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년 박세리처럼…2020년 김아림, 코로나19로 지친 국민들에게 희망을 선물하다

입력 2020-12-15 16:2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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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아림.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으로 신음하던 1998년 박세리(43·은퇴)가 그랬던 것처럼, 김아림(25·SBI저축은행)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힘겨워하는 2020년 우리 국민들에게 희망을 선물했다.

‘한국 여자골프 대표 장타자’ 김아림이 처음 출전한 US여자오픈에서 메이저 퀸에 오르는 쾌거를 달성했다. 15일(한국시간) 텍사스주 휴스턴의 챔피언스 골프클럽(파71)에서 열린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제75회 US여자오픈(총상금 550만 달러·60억 원) 4라운드에서 기적같은 역전 드라마를 연출하며 새로운 신데렐라로 탄생했다. 16번(파3) 홀부터 18번(파4) 홀까지 마지막 3개 홀에서 3연속 버디에 성공하는 등 버디 6개와 보기 2개를 곁들이며 4타를 줄여 최종합계 3언더파 281타로 공동 2위 고진영(25), 에이미 올슨(미국)을 1타 차로 따돌리고 우승상금 100만 달러(11억 원)를 손에 넣었다.

태극낭자로는 통산 11번째로 US여자오픈 챔피언에 오른 김아림의 쾌거는 처음부터 예고된 ‘희망의 드라마’였는지 모른다. 세계랭킹 94위였던 김아림은 코로나19 탓에 지역 예선을 치르지 못한 미국골프협회(USGA)가 출전 자격을 확대하면서 기회를 잡았다. 이 행운은 2005년 김주연(39), 2015년 전인지(29)에 이어 한국인으로는 3번째, 이 대회 역사상 총 5번째로 처음 출전한 US여자오픈에서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리는 진기록으로 이어졌다. LPGA 투어 비회원으로는 통산 10번째 우승이다.

김아림.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2016년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에 데뷔한 김아림은 2018년 9월 박세리 인비테이셔널에서 데뷔 첫 승을 따낸 뒤 지난해 7월 문영 퀸즈파크 챔피언십에서 통산 2승을 달성했다. 장신(175㎝)에 70㎏이 넘는 당당한 체격을 앞세워 올 시즌 드라이버 평균 비거리 1위(259.5m)에 오를 정도로 한국 여자골프 대표 장타자로 이름을 날렸지만, 올 시즌 17개 대회에서는 무관에 그쳐 아쉬움을 남겼다.

사실 악천후로 하루 순연돼 15일 재개된 최종 라운드에서 김아림의 우승을 예상한 전문가는 거의 없었다. 선두 시부노 히나코(일본)에 5타 뒤진 공동 9위로 4라운드를 시작한 김아림은 5번(파5)~6번(파4) 홀에 이어 8번(파3) 홀에서 버디에 성공하며 역전극의 서막을 열었다. 10번(파4), 11번(파4) 홀에서 연속 보기로 뒷걸음질을 쳤지만 마지막 3개 홀에서 짜릿한 3연속 버디에 성공하며 리더보드 최상단을 점령했다.

16번 홀에서 1m 버디퍼트를 홀컵에 떨어뜨려 1위 에이미 올슨(미국)에 1타차로 따라붙은 뒤 17번(파4) 홀에 이어 18번 홀에서도 3m 내리막 버디에 성공하며 1타 차 선두로 먼저 경기를 마쳤다. 추격자로 입장이 바뀐 올슨이 16번(파3) 홀에서 보기를 적어내면서 우승에 한 발 다가섰고, 결국 올슨이 18번 홀에서 이글에 실패하면서 김아림의 우승이 최종 확정됐다.
US여자오픈 역대 7번째 최종일 5타 차 역전 우승이란 진기록도 세운 김아림은 한국의 장타여왕에서 단숨에 메이저 퀸 반열에 이름을 올리며 내년부터 5년 동안 LPGA 투어에서 뛸 자격을 획득했다. US여자오픈에는 향후 10년 동안 출전할 수 있다.

김아림.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사실 미국이라고 해서 굉장히 넓고 러프도 길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좁더라”며 평소 시원시원한 경기 스타일처럼 당당하고 ‘통 큰’ 느낌을 전한 김아림은 “티박스가 앞당겨진 걸 보고 무조건 핀 보고 쏘겠다고 마음먹었다”며 공격적인 플레이가 우승의 비결이라고 털어놨다. 세계랭킹이 30위로 수직상승한 그는 “내년에 LPGA 투어에서 뛸 지는 좀 더 고민해봐야겠다”며 “1998년 박세리 선수의 우승이 IMF 조기 졸업에 일조했듯이 나의 이번 우승이 코로나19로 지쳐있는 우리 국민들에게 다소나마 위안과 힘이 되었으면 좋겠다. 내 플레이가 누군가에게 희망이 되고 좋은 에너지가 됐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곁들였다.

우승 직후 자신의 우상인 안니카 소렌스탐과의 영상 통화에서 “아이 러브 유”라며 감격적인 모습을 감추지 못했던 그는 4라운드 내내 마스크를 쓴 채 플레이한 것에 대해 “내가 코로나19에 걸리는 것은 무섭지 않은데 누군가에게 피해를 줄 수 있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이런 그에 대해 외신들은 “마치 동화같은 메이저 우승이었다. 코로나19 대유행의 영향을 받은 해에 김아림은 마스크를 쓰고 우승했다”(영국 가디언)고 전하며 2020년 새로운 신데렐라의 탄생을 축하했다.

김도헌 기자 dohoney@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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