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업자 김정주의 꿈 ‘한국의 디즈니’…넥슨이 이을까

입력 2022-03-02 18:5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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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주 넥슨 창업자

“디즈니는 세상에서 제일 좋은 회사다. 100분의 1이라도 따라가고 싶다(2015년 창립 20주년을 맞아 출간된 ‘플레이’ 중)”

지난 달 말 유명을 달리한 고 김정주 넥슨 창업자는 ‘넥슨을 월트 디즈니처럼 만들고 싶다’는 말을 자주 했다고 한다. 게임 회사를 넘어 전 세계인들이 즐길 수 있는 콘텐츠를 제작하는 회사로 키우겠다는 포부였다. 미국을 방문할 때마다 월트 디즈니사를 찾았던 것으로도 알려졌다.

비록 미완으로 남게 됐지만 “아이들과 부모들이 한참 줄을 서서 콘텐츠를 즐기는 모습이 부럽다”며 “언젠가 ‘한국의 디즈니’를 만들겠다”던 꿈은 넥슨을 통해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국내 게임시장의 개척자

김 창업자는 국내 게임 시장의 개척자다. 이해진 네이버 글로벌투자책임자, 김범수 카카오 의장, 김택진 엔씨소프트 대표 등과 함께 ‘성공한 벤처 1세대 사업가’로도 꼽힌다. 무엇보다 ‘온라인게임’이란 단어조차 낯설던 1990년대에 대한민국 게임 산업 태동에 큰 역할을 했다.

1968년생인 고인은 서울대 컴퓨터공학과를 졸업한 뒤, 카이스트 대학원에서 박사과정을 밟고 있던 1994년 넥슨을 창업했다. 대학을 함께 다닌 절친 송재경 엑스엘게임즈 대표와 함께 PC온라인게임 개발에 뛰어들었다. 2년 뒤 내놓은 세계 최초 그래픽 기반 온라인게임 ‘바람의 나라’로 성공적인 데뷔를 했고, 이후에도 ‘카트라이더’ 등을 연이어 흥행시키며 넥슨을 국내 게임업계 대표 기업으로 성장시켰다.

회사의 캐시카우가 된 ‘메이플스토리, ‘던전앤파이터’ 등의 개발사를 인수하는 선구안도 있었다. 그 밖에 유아용품 기업, 암호화폐거래소 등에 투자하기도 했다. 2011년에는 일본 도쿄증권거래소에 상장하며 글로벌 시장 공략의 발판을 마련했다. ‘한국의 디즈니’를 만들기 위한 전략적 선택이기도 했다.

넥슨은 이후 글로벌 시장에서도 큰 성과를 냈고, 2020년 연매출 3조 원 시대를 열었다.

활발한 활동을 하던 그는 지난해 7월 돌연 지주사 NXC 대표에서 물러난다고 발표했다. “이제는 역량 있는 다음 주자에게 맡길 때가 됐다. 보다 자유로운 위치에서 넥슨컴퍼니와 우리 사회에 도움이 되는 길을 찾겠다”는 것이 이유였다. 실제로 이후 엔터테인먼트 업계 전문가를 영입하고, 미국의 영화 제작사에 대규모 투자를 하면서 한국의 디즈니에 한발 더 다가서는 듯했다.

김 창업자는 평소 아이들을 위한 사회공헌 활동에도 남다른 관심을 보였다. 2016년 개원한 아동 재활병원 ‘푸르메재단 넥슨어린이재활병원’에 200억 원을 기부했다. 2018년에는 넥슨재단을 설립하고, 활동을 더 본격화했다. 지금까지 어린이재활병원에 기부한 금액만 500억 원이 넘는다.

이 외에도 코딩 교육과 넥슨컴퓨터박물관 개관 등 어린이와 청소년을 위한 지원을 이어왔다.


●김택진 “살면서 가장 큰 고통”

갑작스러운 비보에 게임업계는 허망함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선의의 경쟁자로 한국 게임 산업을 함께 이끌어온 김택진 엔씨소프트 대표는 페이스북을 통해 “사랑하던 친구가 떠났다. 살면서 못 느꼈던 가장 큰 고통을 느낀다”며 “같이 인생길 걸어온 나의 벗 사랑했다. 이젠 편하거라 부디”라고 추모했다. 방준혁 넷마블 의장과 남궁훈 카카오 대표 내정자도 각자 애도의 글을 남겼다.

창업자의 공백은 넥슨의 신사업 추진이나 대규모 투자 등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지배구조 변화 가능성에도 관심이 쓸린다. 고인과 유족은 지주사 NXC의 지분을 사실상 100% 소유하고 있다.

NXC는 일본 상장법인 넥슨의 지분 약 47%를 가지고 있다. 다만, 오래 전부터 전문경영인 체제를 유지해왔고, 고인이 생전에 자녀들에게 경영권을 물려주지 않겠다고 한만큼 당분간 넥슨의 경영에는 큰 변화가 없을 전망이다.

경영진이 고인의 뜻을 이어가겠다고 밝히면서 ‘한국의 디즈니’를 위한 발걸음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이정헌 넥슨코리아 대표는 “글로벌에서 누구나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회사로 만들어 달라며 환하게 웃던 미소가 아직도 선명하다”며 “꿈을 현실로 만들어 나아가는 여정에 함께 할 수는 없지만 넥슨의 경영진은 그의 뜻을 이어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더 사랑받는 회사를 만들어 나가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오웬 마호니 넥슨 일본법인 대표도 “그는 넥슨을 진정한 글로벌 리더로 만들면 모든 세상 사람들에게 영감과 기쁨을 줄 수 있다고 믿었다”면서 “넥슨의 경영진은 그 비전을 흔들림 없이 이어받고 추진해 나갈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다.

한편, 국내 빈소 마련 여부 등은 정해지지 않았다.

김명근 기자 dionys@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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