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후. 사진출처 |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SNS
이정후(25·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가 16일(한국시간) 입단식에서 팬들에게 전한 첫인사였다. 그게 끝이 아니었다. 영어로 자기소개와 감사인사를 했다. 미리 준비한 종이를 보며 읽는 방식이었지만, 통역을 거치는 것보다 확실하게 자신의 입장을 전달할 수 있었다. “레츠 고 자이언츠”라며 파이팅을 외칠 때까지, 그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현장 분위기는 밝아졌다. 이는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이정후의 남다른 자신감과도 맞닿아있다.
어쩌면 이정후는 2017년 KBO 신인 1차지명을 통해 키움 히어로즈(당시 넥센)에 입단했을 때부터 메이저리그(MLB) 무대를 밟는 순간을 준비했을지 모른다. 올 시즌을 마친 뒤 10년 7억 달러(약 9095억 원)의 천문학적 계약을 맺은 오타니 쇼헤이(29·LA 다저스)가 고교시절부터 MLB 진출을 꿈꾸며 만든 인생 계획표가 화제가 됐는데, 이정후 역시 데뷔 초부터 포부가 남달랐다.
이정후는 휘문고 3학년이던 2016년 6월 27일 넥센의 1차지명을 받았다. 당시 서울권 3개 구단의 1차지명 순번은 LG 트윈스~키움~두산 베어스의 순이었다. LG가 고우석을 지명한 뒤 키움이 이정후, 두산이 최원준(개명 전 최동현)을 낙점했다. 당시에도 이정후는 고교무대에서 손꼽히는 타자였지만, 그보다는 ‘바람의 아들’ 이종범의 아들로 더 유명세를 타고 있었다.
키움은 이정후가 데뷔하기도 전인 그해 11월 마무리캠프에 그를 데려갔다. 당시 수비코치였던 홍원기 현 키움 감독 등 코칭스태프는 “즉시전력감”이라는 말과 함께 “이렇게 열심히 운동하는 신인을 처음 봤다”고 입을 모았다. 11월 23일 마무리캠프를 마친 뒤 스포츠동아와 만난 이정후는 “자신감을 얻었다”는 식의 상투적 소감이 아니라 귓전을 울리는 한마디를 남겼다. “프로에선 내가 부족한 점을 스스로 찾아서 훈련할 수 있다는 점이 정말 좋았다. 무엇보다 내 야구에 대한 확신이 생겼다.”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입단식을 마친 이정후가 19일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입국해 인터뷰를 하고 있다. 김종원 기자 won@donga.com
그 같은 확신은 이정후가 KBO리그에서 활약한 7년간 엄청난 성과로 이어졌다. 샌프란시스코는 7년간의 꾸준함을 눈여겨보고 6년 총액 1억1300만 달러(약 1470억 원)의 거액에 옵트아웃 조항까지 삽입한 초특급 계약을 안겼다.
기량 향상뿐 아니라 MLB 무대를 경험했던 외국인선수들의 행동 하나하나를 관찰한 치밀함도 지금의 이정후를 만든 요소 중 하나다. 19일 금의환향한 뒤 그는 “KBO리그에 있을 때 외국인선수들이 한국말을 잘 못 하더라도 소통하려는 모습이 멋지다고 느꼈다. 그래서 나도 영어로 말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밝혔다. “생각만큼 잘 되진 않았다”고 덧붙였지만, 시도 자체만으로도 적극적인 인상을 남기기에는 충분했다.
이제 이정후도 샌프란시스코에선 키움 유니폼을 입고 뛰었던 외국인선수들과 같은 입장일 터. 그러나 ‘이방인’이 아닌 ‘팀의 일원’으로 녹아드는 방법을 이미 체득한 만큼 걱정은 없을 듯하다. 그는 “조금씩 적응해야 한다”며 “음식은 전혀 문제되지 않을 것이다. 야구 측면에서 준비를 잘해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강산 스포츠동아 기자 posterboy@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