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 발리볼] 학교폭력 의혹과 사실, 무죄추정의 원칙 사이에서

입력 2021-02-24 10:4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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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V리그의 가장 큰 이슈인 학교폭력을 놓고 삼성화재는 눈에 띄는 행보를 했다. 19일 박상하와 관련한 최초의 폭로가 나오자 가장 먼저 소속 학교에 사실 확인부터 요청했다. 그 과정이 끝날 때까지는 어떤 결론도 미뤘다. “명확한 사실이 밝혀지기 전까지는 선수가 출장하지 않는다”는 입장만 정했다. 아무리 학교폭력과 관련해 여론이 나쁘고 지금 당장 가해선수를 퇴출하라는 요구도 많았지만 삼성화재는 진실규명이 먼저라고 판단했다.

무죄추정 원칙이 있다. 헌법 제27조 4항으로 “형사 피고인은 유죄가 확정될 때까지 무죄로 추정된다”는 이 조항은 간혹 ‘국민감정’과 대치될 때가 있다. 특히나 의혹의 당사자로 지목받는 사람이 대중의 사랑을 받는 연예인이나 스포츠 스타라면 더욱 중요하게 다뤄야 할 무죄추정의 원칙이지만 이상하게도 요즘 세상 돌아가는 일을 보면 정반대다. 국민감정이 우선이라는 생각이 만든 현상이다.



누구라도 대중의 뜻을 무시할 수는 없겠지만 대중이 항상 올바른 판단을 내리지는 않는다. 더구나 흥분상태라면. 지금은 누구 하나라도 꼬투리만 잡히면 끝장을 내겠다는 사람들이 온라인에서 떠도는 얘기를 찾으려고 눈에 불을 켜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 곳에 떠도는 소문이 어디까지 진실인지는 모른다. 누구도 확인하지 않았다. 어떤 것은 개인의 일반적인 주장이고 오래된 기억의 오류일 수도 있다. 그래서 더욱 조심히 다뤄야한다. 물론 현실은 반대다. 그러다보니 대중의 입에 이름이 오르내리는 순간부터 상처를 받는 사람도 생길 가능성이 크다. 이들도 보호해줘야 하지만 큰 목소리에 가려 잘 들리지 않는다.

자신의 잘못에 책임을 지고 은퇴를 결정한 박상하는 23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글을 올렸다. 이제는 프로배구 선수가 아니라 자연인으로서 권리를 찾겠다는 의지가 보였다. 박상하의 주장이 맞는다면 학창시절 저지른 나쁜 행동은 당연히 책임을 져야겠지만 하지도 않은 일로 비난을 받을 필요는 없다. 박상하는 최초 폭로를 한 사람을 만나고 싶어 한다. 이 면담이 성사되기를 바란다. 그래서 진실이 무엇인지 모두가 알 기회가 생겼으면 좋겠다.



어느 여자팀에도 선수의 과거 행실을 놓고 제보가 들어오자 구단은 사실 확인에 필요한 구체적인 내용을 요구했다. 그날 이후 제보자는 연락을 끊었다는 말도 들린다. 연예계에도 최근 비슷한 일들이 반복해서 나왔다. 분명 학교폭력은 면책기한 없이 끝까지 반성하고 당사자에게 사과해야 할 나쁜 행동이지만 질투와 시기 혹은 다른 의도를 가지고 거짓정보를 흘렸을 경우, 가해자로 몰린 스타는 하루아침에 많은 것을 잃어야 한다. 그래서 무죄추정의 원칙이 더욱 중요하다. 나중에 사실이 밝혀져도 첫 제보의 임팩트가 크고 자극적이면 대중은 진실을 기억조차 못한다. 그런 면에서 지금 V리그 선수들은 무방비 상태다.

대한배구협회와 한국배구연맹, 구단은 헌법이 보장하는 권리를 빼앗긴 선수들을 보호해줄 방법을 찾지 못해 난감해 하고 있다. 지금 배구계의 가장 큰 고민이다.

김종건 기자 marco@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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