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면허 직원을 고용해 약을 조제해 약사법 위반 의혹을 받는 부산 부산진구에 위치한 A약국.
시민 “진구보건소 ‘겉핥기식’ 지도·점검” 지적
“약국·공무원 담합 여부 경찰 조사 시급해”
법원판례 “무면허자, 약사의 지휘·감독 아래 있어야”
부산시 부산진구 한 대형병원 앞 약국에서 약사면허가 없는 사람이 약을 조제하고 있다는 의혹이 일면서 파문이 일고 있다. 그러나 지도·점검해야 할 부산진구 보건소는 이러한 사실이 민원으로 접수됐음에도 느슨하게 대처해 물의를 일으키고 있다.“약국·공무원 담합 여부 경찰 조사 시급해”
법원판례 “무면허자, 약사의 지휘·감독 아래 있어야”
3일 스포츠동아 취재를 종합하면 심평원에 등록된 A약국의 약사는 B약사 1명이다. 약국은약사가 직접 제조와 복약지도를 해야 한다.
지난달 16일 본지의 보도에 따라 여러 언론사가 A약국을 취재하고 보도했음에도 여전히 무면허 직원이 버젓이 약을 조제하고 있고 이를 감독해야 할 부산진구보건소는 단속에서 손을 뗀 상태다.
조제실에서 약사가 아닌 직원이 약을 조제하는 불법적 행위에 대해 지도·감독을 하지 않나? 라는 기자의 질문에 부산진구보건소 소은선 의약관리계장은 “조제실에 있는 그분이 실제 조제를 하는 것을 본 것은 아니지 않느냐? 명확한 증거가 있으면 관련법에 조치하겠지만 증거가 없다. 그러니 근거 자료인 동영상을 제보하면 확인해 보겠다”라고 답변했다.
그러면서 “그 약국에는 ATC 기계가 있다. 처방전을 컴퓨터로 읽히면 그게 전송이 되어 그 기계에서 약이 다 포장이 돼서 나온다. 그때 당연히 약사가 검수하고 약을 환자에게 주기 때문에 약사법 위반으로는 볼 수 없다”고 말했다.
지난 2일 A약국 B약사가 조제실에서 나오는 약봉지를 챙기고 있다.
하지만 전문약사의 의견과 법원의 판단은 다르다.
부산진구에서 약국을 운영하는 한 약사는 “ATC 기계에 처방전 내용을 송신할 때는 약사가 해야 하며 ATC 기계에 없는 약이거나 분할된 약을 깔 때는 약사의 지도와 멘트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며 “ATC기에서 깔 약을 인쇄할 종이를 직원이 보고 깔면 안 된다”고 말했다.
이어 “약 종류가 1000가지가 넘는다. ATC 기계에 약을 넣는 것은 약사가 아닌 무면허자가 해도 되지만 반드시 약사 시선 안에서 감독이 이뤄져야 한다”며 “감독을 해야 하는 약사 시선 밖에서 직원이 약을 조제하면 약사법 위반”이라고 주장했다.
지난 2021년 창원지법에서 내린 판례도 ‘1m 거리에서 약사가 구체적 지도·감독해 조제를 한 무면허자’에게 무죄판결이 있었다. 당시 무죄를 받은 결정적인 이유는 ‘약사가 무면허자 시야에서 구체적인 지휘·감독 행위 하에 이뤄진 일이어야 한다’라는 전제가 중요하게 적용된 판례다.
이 판례의 요지는 ‘약사가 종업원의 1~2m 거리에 있으면서 지휘·감독’을 해야 하고 ‘종업원은 약사의 구체적 지시에 따라 약을 담아야’ 죄를 면할 수 있지만 이를 어겼을 시는 약사법 위반에 해당 된다는 것.
A약국 내부를 살펴보면 약사의 지휘·감독이 불가능한 곳이다. 조제실과 약국 안은 칸막이가 쳐져 있고 그렇다 보니 B약사는 대부분을 바깥에서 약 지도를 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약국 조제실에서는 끊임없이 약이 담긴 약봉지가 밖으로 밀려 나오고, 약사의 등 뒤에서 약이 조제되어 나오고 있었다.
실제 B약사가 처방전을 조제실로 밀어 넣자, 안에서 대기하고 있던 직원은 자연스럽게 처방전을 받아 들었고 1~2분이 지나자, 약이 담긴 약봉지가 밖으로 나왔다. 분주하게 움직이던 B약사는 조제실에서 나온 약봉지를 들고 손님에게 약을 건네는 장면도 쉽게 목격됐다.
무면허 조제 약사법 위반으로 의심되는 A약국에서 B약사가 조제실에 처방전을 넣자(윗쪽) 조제실에서 처방전을 받아가는 모습.
ATC는 Automatic Tablet Counting and dispensing의 약자로 약국에서 사용하는 알약을 자동으로 분배 및 포장해 주는 기계다. 약사가 담당하는 조제 행위 중 일부를 기계가 보조하는 것으로 대형병원이나 문전약국뿐만 아니라 최근에는 중소규모 약국에서도 대부분 ATC를 활용해 조제하고 있다.
과정을 살펴보면 전산작업 직원이 처방전을 받아 PC에 입력하면 조제실 내부 컴퓨터에 자료가 자동으로 전달된다. 약사는 해당 컴퓨터에서 의약품 종류와 용량, 용기 등을 결정하고 조제 명령을 내린다. 컴퓨터와 연결된 ATC는 약사 명령에 따라 입력된 약을 분류, 분배, 포장한다. 최종적으로 약사는 포장된 약을 검수를 하고 환자에게 복용 방법을 지도하고 제공한다.
한 약사는 “자주 사용하는 알약들은 대부분 ATC 캐니스터에 넣어두지만, 캐니스터(약통)에 들어가 있지 않은 약들은 수동으로 STS 칸에 투입해 줘야 한다”며 “해당 약국 앞에 한 시간만 서 있어도 위법을 확인할 수 있는데 보건소 담당자는 ‘ATC 기계를 사용하니 불법이 아니다’라고 단정하는 이유를 모르겠다. 직무유기로 고발할 계획”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무면허자가 의약품을 판매하거나 조제한 행위는 상당한 주의와 감독이 필요함에도 이를 게을리하거나 법령을 위반한 경우 약국의 대표자는 5년 이하의 징역이나 5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하루에도 많은 환자가 찾는 약국에서 무면허 직원이 약을 조제하고, 관할 관청의 단속조차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시민들은 불안에 떨고 있다.
스포츠동아(부산) | 김태현 기자 localbuk@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