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한용·왕영은의행복한아침편지]그리운아버지의노랫소리

입력 2008-04-08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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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 친정아버지는 제가 어릴 때부터 약주를 좋아하셨습니다. 일하시다가도 꼭 한두 잔 걸치십니다. 가끔은 저녁 때 술이 잔뜩 취해서 집에 들어오곤 하셨습니다. 술만 취하시면 막내인 저를 항상 옆에 앉아보라고 하십니다. 그리고는 옛날에 살아오신 얘기를 하시는데, 했던 얘기 또 하고, 또 했던 얘기 또 하고… 그렇게 얘기를 풀어놓으십니다. 얘기 중에는 꼭 애창곡인 ‘섬 마을 선생님’을 부르셨습니다. 몇 소절 부르다가 그대로 옆에 누워 주무시는 일이 많았습니다. 그래도 다음날 아침이 되면 어김없이 일찍 일어나셔서 새벽부터 서둘러 농사일을 하십니다. 굉장히 열심히 사시는 분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 때는 제가 중학생 정도 됐을 때 일입니다. 할머니와 아버지가 따스한 마루에 앉아 계신 걸 보고, 제가 녹음기가 되는 라디오를 들고 마루로 나왔습니다. 그리고 노래를 한번 부르면 녹음해서 다시 들려드릴 테니, 노래를 불러달라고 졸랐습니다. 처음엔 할머니께서 “내가 노래를 어떻게 부르냐. 그런 거 못 한다” 하시며 빼셨는데, 우리끼리인데 어떠냐고 한 번 해 보라고 졸랐습니다. 못 이기시는 척 “그럼 해 볼까? 노들강변에 봄버들 휘휘 늘어진 가지마다…” 하시면서 ‘노들강변’이란 노래를 부르셨습니다. 그 다음이 아버지 차례였는데, 역시나 애창곡인 ‘섬마을 선생님’을 또 열심히 불러재끼십니다. 저희 아버지가 원래 노래를 아주 잘 하십니다. 그게 유전인지 몰라도, 그 덕분에 저희 5남매도 주위에서 가수 뺨치게 노래 잘한다는 소리를 듣고 살았습니다. 어쨌든 그렇게 할머니 노래, 아버지 노래, 녹음해서 듣는 게 좋았습니다. 어느 날 제 머릿속에 아주 기특한 생각이 났습니다. 어머니가 밭에서 돌아오시며 골목 어귀에 들어오실 때 저는 녹음기를 아주 크게 틀어놓았습니다. 그러자 어머니가 대문을 여시자마자 “아이고! 느그 아부지 또 취했다냐! 으이구 저놈의 술은 언제나 안 마시고 살랑가 몰라” 하시며 잔소리를 늘어놓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녹음기를 껐다 다시 켜니까, 엄마가 깜짝 놀라시면서, “워매! 고걸 틀어놨냐. 난 또 그것도 모르고, 느그 아부지가 또 취해서 오신 줄 알았잖냐” 하시면서 웃으셨습니다. 그 모습을 보며 조금 죄송하긴 했지만 그래도 엄마가 이렇게 웃으시는 게 좋았습니다. 지금은 우리 곁에 계시지 않는 아버지신데, ‘섬 마을 선생님’을 들을 때마다 아버지 생각이 참 많이 납니다. 그 때는 그 노래가 좋은 줄도 몰랐는데, 지금 나이에 와서 불러보면 참 좋은 노래였습니다. 어쨌든 그 때 녹음된 노래 듣고 많이 웃으셨던, 우리 친정어머니. 올해 여든넷이 되셨는데, 지금처럼만 앞으로 오래 오래 건강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어머니! 건강하게 오래오래 사세요!” 전북 남원 | 신인숙 행복한 아침, 정한용 왕영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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