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문화 특성 반영한 연구 논문, 세계적 저널 게재
효도 강조·부모간섭, 부부 갈등 요인…공감 대화법 필요
최근 자녀 양육, 가족관계의 문제점을 전문가 상담과 치료를 통해 해결책을 찾아보는 ‘금쪽같은 내 새끼’, ‘오은영 리포트-결혼지옥’, ‘이혼숙려캠프’ 등의 TV 프로그램들이 인기를 끌고 있다. 이는 사회 변화와 함께 우리의 가정생활 양상이 다양해지면서 가족 내에서 겪는 문제 또한 복잡하고 심각해진 시대상의 반영이라는 방증일 수 있다.
‘한국형 통합적 가족치료 모델’을 아시아 최초로 개발한 숭실대 사회복지학부 박태영 교수는 “상대에게 상처를 주는 말을 삼가고 공감과 배려의 의사 표현 방법을 ‘배우고 실천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사진제공|박태영 교수

‘한국형 통합적 가족치료 모델’을 아시아 최초로 개발한 숭실대 사회복지학부 박태영 교수는 “상대에게 상처를 주는 말을 삼가고 공감과 배려의 의사 표현 방법을 ‘배우고 실천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사진제공|박태영 교수


이런 가운데 숭실대 사회복지학부 박태영 교수(64)가 ‘한국형 통합적 가족치료 모델’ 논문을 세계적 권위의 학술 저널 ‘패밀리 프로세스(Family Process)’에 실어 주목을 받고 있다.

●30년간 가족치료 상담 1500여 사례 연구
대부분 학문이 그렇듯 기족치료 연구도 1970년대 미국 이론 중심으로 국내에 소개됐지만 나라별, 문화권별 특성이 반영되지 않아 치료 및 연구에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많았다.
효(孝), 한(限), 화병(火病), 학벌주의 등 한국 사회의 독특한 문화적 배경을 갖고 있는 가족 문제를 서구식 이론으로는 제대로 설명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중국, 일본, 대만, 홍콩, 싱가포르 등 문화적 공통성이 많은 아시아권에서도 자체 모델 개발 사례가 없고 박 교수의 모델 개발이 아시아 처음이라고 한다.

박 교수의 논문 게재는 2023년 10월 아시아가족치료학회 학술 행사에서 우연히 성사됐다. 미국의 가족치료 석학이자 ‘패밀리 프로세스’ 편집책임자인 노스웨스턴대 제이 르보(Jay Lebow) 교수가 박 교수의 발표를 듣고 “가족 문제의 핵심을 잘 짚었다”며 논문 투고를 권유해 문턱이 높기로 유명한 이 저널에 실리게 됐다고 한다.

박 교수는 30년 간 가족치료 상담을 한 1500여 가정의 사례를 연구 분석해 한국형 모델을 개발한 학문적 성과라는 점에서 노작(勞作)으로 평가받고 있다.

통틀어 ‘가족 문제’라 하지만 이혼, 재혼, 외도, 가정폭력, 집단따돌림, 자살, 알코올중독, 도박중독, 게임중독, 분노조절장애, 우울증, 공황장애, 성기능장애, 섭식장애, 틱장애, ADHD 등 가족 문제의 양상은 매우 다양하다.
박 교수는 그동안 연구를 통해 ▲비효과적인 의사소통 방식 ▲배우자나 자녀에 대한 감정 전이(轉移) ▲한국 유교문화를 가족 문제의 3대 요인으로 꼽았다.

박 교수는 “부모가 자녀의 결혼 후에도 지나치게 간섭하고 자식도 부모로부터 심리적으로 독립하지 못하는 미분리 현상이 많다”며 “효자 아들이 최악의 배우자라는 자조적 말도 있고 고부갈등, 요즘은 장서갈등까지 심해지는 현상도 이런 가족관계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한국은 효도 중시 문화가 부부 갈등, 나아가 집안 갈등을 일으킵니다. 가족구성원을 개인이 아닌 하나의 가족으로 보는 집단주의 성격이 강합니다. 얼핏 부부만의 문제로 보이지만 깊이 들여다보면 부부 각자가 원(原)가족에서 겪었던 문제들이 부부생활에 악영향을 주는 근본 원인인 경우가 많습니다.”

●“가족 구성원 솔직·효과적 의사소통 연습 필요”
그래서 박 교수는 가족 문제는 ‘촉발 요인’과 ‘잠재 요인’을 함께 찾아내야 한다고 강조한다.
“부모의 외도, 언어·신체적 폭력 등 나쁜 경험을 가진 부부가 원가족에서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감정과 역기능적인 대화 방식이 문제를 악화시킵니다. 파고 들어가 보면 원가족의 문제점, 즉 잠재 요인이 있어요. 그래서 부부뿐 아니라 자녀, 부부 각자의 부모와 형제자매까지 넓혀서 상담하는 가족치료가 필요합니다.”

박 교수는 부부를 개별 상담 뒤 공동 상담, 자녀, 필요할 경우 부모, 형제자매까지 순차 상담을 진행한다. 1회 상담에 1~2시간 걸리는데 사례에 따라 10~20회 정도 진행한다.
박 교수는 “상담을 통해 문제점을 찾아내고 이를 이해하고 해소하도록 돕는다”며 “특히 서로에게 상처를 주는 의사소통 방식을 고치고 상대방의 고충을 이해하려는 공감 노력을 배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예를 들어 친가 방문 뒤 귀갓길에 아내가 “당신 어머니 성격 참 이상해”라고 불평하면 대부분 남편은 어머니 편을 들면서 큰 싸움으로 번지기 일쑤다. 이때 남편이 “그래 맞아. 우리 엄마 이상해. 나도 싫어”라고 맞장구를 쳐 준다면 아내의 불만이 금세 누그러진다는 것이다.

박 교수는 “가족 구성원들이 솔직하고 효과적인 의사소통 방식을 연습함으로써 많은 가족 문제가 해결된다는 사실을 입증했다”며 “이번에 개발된 ‘한국의 통합적 가족치료 모델’은 이론적 연구를 넘어, 실제 가족 상담과 사회복지 현장에 효과적으로 적용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박 교수 가족은 ‘가족치료 가족’이기도 하다. 아들 박양진 텍사스알링턴대학교 조교수와 미시건대학교 박사과정생인 딸 박양현 씨도 아버지의 전공을 잇고 있는데, 이번 논문의 공동연구자로 참여했다.

미국 플로리다주립대(FSU)에서 사회복지학 박사학위를 받은 박 교수는 국내외 학술지에 논문 120편 게재, 학술대회에서 220편 이상의 논문 발표, 저서·역서 25권 출간 등 가족치료 분야의 전문가로 한국가족치료연구소도 운영하고 있다.


김재범 기자 oldfield@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