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싸이더스 7편 등 올해 ‘저예산 대세’ 예고 국내 최대 영화사 싸이더스FNH가 제작비 5억 원 내외의 저예산 영화를 제작한다. 이 영화사 김미희 대표는 “재기발랄한 신인 감독을 기용해 저예산으로 ‘작가주의 영화’나 ‘영화제용 영화’가 아닌 재미있는 장르영화 7편을 제작하기로 했다”며 “그 첫 작품의 촬영을 상반기 중 시작하고 올해 두 편을 만들 계획”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초만 해도 30억 원 정도로 예상했던 영화라면 지금은 20억 원 이하로 잡아야 할 정도로 투자 환경이 위축됐다는 것이 김 대표의 설명. 이 같은 상황에서 저예산으로 마니아층을 위한 ‘틈새시장’ 개척에 나선다는 뜻이다. 많은 돈을 들여 만든 블록버스터형 영화로 극심한 손해를 본 충무로가 저예산 영화에 눈길을 돌리고 있다. 제작비 절감의 차원을 넘어 아예 적은 예산으로 양질의 작품을 만들어 새로운 시장을 만드는 시도다. 저예산 영화, 침체된 한국영화 시장의 대안이 될 수 있을까. ○ 작년 개봉작의 30%가 제작비 10억 미만… 스타들 출연도 잦아 영화진흥위원회의 2007년 결산 자료에 따르면 작년 한국영화는 고전을 면치 못했지만 마케팅 비용의 감소로 제작비가 전년에 비해 3억 원 줄었으며 10억 원 미만의 저예산 영화가 35편 개봉돼 처음으로 전체 개봉작 중 30%를 넘었다. 중급 규모인 30억∼40억 원 영화의 비중은 줄고 50억∼60억 원 영화는 증가했다. 아예 ‘한국형 블록버스터’가 아닐 바에야 차라리 ‘저비용 고효율’을 추구하는 것. 지금껏 저예산 영화는 주로 예술영화나 독립영화를 뜻했지만 이제는 저예산 ‘상업영화’를 만드는 시도가 늘고 있다. 영진위 영상산업정책연구소 김보연 팀장은 그 원인을 두 가지로 해석했다. 첫째는 디지털 환경 때문에 필름 값도 안 들고 인력 규모도 줄일 수 있는 고화질(HD) 영화 제작이 늘어났다는 기술적인 이유. 둘째는 반드시 일정 규모 이상의 영화로 수익을 내겠다는 태도에서 벗어나 저예산 영화로 방송과 영화를 넘나들며 다양한 경로의 수익을 창출하는 방식이 주목받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 맞춰 스타들의 저예산 영화 출연도 잦아지고 있다. 3년 만에 스크린에 복귀하는 배우 최민식이 선택한 작품은 전수일 감독의 저예산 영화 ‘히말라야-바람이 머무는 곳’(가제)이다. 전 감독은 ‘검은 땅의 소녀와’ 등으로 작품성을 인정받은 국내 대표적인 독립영화 감독. 제작비는 10억 원 정도다. 전도연은 하정우와 함께 이윤기 감독의 ‘멋진 하루’를 촬영 중이다. 직업도 애인도 없이 서른을 넘긴 주인공이 옛 남자친구를 만나 하루 동안 겪는 이야기. 칸 국제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 수상 직후 수많은 러브콜을 받았던 전도연은 흔쾌히 저예산 영화의 출연 제의를 수락했다. 제작사 ‘영화사 봄’ 오정완 이사는 “배우와 스태프들이 평소의 절반만 받고 촬영하고 있다”며 “30억 원 이상이 드는 영화지만 실제 제작비는 19억 원 정도”라고 말했다. 두 영화는 모두 ‘저예산이지만 상업영화’를 지향하고 있다. 왜 저예산인가 블록버스터 영화 실패 부담 커 20억 이하 제작비로 한 달 정도 촬영 투자회수 빨라 펀딩 쉽고 신인 발굴 등 실험 가능 ○ “영화 다양성 위해서라도 고육책 아닌 대안으로 삼아야” 영화계의 저예산 영화 전략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평가가 많다. 영화평론가 전찬일(숙명여대 겸임교수) 씨는 “한국영화 위기의 최대 주범인 높은 제작비를 절감하고 영화의 다양성 제고와 관객의 선택 폭을 넓히며 미래의 영화 인력에게 더 많은 훈련의 기회를 주기 위해 저예산 영화는 피치 못할 선택이 아니라 적극적 선택이 돼야 한다”며 “배우들도 전도연과 최민식의 선택을 벤치마킹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싸이더스FNH 김미희 대표는 “한 달 정도 촬영하는 저예산 영화는 투자 회수가 빠르기 때문에 투자자를 모으기 쉽고 큰 부담 없이 새로운 실험이 가능하다”며 “더구나 콘텐츠 개발, 신인 감독 발굴 효과가 있으며 20만 명만 들어도 성공”이라고 말했다. 김 대표는 “영화 한 편으로 끝내지 않고 상영 이후 케이블, 인터넷TV(IPTV), 뮤지컬 제작 등 다양한 부가 판권을 창출한다”는 계획이다. 일각에서는 조심스럽게 저예산 영화가 대안이 될지는 아직은 지켜봐야 한다는 의견도 내놓고 있다. 한 제작자는 “처음부터 저예산 영화를 원한 게 아니라 투자를 못 받아 규모를 줄이는 경우가 많아 이러한 움직임이 영화시장의 활력으로 이어지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채지영 기자 yourcat@donga.com ■ 성공한 저예산 영화는 국내선 ‘달콤, 살벌…’이 유일 9억 원 들여 240만 명 모아 ‘저예산 영화’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나 정의는 없다. 작년에 영화제작가협회와 영화산업노조가 단체협약을 맺으며 저예산 영화에 대해 예외규정을 뒀고 그 기준은 총제작비 10억 원이었다. 지난해 한국영화 평균 총제작비가 37억2000만 원으로 조사되는 등 최근 한국영화의 평균 제작비가 상승하면서 요즘은 20억 원 이하의 예산으로 만든 영화를 넓게 저예산 영화에 포함하기도 한다. 한국에서 저예산 영화가 흥행에 성공한 적은 거의 없다. 싸이더스FNH가 재작년 제작비 9억 원의 저예산으로 만든 ‘달콤, 살벌한 연인’이 240만 명을 모아 제작비 대비 ‘초대박’을 낸 사례가 유일하다. 최근 돌풍을 일으켰던 아일랜드 음악 영화 ‘원스’도 저예산 영화. ‘원스’의 수입사인 영화사 진진은 수입가 5000만 원 이하의 저예산 영화만 들여오지만 ‘원스’의 흥행으로 수입가의 수십 배에 달하는 수익을 올렸다. ‘원스’는 지난해 저예산 독립영화로서는 최초로 20만 명을 모았다. 김난숙 진진 대표가 말하는 ‘원스’의 성공 비결은 간단하다. 음악영화인데 음악이 좋았기 때문. 그는 “저예산 영화라도 명확한 콘셉트를 지니면 관객은 반드시 있다”고 말했다. 평균 제작비가 500억∼600억 원인 미국에서는 200억 원대의 영화도 저예산 취급을 받는다. 미국에서는 ‘불과’ 수십억 원을 들여 만든 ‘초저예산’ 영화가 흥행에 성공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 최근 10대의 임신을 소재로 약 22억 원을 들여 만든 미국 영화 ‘주노’는 제작비의 60배에 이르는 1200억 원의 수입을 올리며 올해 아카데미상 4개 부문 후보에 올랐다. 지난해 아카데미상 2개 부문을 수상한 ‘미스 리틀 선샤인’은 75억 원으로 만들어 945억 원을 벌었다. B급 공포영화의 대명사 ‘쏘우’ 1편은 불과 11억 원으로 제작해 974억 원을 벌었고 이후 4편까지 나온 시리즈가 모두 성공했다. 채지영 기자 yourca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