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 발리볼] 느닷없이 열린 연봉공개라는 판도라 상자와 V리그

입력 2020-11-29 13:5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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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력은 최근 V리그의 이슈메이커다.

2020~2021시즌 개막 후 7연패에 빠졌던 팀이 2번의 대형트레이드를 성사시킨 뒤 4연승을 했다. 상위 팀을 모두 꺾고, 극적인 반전스토리를 만들어냈다. 언더독의 반란은 스포츠팬들이 가장 좋아하는, 자주 들어도 전혀 질리지 않는 이야기다.
지난 주말 한국전력은 다른 핫이슈를 만들어냈다. 27일 선수들의 연봉을 공개했다. 구단은 공개 며칠 전 사무국장들의 단체 대화방에 ‘회사의 방침에 따라 연봉을 공개할 것’이라고 알렸다. 다른 구단들의 거부감을 예상했기에 사전에 양해를 구했지만 반응은 차가웠다. 공정배 단장은 26일 남자구단 단장 모임에서 이 사안에 양해를 구했다. 몇몇 구단은 강한 거부감을 드러냈고 어떤 구단은 동조하는 발언도 했다. 한국전력은 한국배구연맹(KOVO)에 연봉공개가 규정에 위반이 되는지도 사전 문의했다.

왜 이 시점에서 연봉을 공개했는지에 대한 숨겨진 배경을 가장 궁금한 것이다. 지난해 12월 이에 관한 이사회의 결의가 있었다. 여자부는 2020~2021시즌부터 모든 선수들의 연봉이 KOVO의 공시를 거쳐 공개됐다. 남자부는 2년의 유예기간을 거친 뒤 공개하기로 합의했다. 그런데 그 보다 앞서, 선수등록도 한참 지난 2라운드 도중 다른 구단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연봉계약 투명화를 선도하려는 구단의 강한 의지와 팬들의 알 권리 충족을 위해”라는 명분으로 공개를 해버렸다.

그 동안 V리그의 문제 가운데 하나는 연봉계약의 불투명성이었다. 공개되지 않은 계약규모가 상당해 구단들이 감당하기 힘들 정도였다. 실제로 선수가 받는 액수와 구단발표와 차이가 크다보니 자유계약선수(FA)에 한해 공개되는 액수마저 신뢰도가 떨어졌다. 국내 선수들이 실제로 받는 액수를 유럽 등 다른 리그와 비교하면 깜짝 놀랄 사례도 많다. 전 세계 최고 몸값 선수가 V리그에 있다는 말도 들린다.

그런 면에서 보자면 연봉공개는 V리그가 프로스포츠산업으로 자리를 잡는데 꼭 필요한 일이다. 그러나 다른 구단에게 불편을 주면서 당장에 할 명분이 있는지는 의문이다. 한국전력은 지난 시즌 최소연봉 소진율 70%를 채우지 못해 벌금을 물어야 했다. 공기업이 벌금을 내면 여러 문제가 생길 것을 걱정한 다른 구단들의 양해로 이사회가 벌금을 면제해준 것이 얼마 전이다. 그런데 한국전력이 기습적으로 연봉을 공개했다. 이번 시즌 공격적인 투자를 했고 그 덕에 성적도 좋아졌다는 것을 널리 알리고 싶은 누군가의 욕심에서 무리를 감수했다면 연봉공개의 대의명분은 사라지고 만다.

이번 사안은 단순하게 볼 수 없다. V리그에 소속된 모든 구단이 함께 지키자고 한 약속을 누군가가 편의에 따라 어겨도 된다고 판단했다면 문제는 심각해진다. 이제 구단들이 “구단주의 지시라 어쩔 수 없다”, “우리 회사의 방침은 반대”라면서 각자도생을 선언하면 V리그가 애써 지켜온 공존의 룰은 깨진다. 혹시 이번 연봉공개가 선수들의 몸값을 낮추기 위한 방법으로 나온 것이라면 도덕적인 비난과 함께 선수들의 반발도 감수해야 한다. 선수 각자의 입장에 따라 연봉공개가 부담스럽거나 숨기고 싶을 수도 있는데 그런 의사와 관계없이 공개된 것이라 불만도 나올 수도 있다.

하여튼 판도라의 상자는 열려버렸다. 그 안에서 무엇이 튀어나올지 궁금하다.

김종건 기자 marco@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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