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이영미가 마치 뮤지컬 작품의 한 장면처럼 플라멩코 포즈를 취한 사진을 보내왔다. 플라멩코는 연기훈련과 예술적 영감은 물론 건강까지 선물해주는 고마운 친구다. 사진촬영|이현영
10여년 전 배웠다 작년 다시 시작해
현란한 손·발동작, 추고 나면 땀범벅
집중·몰입의 춤…정신건강에 도움
가요계처럼 뮤지컬계에도 ‘여신’들은 많지만 ‘여왕’은 몇 되지 않는다. 여신과 달리 여왕에게선 범접불가의 위압이 느껴진다. 심지어 하나를 더해 ‘카리스마 여왕’으로 불린다면 적어도 한국에서는 유일무이의 존재, 이영미뿐이다.현란한 손·발동작, 추고 나면 땀범벅
집중·몰입의 춤…정신건강에 도움
“오래 전에 내려놨다”는 이영미의 말은 목숨이 세 개쯤 되는 누군가가 그의 왕관을 집어가기 전까지는 인정될 수 없는 분위기다.
요즘 이영미는 뮤지컬 ‘데스노트’에서 사신 ‘렘’ 역으로 관객과 만나고 있다. 죽음을 떠올리게 하는 희고 퍼런 얼굴, 천사의 허물 같은 의상, 느짓한 걸음. 미사의 사랑과 자신의 영원한 삶을 맞바꾸기로 결심하며 부르는 넘버 ‘어리석은 사랑’은 이 작품의 하이라이트를 향해 솟아오르는 매버릭의 F-18 슈퍼호넷처럼 아찔하다.
그러니 참 놀랍지 않은가.
카리스마 여왕이 추천한 7330 운동은 플라멩코. 우리가 알고 있는 스페인 남부 안달루시아 지방에서 유래한 그 춤이다. 담배공장의 집시 여인 카르멘이 뭇 남자들을 유혹하며 추던 관능의 춤. 보는 이의 머리보다 심장을 먼저 울리는 이 춤이야말로 여왕이 애정해마지 않는 몸짓이자 운동이다.
“(뮤지컬) 조로 때였어요. 시작한 건.”
2011년 뮤지컬 ‘조로’에서 이영미는 집시여인 ‘이네즈’를 맡았고, 연기를 위해 플라멩코를 처음 접했다. 오디션을 앞두고 수소문해 플라멩코 스튜디오를 찾아갔고 그곳에서 현재 절친이 된 플라멩코 댄서이자 안무가 이혜정과 인연을 맺게 된다. 공연이 끝난 후 오래도록 잊고 살았던 플라멩코를 본격적으로 다시 시작한 것은 지난해였다.
플라멩코와 탱고를 혼동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가장 큰 차이점은 두 사람이 호흡을 맞춰 추는 탱고와 달리 플라멩코는 혼자 춘다. 또 하나 있다. 플라멩코는 발동작이 매우 중요하다. 탭댄스와 비견될 정도다.
“플라멩코를 추고 엄청 땀을 흘리거든요. 유산소 운동 효과도 크죠.”
순간적으로 ‘팍’ 꺾는 동작이 많다보니 스트레칭도 필수. 그런데 이영미는 조금 다른 이야기를 했다.
“몸의 운동도 되지만 정신적인 부분이 굉장히 중요해요. 집중하지 않으면 절대 출 수 없는 춤이거든요.”
보통 사람들은 한 마디에 4분 음표 네 개가 들어가는 4박자도 쉽지 않은데 플라멩코는 무려 12박자의 춤이다.
“박자를 엄청 쪼개 놓은 걸 다 맞춰야 하고, 손 따로 발 따로 가니까 정말 쉽지 않아요. 개인적으로 작년에 몸도 마음도 좀 힘든 시기가 있었는데 플라멩코가 저를 위로해 주었죠.”
의상을 입고 한바탕 플라멩코를 출 때면 부글부글 끓던 생각들이 수면 아래로 가라앉고, 결국 한 줌의 생각마저 사라지는 무상의 찰나와 마주하게 된다. 마음의 노폐물들이 땀방울과 함께 후드득 떨어진다.
“리허설을 하고, 공연이 (무대에) 올라가고 할 때는 잔뜩 긴장을 하니까 아무 생각도 나지 않죠. 그런데 뮤지컬은 장기 공연이잖아요. 한 달 정도 하게 되면 긴장이 풀리고, 어느 정도 무대도 익숙하게 되면서 이런 저런 생각이 들기도 하거든요. 이럴 때 플라멩코가 큰 도움이 되죠. 정말 아무 생각도 할 수 없게 만드는 춤입니다.”
이영미가 스튜디오에서 찍은 사진을 보내왔다. 여왕의 운동, 플라멩코. 플라멩코는 사진 속처럼 그의 육신뿐만 아니라 그의 마음에까지도 아름답고 단단한 근육을 만들어주고 있었다.
양형모 기자 hmyang0307@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