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제공|하이브미디어코프·마인드마크
선악 구도가 명확한 범죄 액션물이 범람하는 요즘 시대, 절대 악을 통쾌하게 처단하는 단순 명료한 정의를 내세우는 대신, 선의 반대말은 악이 아니라 위선(僞善)일 수도 있다는 묵직하면서도 용감한 화두를 던지는 영화가 관객의 마음에 깊은 파장을 일으킬 준비를 마쳤다. 일생일대의 도덕적 선택의 기로에 선 보통의 사람들을 통해 “과연 당신이라면 어떨 것인가”라는 날카로운 질문까지 제시하는 ‘진짜 웰메이드 시네마’, 바로 ‘보통의 가족’이다.
16일 개봉하는 영화는 사회적으로 명망 있고 성공한 두 형제의 이야기기를 그린다. 돈이 되는 일이라면 살인자의 변호도 마다하지 않는 냉정한 변호사인 형 재완(설경구)과 돈이 아닌 어린아이의 소중한 생명을 위해 일하는 다정하고 이타적인 소아과 의사인 동생 재규(장동건)는 너무나도 다른 가치관과 신념으로 신경전을 벌일 때도 있지만, 정기적으로 부부 동반 식사를 가지며 시간을 보낼 만큼 친밀하다. 하지만 평온했던 두 형제의 삶은 각자의 자녀가 함께 폭행 치사 사건을 벌이는 모습이 담긴 CCTV를 확인한 뒤 산산조각 나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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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순간부터 영화는 도덕적 딜레마에 빠진 인간 군상의 ‘잔인한 모습’을 보여준다. 다만 흥미로운 점은 시간이 지나면서 두 형제가 각각의 신념에 반(反)하는 선택을 한다는 점이다. 속물적이던 형 재완은 모든 것에 ‘책임을 지기를’ 택하고, 정의롭고 도덕적 이상을 추구하던 동생 재규는 ‘내 자식만 챙기는’ 이기적인 부모가 된다. 형을 비롯한 다른 사람이 행한 불의를 가차 없이 지적하며 늘 정의를 부르짖던 그는 극한의 상황에서 ‘인간성의 민낯’을 드러내고, 결국 가장 충격적이고 극단적인 선택까지 하게 된다. 하지만 그럼에도 관객은 그를 일방적으로 비난하기가 쉽지 않다. 관객마저 “나라면 그러지 않을 수 있을까”라는 도덕적 딜레마에 빠뜨리는 이 영화의 치밀함 때문이다.
물론 혹자는 재규의 급격한 태도 변화에 공감하지 못할 수도 있다. 하지만 찬찬히 영화를 돌이켜보면 재규의 ‘최종 결정’이 그리 예상하지 못할 일만은 아니다. 해외 의료 봉사를 다닐 만큼 타인에게 따듯하고 다정한 재규는 정작 치매 걸린 홀어머니를 모시는 아내의 고충을 ‘견딜 수 있는 부분’으로 치부했고, 학교 폭력에 시달리던 아들에게는 ‘도덕책에 나올 것 같은 조언’만 건네는 사람이었다. 폭행 치사를 저지른 아들에게 “평소에는 맞고나 다니던 네가!”라고 말했을 정도로 무신경했던 아빠인 그는 사건 해결의 유일한 실마리인 피해자가 사망하자 얹힌 게 내려간 것처럼 깨작대던 식사를 씩씩하게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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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헤르만 코흐의 소설 ‘더 디너’를 원작으로 한 네 번째 영화다. 먼저 영화화된 이탈리아, 네덜란드. 미국 작품은 모두 원작의 제목을 그대로 사용했다. 하지만 허진호 감독의 이번 영화는 ‘보통의 가족’이라는 새로운 제목을 붙였다. 이 가족의 이야기가 영화 속에서만 등장하는 특별한 이야기가 아닌, 바로 ‘보통의 당신’에게도 일어날 수 있음을 강조하는 듯 의미심장한 선택이다. 더욱이 영화는 똑똑하게도 원작과 달리 점수 채우기에만 목적을 둔 대입 입시, 시누이와의 갈등, 치매 노모의 부양 문제 등 한국 사회에 만연한 ‘보통의 문제’를 끌어들여 좀 더 한국 관객들이 공감대를 더욱 높였다.
이승미 기자 sm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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