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니면 잇몸, 잇몸 아니면 살이라도” 두산 최고참 절실함 [최익래의 피에스타]

입력 2021-11-11 1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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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2021 신한은행 SOL KBO리그‘ 두산 베어스와 삼성 라이온즈의 PO 2차전 경기가 열린다. 두산 이현승이 인터뷰를 하고 있다. 잠실 | 김민성 기자 marineboy@donga.com

한때는 불펜의 모든 이닝을 책임지며 든든한 척추 역할을 해냈다. 지금은 후배들이 그 역할을 대신하고, 자신은 뒤를 받친다. 주연이든 조연이든 없어선 안 될 존재. 이현승(38·두산 베어스)은 여전히 행복하다며 미소 짓는다.

2006년 현대 유니콘스에 입단한 이현승은 히어로즈를 거쳐 2010시즌에 앞서 두산 유니폼을 입었다. 두산이 큰 기대를 걸고 트레이드를 단행했으나, 초기에는 기대를 미치지 못했던 것이 사실. 그러나 상무 야구단에서 군 복무를 마친 뒤 두산 왕조가 시작된 2015년부터 본격적으로 팀의 척추 역할을 맡았다.

준플레이오프(준PO)부터 시작해 한국시리즈(KS)까지. 두산의 2015년 가을은 그야말로 ‘미러클’이었다. 그 기적의 중심에 이현승이 있었다. 준PO~PO~KS를 거치는 동안 9경기에서 13이닝을 책임지며 1승1패4세이브, 평균자책점(ERA) 0.00을 기록했다. KS 우승을 확정짓는 ‘헹가래 투수’ 역시 그의 차지였다. KS에 직행한 2016년에도 3경기에서 3.2이닝을 맡아 실점하지 않았다. 포스트시즌(PS) 15연속경기 무자책 기록은 이현승의, 그리고 두산 가을 DNA의 상징이었다. 그렇게 쌓인 PS 42경기, 3승1패4세이브5홀드, ERA 1.60. 역대 PS 투수 출장 2위의 지표는 그의 훈장이다.

최근 스포츠동아와 전화 인터뷰에 나선 이현승은 “팀을 잘 만났기 때문이다. 내가 정규시즌에 부진해도 두산은 언제나 PS에 진출한다. 가을에 컨디션을 끌어올린다면 거기서 내 몫이 생긴다”며 겸손해했다. 이어 “두산이 아니었으면 야구를 그만뒀을 것이다. PS에서 보여줄 기회가 없지 않았겠나”라고 덧붙였다.

이제는 김강률, 홍건희, 이영하 등 후배들이 4~5년 전 이현승이 맡았던 역할을 대신하고 있다. 이현승은 그 뒤를 든든하게 받치고 있다. 두산 불펜의 최고참은 “선수들 스스로가 안다. 감독님이 일찍부터 준비를 시켜도 미리 마음의 준비를 하지 않겠나. 그런 공감대가 우리의 가장 큰 무기다. 우리 후배들 모두 대단하지 않나”라고 반문하며 팀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익숙했던 스포트라이트를 내준 입장이지만, 그 자체로도 행복하다. 다만 역대 PS 출장 2위의 지표만큼은 스스로의 자부심이다. 이현승은 “동물은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이름을 남긴다고 하지 않나. 왕조의 첫 중심이 나였다는 사실은 지금 돌이켜도 소름이 돋는다”며 웃었다. 이어 “스포트라이트를 받기 싫은 선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모두가 그것만 욕심을 내면 팀이 굴러가지 않는다. 지금 이렇게라도 팀에 기여한다는 자체가 행복”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다시 한번 미러클을 쓰고 있는 후배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냐고 물었다. 잠시 머뭇거리던 그는 진심을 담아 메시지를 남겼다.

“나도 가끔 깜짝깜짝 놀란다. 그만큼 우리 팀이 끈끈하다. 이 가을, 어디에서 우리의 걸음이 멈출 진 모르겠지만 그 순간까지 지금처럼 행복하게 야구했으면 좋겠다. 어금니가 안 되면 잇몸이라도, 잇몸이 안 되면 작은 살점이라도 돼서 우리 후배들의 짐을 덜어주겠다.”

잠실 | 최익래 기자 ing17@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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