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명반] 10분 만에 신음했다 “이건 너무 아름답잖아”…바이올리니스트 김응수 ‘Das Leben’

입력 2021-09-12 17:0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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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더블유씨엔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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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올리니스트 김응수의 신보 ‘Das Leben’
레코딩팀도 감동한 음색…LP 황금기 사운드 재현
9명 작곡가의 작품 10곡 수록…“삶이란 무엇인가”
이어폰을 귀에 끼우고 10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탄성이 아닌, 신음이 나와버린 것은. “이건 너무 아름답잖아!”

바이올리니스트 김응수(한양대 관현악과 교수)가 내놓은 새 음반의 타이틀은 독일어 ‘Das Leben’, 즉 라이프(life), 삶이다. 과연 그는 이 음반을 통해 어떤 삶을 이야기하고 싶었을까. 작곡가들의 삶인가? 아니면 보편적인 인간의 삶? 이상적인 삶? 혹은 김응수 자신의 삶?
레퍼토리에서 힌트를 얻을 수는 있겠지만, 정답을 찾기는 어려울 것이다. 답은 작품이 아닌 그의 연주가 갖고 있기 때문이다. 매 곡마다 첫 활을 긋기 전, 짧고 깊은 그의 숨소리에 감춰져 있기 때문이다.

김응수는 요즘 드물게 ‘음색’을 갖고 있는 연주자다. 언제부터인가 연주에서 음의 질감과 색깔을 논하는 일은 올드한 것이 되어버린 듯하다. 더 정확하게, 더 화려하게, 더 경쟁적으로 연주하는 스타일이 세계 클래식계를 지배하고 있는 가운데 김응수는 여전히 자신의 호흡처럼 음을 숨쉰다.

그래서 혹자들은 그의 연주를 ‘옛날 스타일’이라고 폄하하기도 하는 모양이다. 확실히 그의 연주를 듣고 있으면 한 세기 전 거장들의 연주가 겹쳐 오른다. 귀로만 들어도 “이건 누구로군”하고 알아챌 수 있을 만큼 거장들이 자신만의 소리를 갖고 있던 시대. 그런 점에서 김응수의 소리는 거장들의 유산을 물려받아 재현한다. 그는 아련하고 애틋하다. 더 없이 아름답지만, 그저 예쁘지만은 않다.

사진제공|더블유씨엔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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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음반을 녹음한 엔지니어들도 확실히 ‘같은 소리’를 들었다. 녹음팀은 김응수의 연주를 어떻게 하면 오롯이 음반에 담아낼 수 있을까 고민을 거듭한 끝에 다음과 같은 결론에 도달했다고 한다.
“LP시대 황금기의 자연스럽고 풍성한 사운드를 그대로 구현해보자!”.

‘Das Leben’에는 모두 10곡이 수록되어 있다. 가장 짧은 곡은 엘가의 ‘Salut D‘amore(사랑의 인사·3분)’이고 가장 긴 곡은 드보르작의 ‘네 개의 낭만적 소품 Op.75(14분)’이다. 9명 작곡가의 짧고 인상적인 작품들을 실었다.



이 음반 ‘Das Leben’의 키워드는 첫 곡에 나와 있다. ‘낭만’과 ‘소품’이다. 첫 곡 ‘네 개의 낭만적 소품’은 제목 그대로 네 개의 소품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4악장 라르게토의 긴 엘레지가 인상적이다.

김응수는 한 곡 한 곡 밥그릇에 밥을 꾹꾹 눌러 담듯 연주하고 있다. 비브라토를 살짝 덜어내고 대신 안개처럼 흩어지는 끝소리를 만들어냈다. 프레이즈를 시작하기 전에 들려오는 그의 숨소리는 마치 악보에 그려져 있는 듯하다. 그 뜨거운 들숨과 날숨은 삶의 고됨, 한숨 혹은 ‘살아보자’는 격려처럼 들리기도 한다.

폴란드 작곡가 W. 루토스와프스키(1913~1994)의 ‘수비토(Subito)’는 ‘갑자기’이라는 의미의 이탈리어다. 제목처럼 ‘느닷없는’ 분위기의 곡으로 연주자의 호흡도 덩달아 가빠진다. 혼란스럽고 난해한 삶이다. 인생의 미로 한 가운데를 걷고 있는 듯한 곡.

수비토의 혼란은 다음 곡 파라디스(1759~1824)의 ‘시실리안느’에 이르러 비로소 안도의 숨을 내쉬게 된다. 시각 장애를 갖고 있던 여성 작곡가 파라디스의 대표곡으로 따뜻하고 사랑스러운 작품이다.

사진제공|더블유씨엔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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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곡 생상스의 ‘서주와 론도 카프리치오소 Op. 28’은 김응수의 연주 스타일을 모둠으로 만날 수 있는 곡이다. 이런 표현이 적절할지 모르겠지만, 시골 총각의 수줍은 프러포즈를 떠올리게 하는 연주다.

이 곡의 경우 과장된 감정과 기교를 앞세운 연주가 많은데, 김응수의 연주는 섬뜩한 구석이 없다. 그의 활은 언뜻 무딘 칼처럼 보이지만 도무지 못 벨 것이 없어 보인다.

김응수의 음반을 듣는 것은 모처럼 여유롭고 즐거운 경험이었다. 무엇보다 “아, 그래. 이게 바이올린의 소리였지”하는 생각을 할 수 있었다. 어쩌면 우리는 꽤 오랫동안 바이올린의 진짜 목소리를 잊고 살았는지도 모르겠다.
인생(Das Leben) 뭐 있겠는가. 이렇게 행복하면 되는 거지.

※ 이 코너는 최근 출시된 음반, 앨범을 소개하는 코너입니다. 코너의 타이틀 ‘나명반’은 ‘나중에 명반이 될 음반’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양형모 기자 hmyang0307@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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