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짜깁기라더니 다양한 시각 존중”, JTBC·‘설강화’ 말장난 그만 [홍세영의 어쩌다]

입력 2021-12-23 16:4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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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깁기라더니 이제는 다양한 의견을 존중한단다. JTBC 토일드라마 ‘설강화 : snowdrop’(극본 유현미 연출 조현탁, 약칭 ‘설강화’) 논란에 대한 방송사와 제작진 입장이 조금씩 변화한다.

JTBC는 23일 공식입장문을 통해 특별 편성을 고지했다. JTBC는 “‘설강화’에 대한 논란이 지속되고 있다. 방송 드라마의 특성상 한 번에 모든 서사를 공개 할 수 없기 때문에 초반 전개에서 오해가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이에 당사는 시청자들 우려를 덜고자 방송을 예정보다 앞당겨 특별 편성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JTBC는 “24일(금)~26일(일) 3일간 방송되는 ‘설강화’ 3~5회에서는 남파 공작원인 수호가 남한에 나타난 배경과 부당한 권력의 실체가 벗겨지며 초반 설정과의 개연성이 드러나게 된다. 극 중 안기부는 남파 공작원을 남한으로 불러들이는 주체임이 밝혀지고, 본격적으로 남북한 수뇌부가 각각 권력과 돈을 목적으로 야합하는 내용이 시작된다. 또한 이들이 비밀리에 펼치는 작전에 휘말리는 청춘들의 이야기도 전개된다”고 했다.

JTBC는 “콘텐츠에 대한 다양한 시각과 의견을 존중한다. 시청자들의 의견을 듣기 위해 시청자 게시판과 포털사이트 실시간 대화창에서 다양한 목소리를 청취하고 있다. 이번 특별 편성 역시 시청자들의 우려를 해소하기 위한 선택이다. 앞으로도 보내주는 의견을 경청하고 좋은 콘텐츠를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이야기했다.

이상하다. 불과 며칠 전만 해도 ‘설강화’에 반대 목소리를 했던 이들 의견을 ‘짜깁기 억지’로 취급하던 방송사와 제작진은 이제 다양한 시각과 의견을 존중한단다.

‘설강화’ 논란이 처음 불거질 당시 JTBC는 첫 해명은 이랬다. JTBC는 “올 하반기 방송 예정인 ‘설강화’는 민주화 운동을 폄훼하고 안기부와 간첩을 미화하는 드라마가 결코 아니다. ‘설강화’는 80년대 군사정권을 배경으로 남북 대치 상황에서의 대선정국을 풍자하는 블랙코미디다. 그 회오리 속에 희생되는 청춘 남녀들의 멜로 드라마이기도 하다. 미완성 시놉시스의 일부가 온라인에 유출되면서 앞뒤 맥락 없는 특정 문장을 토대로 각종 비난이 이어졌지만, 이는 억측에 불과하다. 특히 ‘남파간첩이 민주화 운동을 주도한다’, ‘학생운동을 선도했던 특정 인물을 캐릭터에 반영했다’, ‘안기부를 미화한다’ 등은 ‘설강화’가 담고 있는 내용과 다를뿐더러 제작 의도와도 전혀 무관하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현재 이어지고 있는 논란이 ‘설강화’의 내용 및 제작 의도와 무관하다는 사실을 명확히 밝힌다. 아울러 공개되지 않은 드라마에 대한 무분별한 비난을 자제해주길 부탁한다”고 했다.

그런대도 논란은 계속됐다. 그러자 JTBC는 2차 입장문을 내놨다. JTBC는 “드라마 ‘설강화’ 논란에 거듭 입장을 밝힌다. 본 방송사는 ‘설강화’에 대한 입장 발표 이후에도 여전히 이어지는 억측과 비난에 대한 오해를 풀고자 재차 입장을 전한다”며 “현재 논란은 유출된 미완성 시놉시스와 캐릭터 소개 글 일부의 조합으로 구성된 단편적인 정보에서 비롯됐다. 파편화된 정보에 의혹이 더해져 사실이 아닌 내용이 사실로 포장되고 있다. 물론, 이는 정제되지 않은 자료 관리를 철저히 하지 못한 제작진 책임이다. 이에 본 방송사는 ‘설강화’의 내용 일부를 공개하며 이해를 구하고자 한다”고 운을 뗐다.

JTBC는 “민주화 운동 폄훼 논란에 대해 말한다. ‘설강화’는 민주화 운동을 다루는 드라마가 아니다. 남녀 주인공이 민주화 운동에 참여하거나 이끄는 설정은 대본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오히려 80년대 군부정권 하에 간첩으로 몰려 부당하게 탄압받았던 캐릭터가 등장한다. ‘설강화’ 극 중 배경과 주요 사건 모티브는 민주화 운동이 아니라 ‘1987년 대선 정국’이다. 군부정권, 안기부 등 기득권 세력이 권력 유지를 위해 북한 독재 정권과 야합해 음모를 벌인다는 가상의 이야기가 전개된다”고 설명했다.

JTBC는 “이런 배경하에 남파 공작원과 그를 쫓는 안기부 요원이 주요 캐릭터로 등장한다. 이들은 각각 속한 정부나 조직을 대변하는 인물이 아니다. 정권 재창출을 위한 부정한 권력욕, 이에 적극적으로 호응하는 안기부에 대한 비판적 관점을 부각하는 캐릭터들이다. 그러므로 간첩 활동이나 안기부가 미화된다는 지적도 ‘설강화’와 무관하다. 안기부 요원을 ‘대쪽 같다’고 표현한 이유는 그가 힘 있는 국내 파트 발령도 마다하고, ‘간첩을 잡는 게’ 아니라 ‘만들어내는’ 동료들에게 환멸을 느낀 뒤 해외 파트에 근무한 안기부 블랙 요원이기 때문이다. 또한 이 인물은 부패한 조직에 등을 돌리고 끝까지 본인이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하는 원칙주의자로 묘사된다”고 이야기했다.

JTBC는 “극 중 캐릭터의 이름 설정은 천영초 선생님과 무관하다. 하지만 선생님을 연상하게 한다는 지적이 나온 만큼 관련 여주인공 이름은 수정하겠다”며 “이를 토대로 이 시간 이후부터는 미방영 드라마에 대한 허위 사실을 기정사실인양 포장해 여론을 호도하는 행위를 자제해주시길 부탁한다. 좋은 작품을 만들고자하는 수많은 창작자를 위축하고 심각한 피해를 유발하는 행위라는 사실을 인지해주셨으면 한다. 본 방송사는 완성된 드라마로 좋은 평가를 받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전했다.

그리고 지난 16일 제작발표회에서는 창작의 자유를 침해하지 말라는 식의 말까지 더했다. 연출자 조현탁 감독은 “유현미 작가가 오랫동안 준비한 작품이다. 정치범 수용소에서 탈북자 수기를 보고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우여곡절 끝에 이야기가 확정됐고, 실제 유현미 작가가 대학생 시절 기숙사 생활을 하면서 겪은 경험을 더한 것”이라며 “(작품에서) 북한(간첩)에 대해 언급된다. 이는 정치적이고, 이념적인 것이 아니다. 북한 사람, 사람 그 자체 대한 것이다. 사람에 대한 밀도 깊은 이야기를 그리려는 의도다”라고 했다.

역사 왜곡 등 여러 논란에 대해서는 짜깁기로 이루어진 프레임을 강조했다. 조현탁 감독은 “작품 설명을 먼저 해야 할 것 같다. 1987년을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가상의 창작물이다. 시대적인 배경 외에 가상의 설정에서 전체 이야기 중심은 청춘남녀의 애절한 사랑한 이야기다. 모든 장치는 이들 사랑을 위한 거다. 그렇기에 가상 작품 공간에서 모든 이야기가 리얼리티를 담는다. 그런데 문구 몇 개가 유출, 짜깁기돼 말도 안 되는 말이 기정사실화 되어 보도까지 됐다. 관리 소홀인 제작진 책임이 있지만, 알려진 것과 다르다. 방송을 통해 알려진 것과 다르다는 것을 확인해 주셨으면 한다”고 해명했다.

그러면서 “최근 국내 콘텐츠가 세계적으로 주목받고 있다. 내 일처럼 기쁘다. 창작자들은 어떤 작품을 임할 때 사명감을 가지고 최선을 다한다. 이 점을 꼭 알아줬으면 한다”며 “작품이 공개(방송)되기 전부터 논란이 되는 게 창작자에게는 큰 고통과 압박이 된다. 이 점 깊이 고려해 주길 바란다”고 이야기했다.
수차례 해명했지만, 1, 2회 방송 이후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폐지를 요구하는 국민청원 동의 수가 30만 명을 돌파했다. JTBC는 21일 세 번째 입장문을 내놨다. JTBC는 “‘설강화’ 방송 공개 이후, 사실과 다른 내용을 바탕으로 논란이 식지 않고 있어 입장을 전한다. 우선, ‘설강화’ 극 중 배경과 주요 사건의 모티브는 군부정권 시절의 대선 정국이다. 이 배경에서 기득권 세력이 권력 유지를 위해 북한 정권과 야합한다는 가상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설강화’는 권력자들에게 이용당하고 희생당했던 이들의 개인적인 서사를 보여주는 창작물”이라고 했다.

JTBC는 “‘설강화’에는 민주화 운동을 주도하는 간첩이 존재하지 않는다. 남녀주인공이 민주화 운동에 참여하거나 이끄는 설정은 지난 1, 2회에도 등장하지 않았고 이후 대본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현재 많은 분이 지적해 준 ‘역사 왜곡’과 ‘민주화 운동 폄훼’ 우려는 향후 드라마 전개 과정에서 오해의 대부분이 해소될 것이다. 부당한 권력에 의해 개인의 자유와 행복이 억압받는 비정상적인 시대가 되풀이 되지 않기를 바라는 제작진 의도가 담겨 있다”고 전했다.

JTBC는 “회차별 방송에 앞서 많은 줄거리를 밝힐 수 없는 것에 아쉬움이 남지만, 앞으로의 전개를 지켜봐 주길 부탁한다. 또한, 콘텐츠에 대한 소중한 의견을 듣기 위해 포털사이트 실시간 대화창과 공식 시청자 게시판을 열어 다양한 목소리를 청취할 계획이다. 핵심적으로 추구하는 가치는 콘텐츠 창작의 자유와 제작 독립성이다 .JTBC는 이를 바탕으로 앞으로도 좋은 작품을 보여드리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민주화 운동 단체를 비롯해 몇몇 시민단체, 정치권 인사들까지 나서 ‘설강화’에 말을 더하고 있다. 문제를 지적하는 이들과 창작의 자유를 침해하지 말라는 이들이 맞서는 상태다. 하지만 정작 알맹이는 없다. 처음 논란이 불거질 당시인 지난 봄부터 겨울인 지금에 이르기까지 JTBC와 ‘설강화’ 제작진은 민주화 단체 등 오해가 될 만한 것에 대한 충분한 이야기를 나눴는지 말하지 않는다.

창작의 자유를 외칠 때에는 그 창작 활동에 따르는 파생된 문제에 대한 인식과 고찰, 그리고 행동으로 옮기는 책임 의식도 뒤따라야 한다. ‘아니니까 아니다’가 아니라 ‘이래서 아니니까’다. 명확한 증거를 제시해야 한다. 창작물을 보고 판단하라는 말은 너무 안일한 대처한 대처다. 적어도 모두가 수용할 만한 수고스러움을 보여주는 것도 창작자의 자세다. 민주화 단체 등에게 작품에 대해 설명을 하고, 광고·협찬사 등에 작품 방향이 이러하니 우리와 함께해줄 것을 약속받아야 한다. 하지만 이런 절차도 없는 작품에 ‘왜곡 아니니까 일단 보고 판단하라’니.

작금의 논란은 문제를 제기한 이들이 억지를 부리는 게 아니라 충분히 소명되지 않는 부분에 대한 답을 요구하는 것이다. 역사 왜곡 및 미화가 아니라면 아닌 것에 대한 명확한 증거를 제시해야 한다. 시청자를 설득하는 것도 방송사와 제작진 몫이다. ‘아니니까 아니다’는 시청자 농락이고 희롱이다. 적어도 작품을 쓴 작가는 공개적이든 개인적이든 작품 방향성에 대해 이야기할 필요가 있다. 방송사와 연출자 뒤에 숨어 사태를 관망할 게 아니라. 이제 진짜 입장은 유현미 작가 본인에게서 나올 듯하다.

동아닷컴 홍세영 기자 projecthong@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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