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 서서 영화표 끊던 그 곳…아듀! 서울극장

입력 2021-08-18 06:5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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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일 문을 닫는 서울극장은 상영관으로서 한국영화의 부흥을 이끌었다. 2006년 ‘괴물’의 개봉 첫 주 일요일인 7월30일 서울극장 매표소 앞에 관객이 줄지어 선 가운데 상영시간표에 ‘매진’ 안내가 떠 있다. 스포츠동아DB

SINCE 1979~2021…서울극장 ‘42년간의 추억’ 역사속으로

노점상 즐비했고 대기줄 일상이던
한국영화 ‘부흥의 상징’이었던 명소
코로나 한파 못 견디고 31일 폐관
마지막날까지 감사의 무료 상영회
심재명 대표 “영화역사 사라지는것”
‘만원사례(滿員謝禮)’

누군가 봉투를 내밀었다. 카페 팡세에 들어서자 봉투를 건네온 사람, 영화 ‘친구’의 제작 관계자였다. 극장 앞 매표소 전광판에 뜬 ‘매진’ 안내에 그는 빳빳한 1000원짜리 신권 지폐 한 장씩을 봉투에 넣어 ‘만원사례’라며 카페 안 충무로 사람들에게 선사했다. 사람들은 카페의 2층 통유리창 너머로 극장 앞 광장에 길게 늘어선 관객의 행렬을 내다본 뒤 안심한 듯 옆 골목 어귀의 작은 중국집에 찾아 들어가 짜장면과 물만두, 탕수육에 소주를 곁들여 ‘친구’의 개봉과 흥행을 축하했다.

2001년 3월31일 토요일의 점심나절, 서울 종로3가 서울극장 주변의 풍경이다.

2001년 4월 ‘친구’를 보기 위해 서울극장에 모여든 관객들. 스포츠동아DB


한국영화 메인 개봉관 역할

이듬해 7월27일 ‘엽기적인 그녀’가 최초로 금요일에 개봉하기 전까지 신작 영화는 매주 토요일 관객을 처음 만났다. 1998년 서울 강변CGV가 멀티플렉스 시대의 문을 활짝 열었지만, 이미 1989년 복합상영관을 표방한 서울극장은 한국영화의 메인 개봉관으로 인식됐다. 서울극장의 박스오피스 판도가 전국 배급망을 타고 지방 극장의 상영작 선정과 흥행 규모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충무로 사람들은 매주 토요일 오전 서울극장 광장에서 만났다. 만남의 약속도 없었다. 팡세에 자리를 잡고 앉아 극장 앞에 모여든 관객 대기줄로 신작의 흥행 여부를 예측하며 서로 관객수를 넘겨짚었다. 전국 극장을 전산망으로 연결해 흥행 규모를 체계적으로 집계하는 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이 아직 없었던 시절, 매표소 앞에서는 관객수를 일일이 세어가며 매표를 도와주던 ‘입회인’이 큰 소리로 관객을 불러 모았다.

중국집이나 건너편 피카디리극장 뒤편 곰탕집에서 배를 채운 충무로 사람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대박’ 영화의 제작진은 그날 밤, ‘개봉 파티’를 열어 자축했다. 당당히 초대받기도 했고, 때로는 불청객이었지만, 충무로 사람들은 반가움의 술잔을 기꺼이 내밀어주었다.

42년만에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서울극장이 관객들에게 고마움을 전하기 위한 ‘고맙습니다 상영회’를 앞두고 17일 서울 종로구 서울극장 안에서 관객이 카메라에 추억을 담고 있다. 김민성 기자 marineboy@donga.com



한국영화 부흥을 함께…추억도 관객과

카페는 이미 오래전 사라져버렸다. 주얼리 상가가 들어섰다. 중국집만이 골목을 지키고 있다. 대기업 계열 멀티플렉스 극장의 확산, 감염병 사태로 인한 ‘보릿고개’의 힘겨운 상황 등을 끝내 이겨내지 못한 서울극장도 31일 문을 닫는다.

1987년 서울극장 기획실 직원으로 영화계에 첫발을 내디딘 심재명 명필름 대표는 17일 “이준익 감독 후임으로 입사했다”면서 “내게는 첫 직장이다”고 돌이켰다. 현재 한국영화의 대표 제작자로 꼽히지만, 당시만 해도 ‘미스 심’으로 불린 그는 “역사의 한 페이지가 사라지는 것 같아 씁쓸하다”고 말했다.

서울극장은 1979년 재개봉관이었던 세기극장을 고 곽정환 회장이 이끄는 영화제작사 합동영화사가 인수해 개봉작을 상영하며 관객을 끌어 모았다. 특히 1990년대 초중반부터 다양한 흥행작을 개봉하면서 한국영화 부흥의 한 상징으로 자리매김했다.

이마저도 이제 충무로 사람들만이 품어 안을 추억이 되고 있다. 추억은 다시 스며들어 30일 극장에서 작지만 따스한 자리가 열린다. 채윤희 영상물등급위원장과 주진숙 한국영상자료원장, 심재명 대표 등이 이끄는 여성영화인모임이 곽회장 부인인 서울극장 고은아 회장에게 소중한 감사의 인사를 담은 패를 전한다. 심 대표는 “고 회장이 그동안 여성영화인모임에 많은 도움을 줬다”면서 “창립 초기에는 고문직도 맡아 일했다”고 밝혔다. 이 자리에서 이들은 한국영화와 서울극장의 지난날을 회상하며 이야기꽃을 피울 것이다.

극장은 마지막 이야기꽃을 관객과도 공유한다. 영업 종료일인 31일까지 평일 하루 100명, 주말 200명에게 선착순으로 무료 티켓을 선사하는 ‘고맙습니다 상영회’를 열고 있다.

윤여수 기자 tadada@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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