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강PO 명승부에 오점 남긴 강원 볼보이의 태업, 이러다 ‘공공의 적’ 낙인찍힐라

입력 2021-12-14 06: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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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대전의 K리그 승강 PO 2차전에 펼쳐진 12일 강릉종합운동장에선 볼썽사나운 광경이 거듭됐다. 볼보이 임무를 맡은 강원 U-18 유스팀 강릉제일고 축구부 선수들이 태업에 가까운 행위로 경기진행을 지연시켜 빈축을 샀다. 스카이스포츠 중계화면 캡처

강원FC와 대전하나시티즌은 12일 ‘하나원큐 K리그 2021’ 승강 플레이오프(PO) 2차전에서 올 한해를 멋지게 마무리하는 명승부를 펼쳤다. 그러나 강원이 가능성 ‘제로(0)’를 뛰어넘는 드라마를 연출한 가운데 원활한 진행을 도와야 할 홈팀 볼보이가 오히려 경기를 방해하며 옥에 티를 남기고 말았다.


볼보이 임무를 맡은 강원 18세 이하(U-18) 유스팀인 강릉제일고 축구부 선수들은 전반 30분 한국영의 골이 터져 3-1 리드를 잡은 뒤부터 태업을 시작했다. 상대의 스로인, 코너킥 상황에서 공을 내주지 않거나 엉뚱한 곳으로 흘려보내는 등 고의로 경기진행을 지연시켰다. 후반 26분 대전하나 측이 폭발했다. 사이드라인에 있던 볼보이가 공을 품에 안은 채 앉아 있었고, 대전하나 이종현은 멀리 벗어난 공을 직접 주워와 스로인을 했다. 이민성 대전하나 감독과 코치진은 강하게 항의했고, 대전하나 원정팬들은 거친 욕설을 쏟아냈다. 결국 최윤겸 경기감독관은 볼보이 교체를 지시했다.

홈팀 볼보이가 주목을 받는 일은 그리 낯선 장면은 아니다. 2019년 11월 열린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UCL) 조별리그 당시 볼보이로 나선 토트넘 유스팀의 캘럼 하인스는 공격 상황에서 빠르게 공을 전달해 해리 케인의 득점을 도왔다. 당시 토트넘을 이끌던 조세 무리뉴 감독은 이례적으로 하인스를 칭찬한 뒤 훈련장에 초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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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 어드밴티지’를 이용했다는 것이 강원 측의 입장이다. 경기 후 강원 최용수 감독은 “홈 이점은 전 세계 어디든 다 있다”며 대수롭지 않게 넘겼고, 이영표 대표이사 역시 지역매체와 인터뷰에서 “홈&어웨이 경기를 하는 유럽에선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홈팀을 이롭게 하는 것이 아니라 명백하게 원정팀을 방해한 행위였다. 들것을 담당하는 유스팀 선수들까지 의도적으로 경기 지연 행위를 했던 것에 비춰볼 때 조직적 태업이란 의심도 든다.


해당 볼보이들이 장차 K리그 무대에서 활약할 자원들이라는 점이 심히 우려스럽다. 고교 1학년부터 준프로 계약을 체결할 수 있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당장 내년부터라도 K리그 경기에 뛸 수 있는 ‘프로급’ 선수들이다. 현 소속팀의 잔류를 위해서였겠지만, 동업자 정신이 완전히 결여된 행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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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 볼보이들은 앞으로 공공의 적이 될 수밖에 없다. 강릉제일고 선수로 나설 경기는 물론 추후 프로 진출에도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산하 유스팀이지만, 강원이 모든 선수들을 품을 수는 없다. K4리그에 참가하는 강원 B팀의 인원까지 고려해도 프로행을 바라는 일부 선수들은 다른 팀을 노크해야 한다. ‘강원 볼보이’란 낙인이 찍힌 선수를 받아줄 팀은 그리 많지 않을 수 있다.


강력한 징계가 필요하지만, 현재로선 강원의 볼보이 교육과 재발방지 약속을 믿는 것 말고는 방도가 없다. 한국프로축구연맹 관계자는 13일 “경기 진행 매뉴얼에 볼보이에 관한 내용이 있지만, 현실적으로 징계를 내리기는 어렵다”고 밝혔다.

이승우 기자 raul1649@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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