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년이 빚은 소리, 기타리스트 박규희의 음악적 여정이 집약된 시간

클래식 기타리스트 박규희가 데뷔 15주년을 맞아 예술의전당 무대에 선다. 2024년 앨범 ‘Bach’ 발매와 함께 국내외 리사이틀 투어를 성황리에 마친 그는 이번 무대를 통해 자신의 음악적 발자취를 집약해 보여줄 예정이다.

9월 24일 예술의전당 IBK챔버홀에서 열리는 이번 리사이틀은 호아킨 로드리고, 페데리코 모레노 토로바, 미구엘 로벳 등 스페인 클래식 기타의 원천을 이룬 작곡가들의 작품으로 구성됐다. 구조를 초월해 무한히 확장돼온 박규희의 음악 세계가 스페인의 이국적 색채와 함께 무대 위에서 펼쳐질 전망이다.

프로그램은 호아킨 로드리고의 ‘훈토 알 헤네랄리페’로 문을 연다. 알함브라 궁전의 정원을 주제로 한 이 곡은 안달루시아 특유의 서정성과 빛의 향연을 담아낸 작품이다. 이어지는 페르난도 소르의 ‘환상곡적 비가 Op.59’는 제자의 죽음을 추모하며 작곡된 곡으로, 애도와 비통의 정서를 기품 있게 풀어낸다. 토로바의 ‘소나티나’는 스페인 기타 음악을 현대적으로 확장한 명곡으로, 세고비아에게 헌정된 작품답게 경쾌하면서도 고전적인 아름다움이 돋보인다.

2부에서는 마누엘 데 파야의 작품이 중심을 이룬다. 발레 ‘삼각모자’ 중 ‘방앗간지기 춤’은 집시풍 리듬과 강렬한 에너지가 살아 있는 곡이고, ‘사랑의 마술사’ 중 ‘마법의 원’과 ‘도깨비 불의 노래’는 스페인 전통 무속적 색채와 신비로운 선율을 담고 있다. 뒤이어 연주되는 엔리케 그라나도스의 ‘시적인 왈츠 Op.43’은 7개의 짧은 왈츠로 구성돼 있으며, 로맨틱하고 환상적인 분위기가 교차하는 명곡이다.

마지막으로 미구엘 로벳의 ‘스케르초 왈츠’와 ‘소르 주제에 의한 변주곡 Op.15’가 무대를 장식한다. ‘스케르초 왈츠’는 세련된 기교와 우아한 선율미로 잘 알려져 있고, ‘소르 주제에 의한 변주곡’은 소르의 선율 위에 화려한 변주를 더해 스페인 기타의 정수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세계적인 기타리스트 데이비드 러셀은 “박규희는 그녀가 연주하는 모든 음에 흥분과 아름다움을 자아낸다.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정확한 기타는 음악에 빛을 더한다”고 극찬했다. 빈 국립음대 교수 알바로 피에리 역시 “박규희는 진정한 음악가다. 그녀가 연주하면 손가락을 통해 소통의 기적이 일어난다”고 평가했다.

박규희는 알함브라 콩쿠르를 포함해 아홉 차례 국제 콩쿠르에서 우승했으며, 벨기에 프렝탕 국제 기타 콩쿠르에서는 최초의 여성·아시아인 우승자로 기록됐다. 또한 지금까지 아홉 장의 정규 앨범, 두 종의 베스트 앨범, 한 종의 라이브 앨범을 발표하며 클래식 기타 음반 시장에서 확고한 위치를 점하고 있다.

2012년 뉴욕 카네기홀 데뷔 이후 일본의 NHK교향악단, 도쿄 메트로폴리탄 교향악단 등과 수십 차례 협연했으며, 2022년에는 일본 클래식 전문지 ‘Ongaku no Tomo’의 ‘베스트연주 10선’에 피아니스트 마르타 아르헤리치와 함께 선정됐다.

3세에 기타를 시작한 박규희는 리여석을 사사한 뒤 예원학교를 거쳐 일본 도쿄음대, 오스트리아 빈 국립음악대학을 수석 졸업했다. 이후 스페인 알리칸테 음악원에서 마스터 과정을 마쳤으며, 현재는 명기타 제작자 다니엘 프리드리히가 2009년에 제작한 기타로 연주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양형모 기자 hmyang0307@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