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와함께문화산책]정체불명TV드라마

입력 2008-02-01 09:2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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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재미에 빠진 드라마… 감동이 없네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르겠다. 50억 원이라는 터무니없는 돈을 감당 못해 자식을 시댁에 돌려보낸 영은(박선영)을 보면 분명, 슬퍼야 했다. 하지만 스멀스멀 화면 한 구석을 치고 등장하는 시어머니(박원숙)가 나오면 산통이 깨진다. 요즘 드라마 ‘겨울새’(토일 오후 9시 40분)를 보면 그런 생각이 든다. 슬퍼야 할 대목에서 눈물이 나지 않고, 사이코드라마 같은 장면에선 웃음이 난다. 캐릭터들이 따로 노니 어느 장단에 감정을 맞춰야 할지 모르겠다. 배우들의 맥 빠진 캐릭터는 설득력을 잃었고 남은 것은 배우 박원숙의 개인기뿐이다. 만든 이의 의도를 알 수가 없어 불쾌해지는 드라마도 있다. 양념에 불과할 줄 알았던 소품이 극의 흐름 자체를 방해한 경우다. 23일 MBC ‘아현동 마님’(월∼금 오후 7시 45분)을 본 시청자들은 방영시간의 절반을 차지하는 15분 내내 갸우뚱했을 것이다. 이날 방영분에서는 엄마 미숙(이휘향)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연지(고나은)와 혜나(금단비)가 잔치를 벌였다. 그러던 중 둘이 갑자기 가채를 벗어 던지며 대머리 가발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어지는 한복 차림에 ‘텔미춤’과 앙드레 김 성대모사, 잔치를 구경하던 극중 엄마와 아빠도 어쩔 줄 모르는 것 같았다. 황당 엽기쇼에 시청자들은 “방송사고 인 줄 알았다”며 항의했다. 하지만 의아하게도 시청률은 전날 23.4%보다 소폭 상승한 25.1%(TNS미디어 집계)를 기록했다. 정체불명에 갈팡질팡, 소소한 잔재미만 나열되는 드라마. 평론가들은 허술한 ‘극작법’에 원인이 있다고 지적한다. 굵직한 스토리텔링을 만들어내지 못하고 큰 재미를 주지 못하니 작은 재미에 집착한다는 것이다. 드라마 평론가 윤석진 씨는 “그때그때 이벤트성, 시트콤 같은 상황으로 당장의 재미를 얻을 수는 있다. 하지만 그건 시청자들이 진짜 원하는 재미가 아니다”며 “시청률을 올려야 한다는 강박관념 때문에 드라마의 기본기를 무시하는 건 아닌지 우려된다”고 말했다. KBS 2TV ‘쾌도 홍길동’(수목 오후 9시 55분)은 이런 점에서 논란이 분분한 드라마다. 국내 드라마 사상 최초의 퓨전 코믹 사극을 표방한 이 작품은 적어도 처음엔 새로웠다. 조선시대의 나이트클럽, 파마머리 홍길동에, 각종 광고를 패러디한 재기 넘치는 대사와 상황들이 ‘유쾌’하다 못해 ‘통쾌’했다. ‘환상의 커플’ ‘쾌걸 춘향’에서 보여준 홍자매(홍정은 홍정란 작가)의 끼가 유감없이 발휘되는가 싶었다. 하지만 원전을 비트는 힘을 과도하게 부리다 보니 패러디와 퓨전의 원래 정신이 훼손되는 것 같다. 그래서 ‘상쾌’하기보다 부대낀다. 60분짜리 드라마에서 시청자들이 원하는 건 거창한 게 아니다. 그저 인생에서 맛볼 수 있는 희로애락의 감정을 화면을 통해 느끼는 것. 위기와 갈등이 60분 동안 계속될 수 없기에 긴장을 이완시켜주는 장치들은 시청자들을 붙들기 위해 필수적이다. 하지만 요즘 드라마엔 소소한 재미들이 전체적인 줄거리와 정교하게 교직되지 못한다. 다양한 상황들의 이종 교배로 초점 잃은 드라마가 시청자의 채널 선택까지 혼란에 빠뜨리는 건 아닐지. 시청자들이 원하는 건 고개를 끄덕이고 무릎을 탁 치게 만드는 이야기의 힘일 텐데 말이다.염희진 기자 salth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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