될 만한 부분은 없었다”고 떠올린 허 이사장은 “심리전은 대단했다. 경기 전 기자회견에서 우리의 플레이 스타일을 ‘거칠다’고 꼬집더라. 심판을 압박하려는 그림이 그려졌다”고 회상했다.

이 경기에서 한국은 1-4로 졌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당시 한창 주가를 높이던 이청용(울산 현대)의 만회골로 자존심을 지킨 태극전사들은 사상 첫 원정 월드컵 16강 진출이라는 값진 위업을 달성했다.

월드컵에서 깊은 인연을 맺은 마라도나는 종종 한국을 찾았다. 1995년에는 보카 주니어스(아르헨티나)의 일원으로 방한해 한국대표팀과 친선경기를 치렀고, 국제축구연맹(FIFA) 20세 이하(U-20) 월드컵 조 추첨을 위해 2017년 3월 방한했다. 이 때도 어김없이 멕시코월드컵 사진이 등장했고, 마라도나는 “물론 (허정무를) 기억한다”며 활짝 웃었다.

그 당시 한국프로축구연맹 총재로 활동한 허 이사장은 마라도나의 다른 부분을 걱정했단다. 건강 문제다. 마라도나는 현역 시절부터 마약(코카인)과 금지약물 복용, 잦은 음주로 건강에 적신호가 켜졌고, 여러 차례 병원신세를 졌다.

“다시 만날 때마다 몸이 이전보다 많이 불어 있었다. 탄력 넘치던 특급 선수의 모습을 기억하고 있었는데…. 아쉽게도 세상을 너무 빨리 떠났지만 요즘 젊은 선수들에게 메시지를 남긴 것 같다. 몸 관리와 사생활 관리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마라도나가) 새삼 일깨워준다.”

남장현 기자 yoshike3@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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