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사커] 축구행정가 이영표의 ‘작품’이 궁금하다

입력 2020-12-23 05: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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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표. 스포츠동아DB

선수시절 이영표(43)의 꿈은 축구 행정가였다. 은퇴 선수의 십중팔구가 지도자를 택하지만 그는 달랐다. 애초에 적성이 아니라며 감독의 길엔 눈길도 주지 않았다. 예전 인터뷰에서 그는 자신의 훗날을 얘기하면서 “행정은 꼭 한번 해보고 싶다”고 다짐하곤 했다.

이영표는 한국축구를 돕겠다는 생각이 확고하다. 다만 동료들과 방법을 달리할 뿐이다. 선수를 돕는 방법 중 하나는 지도자로서 직접 가르치는 일이고, 또 하나는 행정적으로 뒷받침하는 일이다. 이들 모두 선수 성장을 위해선 꼭 필요한 요소다. 그 중 이영표는 후자를 택했다.

그가 미국 프로축구(MLS)에 진출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2011년 여름 알 힐랄(사우디아라비아)과 계약을 끝낸 이영표의 진로는 초미의 관심사였다. 30대 중반의 나이에도 자기관리가 철저했던 그의 가치는 여전했다. 백지수표를 건넸다는 중동의 팀이나 K리그 복귀가 점쳐졌지만 그의 선택은 밴쿠버 화이트캡스였다. 이유는 미국의 스포츠비즈니스 시스템 때문이다. 당시 그는 “한국 축구가 좀더 강해지려면 어떤 것이 필요할까 생각했을 때 그건 바로 시스템”이라면서 “경험해 보니 유럽은 잘 차려진 밥상이고, 미국은 내가 직접 맛있는 음식을 찾아 먹는 곳이다. 내가 공부하기엔 미국이 유리하다”고 밝혔다. 이영표다운 결정이었다.

7년 전 은퇴하는 자리에서도 비슷한 얘기를 꺼냈다. 그는 “많은 사람들로부터 도움만 받았을 뿐 나는 어떤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었나 싶다. 어떤 삶이어야 하는지 다시 한 번 다짐한다”고 했다. 그 삶이 바로 축구 행정가다.

이영표가 마침내 꿈을 이뤘다. 그는 22일 강원FC의 대표이사로 선임됐다. K리그 최연소 대표이사다. 임기는 내년 1월부터 2년간이다. 그는 이전에도 다른 구단의 제의를 받은 적이 있지만 정중히 사양했다. 하지만 이번엔 받아들였다. 도전할 시기가 됐다고 판단한 듯하다. 이제부터 그의 공식 직함은 강원FC 대표이사다.

관심은 이 대표가 내놓을 청사진이다.

그는 다양하고 풍부한 경험을 했다. 2002년 한·일 월드컵 4강 신화의 주역인 그는 K리그를 시작으로 유럽, 중동, 미국 등을 거치며 오랜 선수생활을 했고, 은퇴 이후엔 방송해설위원과 벤처기업을 운영했다. 대한축구협회와 한국프로축구연맹에서 도움의 손길을 내밀면 언제든 달려갔다. 각종 위원회, 홍보대사 등 직함이 수두룩하다.

경험만큼 생각도 깊어졌다. 한국축구발전에 대한 고민을 더하게 됐다. 그는 아마도 시스템 구축에 온 힘을 쏟을 것이다. ‘선수’와 ‘팬’을 중심에 둔 정책을 내놓으며 변화를 꾀할 것이다. 선수 영입과 육성, 그리고 경기의 질적 향상뿐 아니라 팬과의 거리를 좁히는 일을 강조할 것이다.

물론 우려의 목소리도 들린다. 특히 사정이 넉넉지 않은 도민구단의 한계가 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주위의 도움이 절실하다. 이 대표가 내놓을 아이디어들이 제대로 실현될 수 있도록 힘을 실어줘야 한다. 그리고 충분한 시간도 필요하다. 이는 비단 강원 구단뿐 아니라 K리그 전체의 흥행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다. 이 대표가 추구하는 시스템이 제대로 구축되기를 바란다.

최현길 기자 choihg2@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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