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빈필 사운드의 해답지를 보았다”…무티와 빈필 예당 콘서트

입력 2021-11-18 19: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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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 | World Culture Networks by courtesy of riccardomutimusic.com

유려·우아·기품…‘빈필 사운드’의 실체를 마주하다
81세의 거장 무티, 그의 지휘는 하루하루가 역사
앙코르는 베르디 ‘운명의 힘’, “우린 이겁니다”
LP시절부터 나름 클래식 음악을 꽤 오래 들어왔다고 생각하지만 고백하건대 이른바 ‘빈필 사운드’에 대한 궁금함만큼은 말끔히 해소하지 못하고 있었다.
유려함, 기품, 부드러움, 실키, 우아함 …. ‘빈필 사운드’에 대한 표현(주로 미사어구다)은 많지만 음반 속의 빈필은 정신이 번쩍 들만큼 우아하거나 기품있는 소리를 들려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빈필과 베를린필, 뉴욕필의 음반을 동시에 틀어놓고 비교하면서 청감하면야 어지간한 클래식 막귀라 해도 ‘역시 이래서 빈필이군’ 싶어질지 모르겠지만 그 정도로 부지런을 떨지는 못했다.

그런 점에서 11월 16일은 드디어 ‘빈필 사운드 해답편’을 들여다 본 날이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유려함’, ‘기품있음’, ‘부드러움’, ‘우아함’의 문제들이 두 시간 동안 후련하게 풀려나갔다.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들은 빈필하모닉 ‘날 것의 소리’는 더도 덜도 아닌, 완벽한 ‘빈필 사운드’였던 것이다. 그리고 그 황홀함의 한 가운데에는 ‘거장들의 거장’ 리카르도 무티가 굳건하게 서 있었다.

무티와 빈필의 조합은 현재 시점에서 우리가 기대할 수 있는 가장 완벽한 조합 중의 하나일 것이다. 포디엄에 선 무티는 세월을 잊은 듯 포스를 뿜어냈고, 지휘봉은 여전히 쩌렁쩌렁했다. 우리 나이로 81세가 되신 ‘무티 옹’께 리즈 시절의 열정, 박력, 카리스마를 기대할 수는 없겠지만 그가 지휘하는 모습을 연주회장에서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벅차오른다. 그가 포디엄에 설 때마다, 클래식의 역사가 한 줄씩 늘어난다.

이날 무티와 빈필은 1부에서 슈베르트 교향곡 4번 ‘비극적’, 스트라빈스키의 발레곡 ‘요정의 입맞춤’ 그리고 2부에서는 멘델스존의 교향곡 4번 ‘이탈리아’를 연주했다.
빈필은 슈베르트에서부터 음반에서는 좀처럼 느끼기 힘들었던 유려하고 매끄럽고 몽글몽글한 사운드를 자아내 주었다. 현악기군은 말할 것도 없고 목관 심지어 금관조차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부드럽게 윤활해 귀로 ‘버터 향’을 맡을 수 있을 정도였다. 특히 음을 가늘게 써는 바이올린 파트의 트레몰로 약음은 마치 안개처럼 무대 위로 번져 소리가 눈에 보이는 것 같았다.

사진제공 | World Culture Networks by courtesy of riccardomutimusic.com


무티의 슈베르트는 다소 독특한 연주였다. 전체적으로 좀 눅눅하게 처지는 느낌이었는데, 무티가 제목에 걸맞은 효과를 노렸는지는 모르겠으나 ‘비극적으로’ 느리게 잡은 템포도 한 몫을 했을 것이다.
이에 비해 ‘요정의 입맞춤’의 경우, 슈베르트보다는 좀 더 흥미로운 연주였다. 목관이 ‘탁’ 트이면서 사운드가 확실히 재밌어졌다. ‘좀 더 듣고 싶다’ 싶었지만 1부 끝.

그런데 20분간의 휴식 뒤 돌아온 빈필은 분위기가 ‘샥’ 달라져 있었다.
멘델스존 ‘이탈리아’ 교향곡이 프로그램에 포함되었다는 사실은 은근한 기대감을 갖게 한다. 이탈리아 출신의 지휘자와 같은 언어, 문화권을 공유하는 독일 작곡가의 작품. 실로 ‘무티+빈필’ 조합다운 레퍼토리가 아닐 수 없다.

1부의 슈베르트가 눅눅한 ‘비극적’ 습기에 절어 있었다면, 과연 2부 멘델스존의 ‘이탈리아’는 하얀 태양 아래 광활한 포도밭이 펼쳐지는 듯 쨍쨍한 연주였다. 무티의 지휘봉이 바빠졌고, 움직임도 현란지기 시작했다.
멘델스존의 ‘이탈리아’는 뭐니 뭐니 해도 4악장 피날레의 ‘살타렐로’를 듣는 재미 아니겠는가. 가슴이 우주공간까지 확장되어 나간 듯 후련해진다. 깊은 국물 맛의 ‘빈필 사운드’는 이런 시원한 맛도 갖고 있다.

무티는 앙코르곡으로 베르디의 ‘운명의 힘’ 서곡을 연주해 살타렐로의 흥분에서 채 빠져나오지 못한 관객들을 아예 넉다운 시켜버렸다. 누가 뭐라 해도 베르디는 무티의 전공과목. ‘81세에 이르기까지 그는 무대에서 이 곡을 몇 번이나 지휘했을까’가 이 앙코르 연주에 대한 답이자 감상이 될 것이다.

끝까지 무티다웠고, 빈필다웠던 연주회. 관객의 박수와 함성 속에서 무티와 빈필 단원들은 “우린 이겁니다”라는 듯 환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아마 19세기의 빈필 단원들도 같은 미소로 관객의 박수를 받았을 것이다. 그것이 빈필이니까.

양형모 기자 hmyang0307@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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