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일(현지시간) 폴란드 바르샤바 군사 박물관에서 열린 ‘천무 3차 실행계약 체결식’에서 강훈식 대통령실 비서실장(왼쪽에서 4번째)이 코시니악 카미슈 폴란드 부총리와 악수하고 있다. 왼쪽부터 손재일 한화에어로스페이스 대표이사, 파베우 베이다 폴란드 국방부 차관, (왼쪽에서 5번째부터) 아르투르 쿱텔 폴란드 군비청장, 이용철 방사청장, 피오트르 보이첵 WB그룹 회장, 원종대 국방부 자원관리실장. 사진제공 |한화에어로스페이스

29일(현지시간) 폴란드 바르샤바 군사 박물관에서 열린 ‘천무 3차 실행계약 체결식’에서 강훈식 대통령실 비서실장(왼쪽에서 4번째)이 코시니악 카미슈 폴란드 부총리와 악수하고 있다. 왼쪽부터 손재일 한화에어로스페이스 대표이사, 파베우 베이다 폴란드 국방부 차관, (왼쪽에서 5번째부터) 아르투르 쿱텔 폴란드 군비청장, 이용철 방사청장, 피오트르 보이첵 WB그룹 회장, 원종대 국방부 자원관리실장. 사진제공 |한화에어로스페이스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폴란드와 5조 6000억 원 규모의 다연장 유도무기 ‘천무’ 유도미사일 공급 계약을 체결하며 K-방산의 저력을 다시금 입증했다. 이재명 대통령이 파견한 강훈식 대통령비서실장의 ‘방산 특사’ 외교가 유럽의 자국 우선주의 장벽을 넘어 대규모 수주를 이끌어낸 핵심 동력이 됐다는 평가다.
29일(현지시간)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체결된 이번 ‘3차 실행계약’은 단순히 무기를 수출하는 차원을 넘어 현지 합작법인을 통한 유도미사일 생산 체계를 구축한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지닌다. 유럽연합(EU)의 방산 블록화 추세 속에서 현지화 전략과 정부의 전폭적인 세일즈 지원이 맞물려 일궈낸 값진 성과로 기록될 전망이다.이번 계약을 통해 양국은 단순한 구매자와 판매자 관계를 넘어선 가장 강력한 안보 파트너로 도약하게 됐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30일 폴란드 군비청과 사거리 80㎞급 천무 유도미사일(CGR-080)을 공급하는 5조 6000억 원 규모의 3차 실행계약을 체결했다고 밝혔다. 이번 계약은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10월 폴란드 방산기업 WB 일렉트로닉스(Electronics)와 공동 출자해 설립한 합작법인(JV)인 ‘한화-WB 어드밴스드 시스템(HWB)’과의 컨소시엄을 통해 이루어졌다. 이번 계약 체결에 따라 향후 폴란드 현지에 구축될 HWB 전용 생산공장에서 유도미사일이 양산될 예정이며, 이곳에서 생산된 물량은 폴란드군에 순차적으로 인도된다.

●현지 합작 생산으로 블록화 정면 돌파
이번 수주는 최근 유럽 내에서 심화되고 있는 방산 블록화 현상을 극복했다는 점에서 전략적 가치가 높다. 현재 유럽연합(EU)은 세이프(Secure Action for Europe) 기금을 조성해 유럽산 무기 우선 구매를 장려하는 정책을 펼치고 있다. 이러한 폐쇄적인 시장 환경 속에서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현지 기업과의 합작법인 설립이라는 선제적 대응책을 제시했다. 폴란드 현지에서 직접 미사일을 생산함으로써 역내 무기 체계로서의 지위를 확보함과 동시에 폴란드 방위산업의 자생력을 높이는 상생 모델을 구축한 것이 주효했다는 분석이다.

바르샤바 군사 박물관에서 열린 계약 체결식에는 아르투르 쿱텔 폴란드 군비청장과 피오트르 보이첵 WB그룹 회장, 손재일 한화에어로스페이스 대표이사가 참석해 계약서에 서명했다. 한국 측에서는 강훈식 대통령비서실장을 비롯해 김현종 국가안보실 제1차장, 이용철 방위사업청장, 원종대 국방부 자원관리실장 등이 참석했다. 폴란드 측에서도 코시니악 카미슈 부총리 겸 국방장관과 파베우 베에다 국방부 차관 등 군 수뇌부가 대거 참석해 이번 계약에 대한 폴란드 정부의 높은 기대감을 드러냈다.

이번 계약 성사 과정에는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이재명 대통령은 방산 수출을 국가 전략 산업으로 격상시키고 10월 강훈식 비서실장을 전략경제협력 특사로 폴란드에 파견했다. 당시 강 실장은 코시니악 카미슈 부총리를 만나 현지 생산 계약이 연내에 반드시 체결되어야 함을 강조하며 양국의 방산 협력 의지를 다졌다. 특사의 방문은 폴란드 정부가 한국과의 장기적인 파트너십에 확신을 갖게 된 계기가 되었으며, 이는 곧 대규모 수주라는 실질적인 성과로 연결됐다.

강 실장의 특사 외교는 폴란드에만 머물지 않았다. 11월 이재명 대통령은 아랍에미리트(UAE) 정상회담을 앞두고 다시 강 실장을 UAE와 사우디아라비아에 방산 특사로 급파했다. 이를 통해 150억 달러 이상의 방산 수출 토대를 마련하는 등 전방위적인 세일즈 외교를 펼쳤다. 국내외 방산업계에서는 대통령과 비서실장을 중심으로 한 정부의 공격적인 외교 지원이 천무 계약을 포함한 K-방산 수출의 핵심 동력이 되고 있다는 평가를 내놓고 있다. 기업의 기술력에 정부의 외교적 신뢰가 더해져 시너지를 낸 것이다.

●안보 신뢰 바탕으로 전략적 동반자 도약
한화에어로스페이스와 폴란드의 천무 협력 역사는 202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양국은 2022년 천무 발사대와 유도미사일 수출을 위한 기본계약(Framework Contract)을 맺으며 대규모 협력의 서막을 알렸다. 이후 같은 해 11월 약 5조 원 규모의 1차 실행계약을 체결했으며, 2024년에는 약 2조 원 규모의 2차 실행계약을 통해 공급을 이어왔다. 이번 3차 계약을 통해 폴란드는 천무 운영의 핵심인 유도미사일의 현지 생산 역량까지 확보하게 되면서 한국과의 안보 결속을 더욱 공고히 하게 됐다.

손재일 한화에어로스페이스 대표는 “국가적 차원의 전폭적인 지원과 노력에 깊은 감사를 드린다”며 “K-방산이 대한민국 안보 강화와 경제 발전에 기여할 수 있도록 기술 혁신에 박차를 가하겠다”고 말했다. 이번 계약은 한국 방위산업이 유럽 시장의 주류로 진입했음을 선포하는 동시에 정부의 세일즈 외교가 거둔 기념비적인 성과로 평가받는다. 향후 HWB 생산 공장이 본격 가동되면 폴란드는 유럽 내 천무 유도미사일 공급의 전초 기지 역할을 수행하게 될 것으로 기대된다


원성열 기자 seren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