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 사커] 감독 홍명보의 도전은 계속 된다

입력 2021-02-02 05: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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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16년 전 일이다. 2002년 한·일 월드컵 최고 스타였던 홍명보(52)가 지도자로 변신한 건 2005년 9월이다. 애당초 그의 은퇴 후 진로는 행정가였다. 선수생활 마지막을 미국 프로축구(MLS)로 선택한 것도 그런 이유였다.

축구인생의 항로가 바뀐 건 한국대표팀 사령탑에 취임한 딕 아드보카트 감독(네덜란드)의 강력한 요청 때문이다. 물론 한국축구 사정에 밝은 핌 베어벡 수석코치(네덜란드)가 적극 추천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또 은사인 이회택 기술위원장의 설득도 작용했다. 당시 홍명보의 코치 결정은 일대 사건이었다.

자격증 문제로 잠시 논란이 벌어지긴 했지만 뜨거운 관심 속에 코치로 새로운 인생을 시작했다. 데뷔전은 그 해 10월 12일 열린 이란과 평가전(한국 2-0 승)이었다. 경기 후 인터뷰 요청이 쇄도했을 정도로 감독 이상으로 조명을 받았다. 화려한 데뷔 무대였지만 속내는 조금 달랐다. 당시 사석에서 “선수 때와 달리 벤치에선 경기 흐름이 잘 보이지 않았다. 너무 긴장한 탓에 다리가 후들거렸다”며 초보 코치의 어려움을 털어놓기도 했다.



지도자 홍명보는 꽃길을 걸었다. 2007년 아시안컵 수석코치, 2008년 올림픽 수석코치를 지냈다. 감독 첫 걸음은 20세 이하(U-20) 대표팀이었다. 2009년 이집트 U-20 대회에 출전해 8강에 오르며 지도력을 인정받았다. 정점을 찍은 건 2012년 런던올림픽이다. 3~4위전서 일본을 누르고 한국축구 사상 최초의 올림픽 동메달을 목에 걸면서 그의 주가는 하늘을 찔렀다.



국가대표팀 감독은 시간 문제였다. 다만, 2014년 브라질월드컵은 아니라는 게 대다수의 생각이었다. 최강희 감독의 사퇴로 대표팀 사령탑이 공석이 된 가운데 홍명보는 축구협회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그는 “한국축구가 어렵다는데 외면할 수 없었다”며 감독직을 운명처럼 받아들였다. 갑작스럽게 대표팀을 맡다보니 준비는 부족할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선발 잡음까지 일었다. 그런 상황에서 좋은 결과를 바라는 건 무리였다. 결국 조별리그에서 탈락했다.

나락으로 떨어지는 건 한 순간이었다. 선수로서 4회 연속 월드컵 출전과 2002년 월드컵 4강 주역, 그리고 A매치 최다 기록(136경기)을 남겼고, 감독으로도 올림픽 동메달의 영광을 안았지만 결과적으로 브라질월드컵은 독이 든 성배였다.

여론의 비난 속에 힘든 시기를 견뎌낸 그는 2016년 중국 무대를 통해 처음으로 프로 감독에 데뷔했다. 하지만 항저우 뤼청에선 2년을 채우지 못한 채 지휘봉을 내려놓았다.

축구인생의 전환기를 맞은 건 행정가로의 변신이었다. 2017년 11월 축구협회 전무이사로 발탁됐다. 정몽규 회장은 그의 풍부한 경험을 높이 샀다. 재임 3년 동안 2018년 아시안게임 금메달, 2019년 U-20 월드컵 준우승, 2020년 AFC U-23 챔피언십 우승 등 굵직한 대회에서 성과를 내며 좋은 평가를 받았다.



그의 인생 항로가 다시 한번 바뀌었다. 지난해 말 울산 현대 사령탑에 올라 감독으로서 명예회복에 나섰다. K리그 감독은 처음이다. 2005년 우승 이후 정상 문턱에서 번번이 무너졌던 울산은 홍 감독에게 운명을 맡겼다. 그도 우승에 사활을 걸었다.



앞서 넘어야할 첫 시험대는 국제축구연맹(FIFA) 클럽월드컵(2.4~2.11)이다. 아시아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 우승팀 울산은 아시아 대표로 출전한다. 대회 장소인 카타르로 떠나기 전 통화에서 그는 “요즘 그라운드에서 새로운 에너지를 받고 있다”며 웃었다. 한편으로 고민도 털어놓았다. 부상자나 훈련 시간 부족 등을 걱정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아시아 대표”를 거듭 강조했다. 최선을 다해 1승이라도 챙겨오겠다는 각오였다.

과거의 영광도, 실패도 모두 지난 일이다. 이제 감독 홍명보는 새로운 출발점에 섰다. 건승을 빈다.

최현길 기자 choihg2@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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